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범죄’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김동진의 다른 시선]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2023. 5. 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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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여고생 라이브 방송 투신자살로 이끈 ‘우울증 갤러리’ 성착취 및 극단적 선택 사건 들여다보기

(시사저널=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4월16일, 서울 강남의 한 건물 옥상에서 10대 여고생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SNS 라이브 방송을 켠 상태로 투신자살을 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 여성은 익명 기반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중이었다. 사건 당일에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난 20대 남성과 함께 있었으며, 이들은 우울증 갤러리의 하위 모임인 '신대방 패밀리'(이하 신대방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20대 남성 A씨는 '우울증 갤러리'에 동반자살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고, 거기에 10대 여고생 B씨가 응답해 만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그 일을 행동에 옮긴 것은 여고생인 B씨뿐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우울증 갤러리'와 특히 '신대방팸'의 20대 남성들이 10대 여학생들을 유인해 성폭력, 마약 투약, 폭행 등을 저질렀다는 제보가 빗발쳤다. 이에 경찰은 4월28일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혐의로 '신대방팸'의 20대 남성 4명을 입건했다. 또 5월1일에는 A씨를 자살방조 및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 '신대방팸'의 남성들은 신대방동의 한 다세대주택을 근거지로 삼아 다수의 10대 여성을 유인해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불법촬영 및 유포 협박으로 성폭행을 지속했다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B양 사건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성범죄 피해를 보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다른 여성이 여러 명 있었다는 제보도 있다.

ⓒ시사저널 양선영

심리적 취약 상태 빠진 10대 여성들 유인

여성이든 남성이든 나이가 적든 많든,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고, 심리적으로 취약해지는 시기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주변 자원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예컨대 10대 시절에 학교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중대한 폭력 피해 경험을 터놓고 의논할 친구나 부모 혹은 주변 어른과 같은 자원이 없을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부분은 아니며,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우울증 갤러리'에서는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도대체 우리 사회의 성별 불평등과 권력 역학이 온라인상에서 취약한 개인의 착취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 것일까.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지지하기 위해 생겨난 게시판이다. 사실 예전부터 우울한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 항상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온라인상에서 우울증과 관련된 모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는 회원 가입 절차도 필요 없이 누구나 익명으로 손쉽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인기 있는 커뮤니티가 되었다.

따라서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도 취약한 상태에 있는 청년들이 '우울증 갤러리'에 모이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질병관리청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0대 청소년의 우울증 경험 비율은 남성이 24.2%, 여성이 33.5%로 여성이 더 높다. 또한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2022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25.7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9~24세의 청소년 자살률은 11.1명으로 2016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울증 갤러리'에 유입되는 실제로 우울증 진단을 받거나 우울증상을 겪고 있는 10대 여성들은 주변에 자신을 지지해 주는 그 어떤 사람, 혹은 자신이 신뢰할 만한 그 어떤 어른도 없는 취약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부모가 이혼한 후 그 어느 부모에게서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 학교에서 학교폭력 혹은 왕따 피해자가 되는 경우, 이에 더해 각종 남성들로부터 성폭력에 시달리는 경우 미성년인 10대 여성은 물리적·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우울증 갤러리'도 처음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글과 이미지를 공유하며 서로 친구 삼고 의지하는 온라인 공간이었을 수 있다.

정신건강 관련 지원 시스템 강화해야

현실 세계에서 잡을 지푸라기 하나조차 없어 온라인 공간에 유입된 사람 입장이라면, 자신에게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면 누구든 만나고 싶어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를 악용해 여고생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등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나이 많은 남성과 나이 어린 여성 사이에서 관계의 권력은 어디로 기울까. 게다가 여성이 미성년자이고 심리적으로 취약한 우울한 상태에 있다면.

의도적으로 '우울증 갤러리'의 10대 여성들에게 접근한 20대 남성들은 온라인상에서 여성을 위로해 주며 친분을 쌓고, 실제로 만나서 피해자의 거부에도 술을 강권하고 성폭행까지 저질렀다. 또한 불법촬영을 하고, 그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며 성희롱을 하고, 불법촬영물을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하는 방식의 성범죄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최악의 조합이 다 있는 진화된 n번방" 범죄라 칭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신건강과 성착취, 성별불평등의 교차 지점에 서있는 이 '우울증 갤러리' 사건과 같은 범죄에 관해 어떠한 사회적 차원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경찰은 4월18일, 디시인사이드 측에 '우울증 갤러리' 게시판 폐쇄를 요청했으나 디시인사이드는 이를 거부했다. 또한 경찰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해당 게시판 접속을 차단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방심위는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차단 의결을 보류했다. 이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경우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제도의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온라인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검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원칙이지만, 이미 사건은 발생했고 공론화되었으며, 그동안 지속돼 오던 범죄를 이제라도 막기 위해 일단 '우울증 갤러리'는 폐쇄돼야 한다.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 정신건강 관련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도 10대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가 있긴 하지만, 일단 양적으로도 더 많이 확대해 누구라도 접근 가능하게 해야 하며, 질적으로도 좋은 상담을 제공해 10대 여성들이 굳이 '우울증 갤러리' 같은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 심리적 힘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밖에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로는 이 사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필요한 경우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있다. 또한 취약한 10대 여성을 의도적으로 노리고 접근해 성착취를 하는 남성이 자신의 행동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할 수 있도록,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평등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 또한 필요하다. 이렇듯 필요한 일들을 어떤 경우 신속히, 또 어떤 경우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해나가면서,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사회 기성세대의 몫이 아닐까. 부디 이 땅의 청년들이, 10대 여성들이 이 사건과 유사한 이유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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