[바코 인사이드] “안녕하세요. KBL 홍보팀 이수진입니다!”
손동환 2023. 5. 9. 12:18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4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3월 14일 오전에 이뤄졌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KBL은 2023년 초 인사 발령을 내렸다. 홍보팀장으로 이수진 과장을 임명했다. 입사 13년 차인 이수진 과장은 KBL 최초 여성 홍보팀장.
이수진 과장은 입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홍보팀에서만 근무했다. 13년 동안 업무 기초와 방향성을 탄탄히 다졌다. 홍보팀장으로서도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했다. 이수진 과장이 정한 방향은 ‘정확한 전달’과 ‘소통’이었다.
“농구 코트요? 저에게는 멋진 일터죠”
한국 농구의 터닝 포인트는 여러 번 있었다. 1997년은 굵직한 터닝 포인트 중 하나. KBL, 즉 한국프로농구가 처음 시작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프로농구가 시작된 후, 농구에 열정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KBL의 문을 두드렸다. 이수진 과장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경쟁률이 꽤 높았다. 입사지원자였던 이수진 과장은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합격’이라는 도장을 어렵게 받았다. KBL에 출근할 자격을 얻었다. 그래서 첫 출근을 더 남다르게 생각했다.
KBL은 어떻게 지원하셨나요?
학교 다닐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스포츠 관련 전공을 공부한 건 아니었어요. ‘스포츠 관련 업종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죠. 그리고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을 경험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농구 코트가 저에게 멋진 일터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경쟁률이 치열했다고 들었습니다. 면접 때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셨나요?
2011년에 입사 지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SNS가 없었어요. KBL 홈페이지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봤죠. 역사와 규정 등을 공부했던 기억이 나요. 공부했던 내용들이 면접에서 나온 건 아니었지만(웃음), 많은 공부가 됐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엄청 떨었던 기억만 나요.
어렵게 합격하셔서, 기쁨이 더 크셨겠어요.
면접과 관련된 내용은 크게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의 기억은 생생해요. 친구랑 같이 있었는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기뻤던 것 같아요.(웃음)
첫 출근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첫 출근보다 첫 업무가 더 기억에 남아요. 기사 스크랩이 첫 업무였죠. 학교 다닐 때도 기사를 스크랩하거나 책 보는 걸 좋아해서, ‘이게 정말 일인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농구 기사를 스크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좋았어요. 아직도 자신 있는 업무고요.(웃음)
KBL은 2023년 초 인사 발령을 내렸다. 홍보팀장으로 이수진 과장을 임명했다. 입사 13년 차인 이수진 과장은 KBL 최초 여성 홍보팀장.
이수진 과장은 입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홍보팀에서만 근무했다. 13년 동안 업무 기초와 방향성을 탄탄히 다졌다. 홍보팀장으로서도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했다. 이수진 과장이 정한 방향은 ‘정확한 전달’과 ‘소통’이었다.
“농구 코트요? 저에게는 멋진 일터죠”
한국 농구의 터닝 포인트는 여러 번 있었다. 1997년은 굵직한 터닝 포인트 중 하나. KBL, 즉 한국프로농구가 처음 시작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프로농구가 시작된 후, 농구에 열정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KBL의 문을 두드렸다. 이수진 과장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경쟁률이 꽤 높았다. 입사지원자였던 이수진 과장은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합격’이라는 도장을 어렵게 받았다. KBL에 출근할 자격을 얻었다. 그래서 첫 출근을 더 남다르게 생각했다.
KBL은 어떻게 지원하셨나요?
학교 다닐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스포츠 관련 전공을 공부한 건 아니었어요. ‘스포츠 관련 업종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죠. 그리고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을 경험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농구 코트가 저에게 멋진 일터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경쟁률이 치열했다고 들었습니다. 면접 때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셨나요?
2011년에 입사 지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SNS가 없었어요. KBL 홈페이지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봤죠. 역사와 규정 등을 공부했던 기억이 나요. 공부했던 내용들이 면접에서 나온 건 아니었지만(웃음), 많은 공부가 됐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엄청 떨었던 기억만 나요.
어렵게 합격하셔서, 기쁨이 더 크셨겠어요.
면접과 관련된 내용은 크게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의 기억은 생생해요. 친구랑 같이 있었는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기뻤던 것 같아요.(웃음)
첫 출근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첫 출근보다 첫 업무가 더 기억에 남아요. 기사 스크랩이 첫 업무였죠. 학교 다닐 때도 기사를 스크랩하거나 책 보는 걸 좋아해서, ‘이게 정말 일인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농구 기사를 스크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좋았어요. 아직도 자신 있는 업무고요.(웃음)
“생각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처음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럴 듯한 이상을 꿈꾼다. 그렇지만 현실이라는 강력한 주먹(?)과 마주한다. 현실의 주먹에 맞은 직장인들은 자신의 이상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이수진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지 못한 요소에 목표로 했던 것들을 해내지 못했다. 특히, 홍보팀의 업무 특성 때문에,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전달됐던 사례들을 경험했다. 그런 점들이 이수진 과장을 지치게 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목표로 했던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처음 하는 사회생활이라, ‘실수하지 말자’는 다짐이 가장 컸어요. ‘한 사람의 몫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컸죠. 게다가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 마음들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사 초기에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때 생긴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아요.
수도 없었을 거예요. 언론사 이름을 틀리기도 하고. 전달해야 할 정보도 많이 틀렸어요. 경기장에서는 플레이에 환호하다가 혼이 났어요. 팬으로서 갖고 있던 버릇을 못 버렸던 거죠. 물론, 특정 팀을 응원했던 건 아니지만, 박수 치고 소리치는 건 연맹 직원으로서 적절치 않았던 행동이었거든요.
모든 직장이 그렇듯, 현실과 이상은 다릅니다. 과장님도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것 같아요.
당연히 모든 업무가 마음 같지 않았어요. 예기치 못하게 불운한 일이 생기기도 했고, 제가 생각했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일도 많았죠. 특히, 저희 홍보팀은 KBL의 소통 창구입니다. 연맹에서 생각했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또, 제가 입사할 때부터 “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 역시 연맹의 직원으로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직원들끼리도 “농구 인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 것들을 현실로 접했던 것 같아요.
의도에 맞게 전달하는 것.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대부분의 일을 좋은 취지나 좋은 의도로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의도로 전달되는 게 어렵더라고요.(웃음) 어려운 일인 건 맞지만, 행사의 취지 혹은 어떤 행위의 취지에 맞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게 저희 팀의 임무거든요. 저 역시 그렇게 하기 위해 열심히 했고, 저희 연맹의 뜻이 미디어나 팬들에게 좋게 전달된 일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럴 듯한 이상을 꿈꾼다. 그렇지만 현실이라는 강력한 주먹(?)과 마주한다. 현실의 주먹에 맞은 직장인들은 자신의 이상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이수진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지 못한 요소에 목표로 했던 것들을 해내지 못했다. 특히, 홍보팀의 업무 특성 때문에,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전달됐던 사례들을 경험했다. 그런 점들이 이수진 과장을 지치게 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목표로 했던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처음 하는 사회생활이라, ‘실수하지 말자’는 다짐이 가장 컸어요. ‘한 사람의 몫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컸죠. 게다가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 마음들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사 초기에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때 생긴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아요.
수도 없었을 거예요. 언론사 이름을 틀리기도 하고. 전달해야 할 정보도 많이 틀렸어요. 경기장에서는 플레이에 환호하다가 혼이 났어요. 팬으로서 갖고 있던 버릇을 못 버렸던 거죠. 물론, 특정 팀을 응원했던 건 아니지만, 박수 치고 소리치는 건 연맹 직원으로서 적절치 않았던 행동이었거든요.
모든 직장이 그렇듯, 현실과 이상은 다릅니다. 과장님도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것 같아요.
당연히 모든 업무가 마음 같지 않았어요. 예기치 못하게 불운한 일이 생기기도 했고, 제가 생각했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일도 많았죠. 특히, 저희 홍보팀은 KBL의 소통 창구입니다. 연맹에서 생각했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또, 제가 입사할 때부터 “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 역시 연맹의 직원으로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직원들끼리도 “농구 인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 것들을 현실로 접했던 것 같아요.
의도에 맞게 전달하는 것.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대부분의 일을 좋은 취지나 좋은 의도로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의도로 전달되는 게 어렵더라고요.(웃음) 어려운 일인 건 맞지만, 행사의 취지 혹은 어떤 행위의 취지에 맞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게 저희 팀의 임무거든요. 저 역시 그렇게 하기 위해 열심히 했고, 저희 연맹의 뜻이 미디어나 팬들에게 좋게 전달된 일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KBL 홍보팀 이수진입니다”
이수진 과장은 입사 년도인 2011년부터 홍보팀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홍보팀의 임무는 이렇다. KBL의 가치를 어떻게 끌어올리지 생각하고, KBL을 취재하는 미디어를 응대하는 것이다. 가장 큰 임무는 KBL과 팬의 소통 창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업무 특성상, 많은 사람들과 많이 만나야 한다. 즐겁기도 하지만, 부딪히는 것도 많다. 사람 간의 관계 때문에, 얻는 피로는 분명 크기 때문. 이수진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KBL의 가치 제고를 위해서였다.
입사 직후부터 홍보팀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입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홍보팀에만 있었어요. 다른 팀의 업무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죠.(웃음) 그렇지만 홍보팀은 KBL의 전반적인 사항들을 알 수 있는 곳이에요. 어떤 일들이 KBL에서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자리기도 하고요. 그런 강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홍보팀의 정확한 업무는 어떤 건가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홍보입니다. 언론사를 대상으로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든지, 미디어의 질의에 응답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경기에 관한 기록을 조사해, 미디어에 알리는 것도 그 중 하나고요.
두 번째는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SNS가 많아져서, 팬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났습니다. 팬 분들의 의견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죠. 또, 우리 선수들이 팬들과 소통을 너무 잘해줘서, 저희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반대로, 선수들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가 SNS 채널을 잘 운영해야 해요.
과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홍보팀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KBL을 취재하는 매체가 더 많아졌고, KBL 팬 분들의 의견을 듣는 창구도 더 많아졌어요. 이전보다 더 많이 의견을 확인해야 해요. 그런 점들이 아무래도 쉽지는 않아요.
뿌듯한 순간도 있었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과 반대로, 저희는 팬 분들과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책임감을 갖고 KBL의 소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팬 분들과 미디어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일들이 팬 분들과 미디어한테 좋게 닿았을 때, 제일 뿌듯했던 것 같아요.(웃음)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건가요?
저희는 기록을 남기는 부서입니다. 너무 많은 일을 경험했고, 예전의 일을 다시 찾아보는 업무도 많습니다. 또, 제가 회사 내에서 ‘당직 요정’으로 불리는데(웃음), 당직 과정에서 기억나는 경기들도 많아요. 다만, 현장에 있지 못해, 아쉬웠죠.(홈 구단의 홍보팀이 현장에 있는 미디어와 팬들을 응대하고, KBL 홍보팀은 KBL 본사에서 경기와 관련된 사항들을 체크한다)
경기도 경기지만, 신인 드래프트가 매년 기억에 남아요. 한 번의 드래프트를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그 기간 동안 여러 선수들을 보거든요. 특히, 지명된 선수들과 그렇지 못한 선수들을 볼 때, 복합적인 마음이 들어요. 그런 이유로, 준비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여운이 남는 것 같아요.
이수진 과장은 입사 년도인 2011년부터 홍보팀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홍보팀의 임무는 이렇다. KBL의 가치를 어떻게 끌어올리지 생각하고, KBL을 취재하는 미디어를 응대하는 것이다. 가장 큰 임무는 KBL과 팬의 소통 창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업무 특성상, 많은 사람들과 많이 만나야 한다. 즐겁기도 하지만, 부딪히는 것도 많다. 사람 간의 관계 때문에, 얻는 피로는 분명 크기 때문. 이수진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KBL의 가치 제고를 위해서였다.
입사 직후부터 홍보팀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입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홍보팀에만 있었어요. 다른 팀의 업무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죠.(웃음) 그렇지만 홍보팀은 KBL의 전반적인 사항들을 알 수 있는 곳이에요. 어떤 일들이 KBL에서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자리기도 하고요. 그런 강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홍보팀의 정확한 업무는 어떤 건가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홍보입니다. 언론사를 대상으로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든지, 미디어의 질의에 응답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경기에 관한 기록을 조사해, 미디어에 알리는 것도 그 중 하나고요.
두 번째는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SNS가 많아져서, 팬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났습니다. 팬 분들의 의견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죠. 또, 우리 선수들이 팬들과 소통을 너무 잘해줘서, 저희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반대로, 선수들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가 SNS 채널을 잘 운영해야 해요.
과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홍보팀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KBL을 취재하는 매체가 더 많아졌고, KBL 팬 분들의 의견을 듣는 창구도 더 많아졌어요. 이전보다 더 많이 의견을 확인해야 해요. 그런 점들이 아무래도 쉽지는 않아요.
뿌듯한 순간도 있었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과 반대로, 저희는 팬 분들과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책임감을 갖고 KBL의 소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팬 분들과 미디어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일들이 팬 분들과 미디어한테 좋게 닿았을 때, 제일 뿌듯했던 것 같아요.(웃음)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건가요?
저희는 기록을 남기는 부서입니다. 너무 많은 일을 경험했고, 예전의 일을 다시 찾아보는 업무도 많습니다. 또, 제가 회사 내에서 ‘당직 요정’으로 불리는데(웃음), 당직 과정에서 기억나는 경기들도 많아요. 다만, 현장에 있지 못해, 아쉬웠죠.(홈 구단의 홍보팀이 현장에 있는 미디어와 팬들을 응대하고, KBL 홍보팀은 KBL 본사에서 경기와 관련된 사항들을 체크한다)
경기도 경기지만, 신인 드래프트가 매년 기억에 남아요. 한 번의 드래프트를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그 기간 동안 여러 선수들을 보거든요. 특히, 지명된 선수들과 그렇지 못한 선수들을 볼 때, 복합적인 마음이 들어요. 그런 이유로, 준비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여운이 남는 것 같아요.
“팬들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 들을 수 있도록...”
이수진 과장은 KBL 입사 13년차다. KBL의 중고참이 됐다. KBL의 특성을 잘 인지해야 하고, KBL을 어떻게 발전시킬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2023년. KBL 홍보팀장이 됐다. KBL 최초 여성 홍보팀장. 특별한 타이틀을 얻었다. 그렇지만 이수진 과장은 새롭게 얻은 타이틀에 집중하지 않았다. KBL의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 그게 이수진 과장의 업무 방향성이었다.
KBL 최초 여성 홍보팀장입니다. 과장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팀장이 되기 전부터, 성별의 의미는 두지 않았어요. 비록 남자프로농구 연맹 소속이지만, 일하는데 큰 제약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다만, 농구를 해보지 않았던 게 늘 마음에 남았어요. 농구를 직접 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책임감이 더 커졌을 것 같습니다.
먼저 팀장으로서 하나의 팀을 잘 꾸려야 해요. 더 넓고 더 멀리 봐야 해요. 또, KBL 홍보팀장은 KBL의 대변인 역할도 해야 합니다. 제 일을 이전보다 더 잘해야 해요.
‘전달’이라는 단어가 인터뷰 중 많이 나왔습니다. 그 핵심 의미는 어떤 걸까요?
좋았던 일 혹은 좋은 의도로 시작하는 일은 좋게 전달하고, 안 좋았던 일들을 전달할 때에는 팬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야 합니다. 대신,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요소는 더 정확하게 짚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 제가 사랑하는 농구가 상처를 받지 않을 거예요.
KBL에서의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
KBL과 10개 구단이 매 시즌을 치르듯, 저도 매 시즌을 KBL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 잘 했던 것과 잘못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짚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KBL과 저 모두 발전할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농구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전히 농구 팬이에요. 출근하고 나서 동료들이랑 “그 경기 봤어? 어땠어?”라고 이야기를 시작해요. 농구 이야기를 하는 게 제일 재미있기도 하고요.
저는 예전도 지금도 농구를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팬 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겠습니다. 저희 KBL을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씀 다시 한 번 전합니다.
이수진 과장은 KBL 입사 13년차다. KBL의 중고참이 됐다. KBL의 특성을 잘 인지해야 하고, KBL을 어떻게 발전시킬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2023년. KBL 홍보팀장이 됐다. KBL 최초 여성 홍보팀장. 특별한 타이틀을 얻었다. 그렇지만 이수진 과장은 새롭게 얻은 타이틀에 집중하지 않았다. KBL의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 그게 이수진 과장의 업무 방향성이었다.
KBL 최초 여성 홍보팀장입니다. 과장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팀장이 되기 전부터, 성별의 의미는 두지 않았어요. 비록 남자프로농구 연맹 소속이지만, 일하는데 큰 제약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다만, 농구를 해보지 않았던 게 늘 마음에 남았어요. 농구를 직접 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책임감이 더 커졌을 것 같습니다.
먼저 팀장으로서 하나의 팀을 잘 꾸려야 해요. 더 넓고 더 멀리 봐야 해요. 또, KBL 홍보팀장은 KBL의 대변인 역할도 해야 합니다. 제 일을 이전보다 더 잘해야 해요.
‘전달’이라는 단어가 인터뷰 중 많이 나왔습니다. 그 핵심 의미는 어떤 걸까요?
좋았던 일 혹은 좋은 의도로 시작하는 일은 좋게 전달하고, 안 좋았던 일들을 전달할 때에는 팬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야 합니다. 대신,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요소는 더 정확하게 짚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 제가 사랑하는 농구가 상처를 받지 않을 거예요.
KBL에서의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
KBL과 10개 구단이 매 시즌을 치르듯, 저도 매 시즌을 KBL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 잘 했던 것과 잘못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짚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KBL과 저 모두 발전할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농구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전히 농구 팬이에요. 출근하고 나서 동료들이랑 “그 경기 봤어? 어땠어?”라고 이야기를 시작해요. 농구 이야기를 하는 게 제일 재미있기도 하고요.
저는 예전도 지금도 농구를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팬 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겠습니다. 저희 KBL을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씀 다시 한 번 전합니다.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KBL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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