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참전용사 장례식에 울려퍼진 ‘아리랑’

김현아 기자 2023. 5. 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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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백마고지 전투 생존자였던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질베르 호펠스가 별세했다.

벨기에대대 일등병이자 기관총 사수로 임무를 수행하던 호펠스는 이 전투에서 살아남아 이듬해 1월 룩셈부르크로 복귀했다.

호펠스가 참전 당시 기록했던 일기는 현재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사료로 전시돼 있다.

한편 호펠스의 사망으로 룩셈부르크의 생존 참전용사는 2명으로 줄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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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유언 남기고 별세한 6·25 백마고지 전투 생존자 호펠스
1951년 한국전쟁 자원 참전
벨기에대대 소속 기관총 사수
생전에도 한국에 관심·애착 커
한인회장이 장례미사서 불러
8일 룩셈부르크 레미히의 한 성당에서 열린 6·25전쟁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질베르 호펠스 장례식에 놓인 추모패. 박성호 주벨기에 유럽연합(EU) 한국대사관 무관이 이날 국가보훈처에서 제작한 추모패를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연합뉴스

6·25 전쟁 백마고지 전투 생존자였던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질베르 호펠스가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생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인물로, 8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 현지에서 진행된 장례 미사에서도 그의 유언에 따라 아리랑이 추모곡으로 울려 퍼졌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호펠스는 지난달 24일 현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룩셈부르크 한국전 참전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히 활동했지만, 고령의 나이에 입·퇴원을 반복하다 결국 병원에서 눈을 감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장례는 이날 룩셈부르크 남동부 레미히 지역 한 성당에서 소규모로 진행됐다. 호펠스의 아내가 수년 전 먼저 작고했고, 슬하에 자녀가 없어 조카들과 지인들 위주였지만, 박성호 주벨기에 유럽연합(EU) 한국대사관 무관(대령)·박민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 등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고 한다.

이날 장례식에서는 특별 추모곡으로 ‘아리랑’이 선정돼 눈길을 끌었다. 고인이 ‘장례 미사에서 아리랑을 불러달라’고 적어둔 유언장을 조카가 발견하며 이뤄졌다고 한다. 아리랑은 호펠스가 생전 인터뷰 도중 직접 부르기도 하고 생일 파티 축하곡으로도 사용했을 정도로 고인이 좋아했던 곡으로 알려졌다. 이에 호펠스의 조카가 박 회장에게 유언장 내용을 알렸고, 박 회장이 직접 미사에서 아리랑을 부른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이 참전 뒤 재직했던 현지 세관 관악단이 반주로 함께했다.

호펠스는 1951년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입대한 후 한국전 참전에 자원했다. 군 복무가 끝나갈 즈음이라 부모가 반대했지만 그는 1952년 3월 부산에 도착, 백마고지 전투 등에서 벨기에대대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그해 강원 철원 일대에서 국군 9사단이 중공군과 격돌했던 전투로,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벨기에대대 일등병이자 기관총 사수로 임무를 수행하던 호펠스는 이 전투에서 살아남아 이듬해 1월 룩셈부르크로 복귀했다. 호펠스가 참전 당시 기록했던 일기는 현재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사료로 전시돼 있다.

고인은 생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처의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에 최소 열 차례 참석했을 정도다. 한편 호펠스의 사망으로 룩셈부르크의 생존 참전용사는 2명으로 줄게 됐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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