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 경제] ‘조타수’ 추경호, ‘위기대응’ 성공적… “무역적자 줄이고 성장률 높이는건 숙제”
확장→건전재정, 정부→민간 성장 주도권
글로벌 과속 긴축서 초래된 금융위기 ‘선방’
1년째 나아지지 않은 지표는 치명적 약점
“2년차, 무엇보다 경기침체 대응 주력해야”
기획재정부는 대한민국 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2022년 5월 11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사
‘대한민국 경제의 조타수’를 자처한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팀 수장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임기가 오는 10일 1년을 맞는다. 추 부총리의 1년은 과거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 운용 기조를 ‘건전 재정’으로 180도 전환하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을 비롯해 ‘레고랜드 사태’로 불리는 금융시장 혼란까지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기간으로 요약된다.
그 결과 6%대까지 치솟았던 물가 상승률을 3%대로 진정시키는 한편, 레고랜드 발(發) 단기금융시장 불안이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 잇따른 대내외 대형 경제·금융 사고에도 발 빠른 시장 안정 조치로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방향은 옳았으나 성과는 미미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 부총리가 지명된 즈음 시작된 지난해 3월 무역수지 ‘적자’ 기록은 올해 4월까지 14개월째고, 경상수지마저 11년 만에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물가가 진정세를 보이긴 했지만,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여전히 4%대로 높다. 부동산 침체와 기업 실적 부진이 겹치며 올해 ‘세수 펑크’는 확실시된다. 경기를 부양할 실탄은 바닥났는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마저 1%대 초중반까지로 하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 “재정 ‘건전’, 경제 ‘민간 주도’” 뚜렷했던 기조 전환
재정 건전성 확립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과제이자 경제 부흥의 근간이기에, 이를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기조입니다. 그동안은 정부 재정 주도의 경기 대책이 주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법령이나 제도 등)를 가급적 빨리 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4월 10일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기자 간담회 중 발언
추 부총리는 내정 당시부터 재정 운용은 ‘건전해야 한다’는 뚜렷한 신념을 드러냈다. 정부 수립 이후 70년간 600조원 가까이 쌓인 국가채무가,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만 400조원 증가하며 지난해 ‘1000조원 시대’를 맞은 탓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인 2018~2022년 평균 8.7%에 달했던 총지출 증가율(본예산 기준)을 올해 5.1%로 묶었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코로나19 시기인 2020~2022년 연평균 107조원 규모이던 것을 58조원으로 축소해 목표로 잡았다.
재정 효율화를 위한 여러 시도도 잇따랐다. 통상 매년 10조원 안팎으로 이뤄지던 지출 재구조화(재조정)는 24조원 규모로 진행했다. 집행률이 낮거나 유사·중복된 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예산을 깎은 것이다. 학령 인구 감소를 감안해 초·중등 교육에 지원하던 교육세를 고등·평생 교육 분야에 투자할 수 있도록 9조7000억원 규모의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하기도 했다. 공공기관 정원, 경상경비를 줄이고, 불요불급 자산을 매각하는 ‘공공기관 다이어트’를 추진한 것도 재정 건전화의 일환이었다.
정부 재정이 민간 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로 물러나는 동시에 기업 부담 완화도 잇따랐다. 1년 동안 규제 혁신 1027건을 단행했고, 기업 활동에 불합리한 형벌 규정 140건도 개선했다. 법인세율을 과세표준 구간별로 1%포인트(p)씩 인하하는 한편,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도입했다. 해외자회사 배당금 익금불산입 제도 등 이중과세를 조정하기도 했다. 이 밖에 종합부동산세·양도세 등 각종 징벌적 부동산 세제를 정상화한 성과도 있다.
◇ 손발 맞은 재정·통화당국… “거시·금융 위기 선방했다”
앞으로 중앙은행과 정부가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2022년 5월 16일 이창용 중앙은행 총재와 첫 회동을 한 뒤 추 부총리의 말
지난 1년은 거시·금융기관 간 공조가 잘 이뤄진 기간이기도 했다. ‘F4(finance 4)’라는 이름을 붙여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 거시·금융정책 책임자 4인이 매주 일요일 만났다. 덕분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과속’ 긴축으로 초래된 금융시장에서의 사건·사고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0월 불거진 ‘레고랜드 사태’다. 당시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조치가 신속하게 단행되면서, 회사채·단기자금 시장의 불안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크게 전이되지 않고 조기에 안정화했다. 과거 위기 시 통상 두세달 뒤에나 신용 스프레드가 축소되는 흐름을 보인 데 비해, 이번 레고랜드 사태 때는 40여일 만에 회복했다는 것이 기재부의 설명이다. SVB·크레디트스위스(CS) 등 최근 글로벌 은행 사태에도 우리 주식·외환시장은 큰 동요 없이 위기를 넘기고 있다.
추 부총리 임기 시작 전부터 1급 이상 간부들과 도시락 만찬을 열어 논의할 정도로 주요 과제였던 ‘고물가’도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지난해 4월 4.8%로 시작한 물가 상승률은 7월 6.3%까지 치솟았으나, 점점 둔화해 지난달 3%대(3.7%)까지 낮아졌다. 기재부는 주요국 대비 양호한 물가 수준을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 개선 않는 지표, 세수 펑크 위기… 2년차 ‘경기침체 대응’ 과제
진단은 정확하게, 공개는 솔직하게, 판단은 균형있게 해야 합니다.
2022년 5월 11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사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 지표는 현재 처참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물가 사정이 나아졌다지만 근원물가 상승률은 4%대로 높고, 물가 상승률 3%대도 여전히 목표치(2%)에는 못 미친다.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을 보여주는 경상수지는 1·2월 11년 만에 두 달 연속 적자를 나타냈고, 수출 감소 7개월째, 무역적자는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줄이어 하향 조정될 신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7%에서 1.5%로 낮췄고, 1.7%에서 1.6%로 하향한 한국은행 역시 재 하향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 4월 말 기준 주요 투자은행 8곳의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1%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정부가 내놓은 공식 전망치는 1.6%인데, 다음 달 발표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성장 동력이 둔화하는 가운데, 경기 부양의 실탄이 돼줄 세수는 ‘펑크 위기’에 처했다. 올해 1~3월 누계 국세 수입은 87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4조원 감소해, 2000년 이후 역대 최대 감소분을 기록했다. 부족한 세수를 채워줄 유일한 희망이었던 ‘상저하고’ 전망도 ‘상저하중’ 또는 ‘상저하저’까지 예측되며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정준칙 법제화는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방향성은 좋았으나, 절반만 성공했던 1년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연금·교육·노동 등 3대 개혁과 재정준칙 도입, 교육교부금 개편 등 인기 없는 정책을 공론화하며 방향 설정은 잘했다고 보지만, 추진력이 미약했다”면서 “제대로 된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2년 차를 맞은 지금 그간 미미했던 성과들에 추진력을 실으면서도, 경기 침체 대응과 수출 살리기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은 인플레이션 상황 등이 아직 여의찮으니,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집중하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생산기지, 수출 시장, 천연자원, 중간재 수입처로서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가 회복하지 못하고 성장이 가라앉고 있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간 잡아 온 경제정책의 방향성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조언도 덧붙여졌다. 김학수 선임연구위원은 “선거철이 다가오니 정부나 여당이 돈을 쓰고 싶을 것”이라면서도 “포퓰리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 그에 기반한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 것이 당장 이 정부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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