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1조짜리 증권사가 2조 CFD 굴렸다…사고 터지자 신규 계좌 중단 ‘꼬리 자르기’
KB증권, 지난달 말까지 상품권 이벤트하다 계좌 개설 중단
자기자본 규제 사각지대 활용 수수료 장사
SG증권 발(發) 주가 폭락 사태의 수단으로 악용됐던 차액결제거래(CFD)가 급증했던 이유로 자기자본이 적은 증권사가 규제받지 않고 영업할 수 있었던 환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보증권 등 일부 중소 증권사는 자기자본 1조원 남짓이지만 2조원이 넘는 CFD 거래를 중개해 수수료를 받았다.
일부 증권사는 올해 초 해외시장까지 CFD 서비스를 확장했고 이를 기념해 백화점 상품권까지 지급하며 고객을 모았지만, SG사태로 논란이 일자 9일부터 신규 계좌 개설을 중단했다. 수수료에 눈이 먼 증권사들이 악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서도 CFD 영업을 확장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개인투자자에게는 CFD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자정부터 KB증권(KB금융)은 CFD 신규 계좌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이에 앞서 전날 교보증권과 키움증권이 신규계좌 개설을 중단했고,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한국금융지주), 신한투자증권(신한지주)도 CFD 계좌개설을 중단한 바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CFD 서비스를 도입한 13곳의 증권사 대다수가 신규 계좌 개설을 중단할 것으로 예상한다. 계좌 소유자가 드러나지 않는 익명 거래가 가능해 주가 조작에 악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매년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해오다가 주가 조작이 문제가 되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계좌 개설을 중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증권사가 자기자본으로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신용융자는 자기자본 규모까지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자기자본이 1조원이면 1조원까지만 신용융자를 내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장외파생상품으로 차액만 정산하는 CFD는 이런 규제가 없어 자기자본이 적어도 제한 없이 CFD 규모를 늘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자기자본이 적거나 신용융자를 한도까지 거의 소진해 서비스했던 일부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입을 얻기 위해 공격적으로 CFD 서비스를 확대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융자처럼 직접 돈을 빌려주지는 않지만 100원짜리 주식을 40원(보증금)만 주면 살 수 있어 실제로는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효과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집계한 2022년 자본시장위험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교보증권의 CFD 거래 잔액은 2조1554억원이다. 이 해 CFD 서비스를 하던 전체 11개 증권사의 거래 잔액이 5조4051억원이었는데, 이 중 40%(39.8%) 가까이가 교보증권 1곳에 몰렸던 셈이다. 당시 교보증권의 자기자본은 1조3967억원이었는데 자기자본의 1.5배에 달하는 돈을 CFD로 굴리고 있었던 셈이다. 2위였던 키움증권도 CFD 잔액이 8382억원에 달해 한국투자증권(2422억원), 삼성증권(2354억원), NH투자증권(154억원) 등 대형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CFD 서비스를 제공했다.
교보증권과 키움증권이 CFD 수수료로 받은 금액은 매년 수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교보증권이 2조원 넘게 CFD 잔액이 있었던 2021년, 이 증권사의 투자중개 수수료는 1744억원이었다. 전체 영업순수익(4307억원)에서 가장 큰 비중(40.4%)을 차지했다. 같은 해 키움증권도 전체 영업순수익(1조4305억원) 중 71.5%인 1조233억원이 투자중개 수수료였다. 투자중개 수수료는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뿐 아니라 CFD 수수료 등을 모두 포함한다. 투자중개 수수료 중 CFD 수수료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교보증권과 키움증권 모두 수수료 비중이 전체 영업순수익에서 가장 크다. 자기자본이 9조5816억원으로 교보증권, 키움증권보다 훨씬 큰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CFD 사업을 하지 않는데 당시 투자중개 수수료 수익은 1조957억원으로 키움증권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교보증권과 같이 자기자본이 적은 증권사는 상대적으로 신용융자의 한도가 적어 CFD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확장했고 키움증권처럼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신용융자를 많이 했던 증권사도 신용융자의 한도가 거의 다다르자, CFD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상품권까지 나눠주며 CFD 영업을 하다 갑자기 계좌 개설을 중단한 곳도 있다. KB증권은 지난 1월 31일부터 4월 30일까지 비대면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CFD 거래 수수료 할인과 모바일 백화점상품권 제공 등 이벤트를 실시했다. 해외 주식까지 CFD 서비스를 확대한 것을 기념한 행사였다. 그러나 SG 발 주가조작 사태가 터지자 9일부터는 신규 계좌 개설을 중단했다.
아예 개인투자자에게 CFD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미국, 홍콩 등 국가는 개인투자자의 CFD 투자를 금지했다. 개인이 하기하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불완전판매가 많고 금융 문맹국 수준인데 금융당국이 CFD 같은 고위험 장외파생상품을 금융투자상품 잔고 5000만원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열어줬고, 여기에 편승해 수수료에 목을 맨 증권사들이 너무나 쉬운 영업을 해와 이번과 같은 사태가 터졌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개인투자자의 CFD 거래를 금지시키는 방법이 CFD 거래가 주가조작 등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근본적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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