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프면 누구에게 의지할까? 남편 vs 아내

김용 2023. 5. 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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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헬스앤]
남편은 몸이 아프면 아내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은 간병-식사 등을 아내에게 86.1%나 의지하지만, 아내는 이 비율이 36.1%에 그쳤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예전 영화에는 딴살림을 차린 바람둥이 남편이 늙고 병들어 조강지처를 찾는다는 스토리가 꽤 있었다. 아내는 주위의 극심한 반대에도 병든 남편을 받아들여 간병까지 한다. 남편은 "착한 당신을 두고 딴 여자에 빠진 내가 바보야... 미안해..."라며 숨을 거둔다는 내용이다. 진부하고 공감하기 힘든 내용이지만 눈물을 쏟는 관객들도 있었다. 요즘 이런 내용을 담으면 작가나 감독이 비난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젊고 건강할 때는 밖으로 떠돌다가 몸이 쇠약해지면 아내에게 기대는 남편의 심리는 무엇일까?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회사만 챙기고 가족을 소홀히 하던 남편이 퇴직 후 아내에게 의존하는 모습은 흔하다.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하고 아내가 외출하면 "어디가?"라며 묻는다. 24시간을 아내와 같이 하겠다는 기세다. 나이 든 아내는 속에서 열불이 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자녀가 결혼하면 따로 사는 경우가 대세다. 집 마련 등 경제적 여건이 문제지 부모도 자녀의 분가를 원하는 추세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남편 퇴직 후 20~30년을 부부만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 시대다. 내가 아프면 남편이나 아내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로 바쁜 자녀에게 연락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이는 대한암학회 국제 학술지(Cancer Research and Treatment)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몸이 아프면 배우자에게 가장 많이 의지한다. 다만 남편이 아내에게 기대는 정도가 더욱 크다. 거동이 불편한 남편은 간병, 식사, 생활 보조 등을 아내에게 86.1%나 의지하지만, 아내는 이 비율이 36.1%에 그쳤다. 아내는 아파도 본인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12%나 됐다. 딸(19.6%)이나 아들(15.8%), 며느리(12.7%)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몸이 아프면 심리적으로도 누구에게 기대고 싶어한다. 이 부분에서도 아내, 남편의 태도가 큰 차이를 보였다. 남편 환자의 84%가 아내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반면에 아내는 이 비율이 32.9%에 불과했다. 아내는 평생을 같이 산 남편보다는 딸(28.5%)과 아들(17.7%)에게 더 의지했다. 이는 국내 11개 병원에서 치료받은 암 환자 439명(평균 70.8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경제적 지원 면에서도 남편과 아내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남편은 여전히 아내(34.2%)로부터 치료비 등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받지만, 아내는 남편이 두 번째(31.6%)였다. 1위는 아들(40.5%)이었다. 환자의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배우자 의존 비율은 줄고, 자식이 이를 대체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들과 딸도 역할이 달랐다. 딸은 위로 등 정서적 지원(13.9%)이 아들( 9.3%)보다 두드러졌지만 경제적 지원 면에서는 아들(30.7%)이 딸(9.5%)을 압도했다. 치료 방법 등 의사결정도 아들(24.6%)이 주도한 면이 있다. 딸은 10.2%였다.

통계청의 기대수명 분석을 보면 여자는 남자보다 6년을 더 오래 산다. 남자의 기대수명은 1970년 58.7세에서 2020년 80.5세로 껑충 뛰었다. 여자도 65.8세에서 86.5세로 상승했다. 식생활 개선, 질병 치료 수준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남녀 간 기대수명 차이는 1970년에 7.1년이었지만 2020년에는 5.99년으로 줄었다. 아내는 남편보다 더 오래 살지만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이 관건이다. 이 시기에 아프면 자녀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남편이 아내에게 노년에 의존하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배우자와 사별하면 사망 위험이 아내는 약 30%이지만, 남편은 70%로 2.6배 더 높았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이 덴마크의 65세 이상 92만5000명을 6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다. 아내를 65세~84세에 잃은 남편은 사망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간병 등을 의지해온 병든 남편은 사망할 위험이 더욱 커졌다.

글 서두에 병들어 조강지처를 찾는다는 사례를 들었지만 일부 남성들은 나이 들어 혼자 되면 막막한 경우가 적지 않다. 평생 술-담배에 찌들어 살며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데다 식사 준비도 못하는 사람이 꽤 있다. 한 재혼 상담 방송 프로에서 "밥하기가 힘들어 나왔다"는 돌싱 중년 남성 출연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이 들면 가사 분담은 필수다. 식사 준비, 청소 등 가사도 부부가 나눠서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체 활동이 늘어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여성은 몸의 변화가 심한 갱년기를 고비로 건강관리에 부쩍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남성은 나이 들어도 건강관리에 무심한 사람이 적지 않다. 나이 든 아내가 힘들게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소파에 편하게 누워 TV만 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몸을 움직이는 가사도 운동효과가 높은 훌륭한 신체활동이다.

중년도 늦지 않다. 음식을 가려 먹고 근력을 키워야 한다. 병들면 나이 든 아내를 다시 고생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내의 건강도 나빠진다. 노년에 음식 하나 만들 줄 모르면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중년-노년 남자들도 집에서 혼자 '생존하는' 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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