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호화크루즈가 구사하는 '마법'의 놀라운 정체

심영구 기자 2023. 5. 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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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로오션 프로젝트] Ep.4 - Magic Pipe
 

스브스프리미엄, 스프는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준비한 [Dispatches from Outlaw Ocea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웃로오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스프가 준비한 텍스트를 더해 스프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지식뉴스를 전달해 드립니다. 4편의 주제는 '폐기물 불법 투기'입니다.  
 

'떠다니는 도시'급 크루즈가 선보인 마법


2004년 첫 항해를 시작한 캐리비안 프린세스(Caribbean Princess) 호는 주로 카리브해를 오가는 대형 크루즈입니다. 약 3백 미터 길이에, 승객 3천6백 명과 승무원 1천2백 명을 수용할 수 있어 '떠다니는 소도시' 규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크루즈운영사인 프린세스 크루즈가 갖고 있습니다. 이 배에선 규모와 수용인원만큼이나 많은 생활하수와 폐기물이 발생합니다.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요?

여기서 '매직 파이프(Magic Pipe)'가 등장합니다. 2013년 캐리비안 프린세스의 설비 기술자로 일하게 된 크리스토퍼 키스(Christopher Keays)는 크루즈로부터 '매직 파이프'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암묵적인 강요로 인해 결국은 만들어줬는데 그가 이후 내부 고발자로 나서면서 '매직 파이프'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캐리비안 프린세스는 운항을 시작한 1년 뒤인 2005년부터 8년 간 '매직 파이프' 등을 활용한 범죄를 저질러 왔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매직 파이프'는 일종의 우회 시스템이었다

캐리비안 프린세스처럼 규모가 큰 배가 연료로 쓰는 '벙커유'는 연소과정에서 LNG 대비 미세먼지는 24배, 미세먼지 생성물질은 1.8배, 황산화물은 수백 배를 배출해 환경파괴의 주범으로도 불립니다. 벙커유를 연료로 사용하기 전 여과 과정에서 나오는 '유성혼합물 형태의 선저폐수(Oil contained bilge water)'는 그래서 더욱 엄격히 규제를 받습니다. 항구에 정박한 뒤 육지에 배출해야 하고, 만약 바다에 내보내려면 해양 오염 방지를 위해 모든 기름을 제거한 뒤에만 배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캐리비안 프린세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매직 파이프'를 통해 기름이 섞인 폐수를 거르지 않은 채 바다에 버리는 '마법'을 썼던 거죠. 


매직 파이프는 오폐수를 유수분리기(OWS- Oil Water Separator) 등의 여과장치를 거치지 않은 채 불법 배출하는 과정에 사용하는 탈부착이 가능한 정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2016년 캐리비안 프린세스의 모회사인 '카니발 코포레이션'은 선박오염방지법 위반 등 7개의 중범죄 혐의를 인정했고 해양오염 범죄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인 4천만 달러의 벌금을 내게 됐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캐리비안 프린세스의 불법 투기 방식은 '매직 파이프' 외에도 3가지 이상 더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불량 사과 몇 개" VS. '조직적인 범죄'

카니발은 캐리비안 프린세스의 불법 투기에 대해 유감스럽다며 이런 입장을 내놨습니다.
 
"It was very sorry that it had a few bad apples."
(불량 사과 몇 개가 있었다는 데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일부의 일탈이자 과실일 뿐, 조직 전체의 문제는 아니라면서 '불량 사과 몇 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겁니다.

비영리 탐사 저널리즘단체 아웃로오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이안 얼비나는 그러나 이 '매직 파이프' 사건은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은폐라고 주장했습니다. 크루즈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선박 임원과 승무원들로 하여금 장기간에 걸쳐 불법 행위를 하도록 했고 또 다양한 로비를 통해 당국과 국제 사회가 이를 묵인하도록 했다는 겁니다. 


이외에도 '매직 파이프'를 이용해 선저폐수를 불법 배출했던 사례는 속속 드러났습니다. 해운회사 카르보핀(Carbofin)에는 2014년에 불법 배출로 인한 해양오염으로 275만 달러, 포트라인 벌크 인터내셔널(Portline Bulk International)에겐 2019년 150만 달러의 벌금을 각각 부과됐습니다. 썩은 사과 몇 개가 다른 사과까지 썩게 만들었든 아니든 간에, 일상적인 선박 운항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내보내는 유류 배출량은 우발적인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한 양보다 8배 넘게 많다고 이안 얼비나는 설명합니다.

 

'셀프 투기'인데 '셀프 신고'할까


국제해사기구(IMO)는 1973년 [선박으로부터 오염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MARPOL)]을 제정했고 1978년엔 유류 유출사고 경험을 바탕으로 협약을 개정했습니다. 현재 해양 불법 투기는 이 개정 협약인 MARPOL 73/78에 의해 규제돼 적발 시 선주와 승무원, 기술자 등은 막대한 벌금을 무는 건 물론,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근절되지 않는 걸까. 우선 꼽을 수 있는 건 감시감독의 어려움입니다. 바다 위를 오가는 선박, 특히 개별 나라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공해를 운항하는 선박이 배출 규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일일이 감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선박 내에 각종 오염방지설비를 갖췄는지, 항구나 터미널에 마련된 시설을 통해 폐기물을 처리하는지는 감독할 수 있지만, 이는 배가 정박했을 때만 이뤄질 수 있습니다. 

바다를 항행하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MARPOL 73/78의 각 부속서에 따라 선박 측에서 스스로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데 불법 투기를 저지르고 있을 경우 이를 신고할 리가 없습니다. 내부 고발자가 나서지 않는 이상, 셀프 신고는 효과를 보기 힘듭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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