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후 두번째 전승절…러시아 '표정 관리'에도 행사 줄취소
푸틴, 대국민 연설 후 구소련 정상들과 조찬…젤렌스키는 "패배할 것"
독일 베를린 전승절 행사에 러·소련 국기 반입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러시아가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두 번째 전승절을 맞은 가운데 올해 기념 행사는 대폭 쪼그라든 규모로 열린다.
전승일은 1945년 5월 9일 소련이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것을 기념하는 날로, 러시아는 이를 중요한 국경일로 여겨 대대적으로 기념한다.
매년 전승절마다 대규모 군인과 무기가 동원되는 열병식, 시민들이 참전 용사들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불멸의 연대' 등 웅장한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올해는 20개가 넘는 도시에서 열병식을 취소했고, 불멸의 연대 행사도 열리지 않는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취소 이유로는 '보안 문제'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두 번째로 열리는 전승절 기념행사인 만큼 우크라이나 측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NYT는 전쟁 중에 많은 인파가 모이면 사회 불안과 소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러시아 내부의 두려움이 행사 취소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상징인 열병식이 줄줄이 취소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지난 수년간 전승절 기념행사들은 단순히 승리를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러시아를 위협하는 서방을 무찌를 필요성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도 모스크바의 중심지 붉은광장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열병식은 평소처럼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군인 행진과 옛 탱크부터 대륙간 탄도 미사일까지 전시하는 퍼레이드에 이어 푸틴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도 예정돼 있다.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 정상들과 행사를 지켜보고 비공식 오찬도 함께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에는 전승일 행사에 해외 정상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지역은 모스크바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벨고로드의 뱌체슬라프 글라드코프 주지사는 "도시 중심지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군 차량과 군인의 행진은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며 지역 안전을 위해 열병식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리페츠크의 이고르 아르타모노프 주지사는 "우리는 두렵지 않다"면서도 "네오나치가 위대한 전승절을 망칠 수 있고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어서" 전승절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에서는 군 또는 기반 시설을 겨냥한 드론 공격이 빈발하고 있다. 크림반도 세바스토폴과 같은 우크라이나 접경지는 물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크렘린궁도 드론의 표적이 됐다.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승절을 겨냥해 "현대 러시아가 되살리고 있는 모든 낡은 악은 과거 나치가 그랬듯이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먼 지역도 전선에 있는 지역과 단합한다며 행사를 취소했다. 공군 퍼레이드를 취소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일부 도시들은 행사 규모를 축소하기로 했다.
불멸의 연대 행사도 "공격 가능성에 대한 예방 조치"로 취소됐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수많은 사람이 이번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사진을 들고 나오면 그동안 증가한 전사자 수 규모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꺼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한편 독일 베를린에서 8∼9일 열리는 전승절 행사에서는 러시아 및 소련 국기 반입이 금지됐다.
베를린 경찰은 지난주 폭력 사건 방지를 위해 전승절 기념행사 중에 러시아의 침공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상징물과 제복, 노래, 깃발 등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친러시아 활동가들이 반발해 베를린 법원은 러시아 국기 등을 허락하는 명령을 내렸다가 8일 상급법원이 이 판결을 뒤집었다.
당초 우크라이나 국기도 금지 대상이었지만, 법원은 우크라이나 국기는 허용하기로 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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