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때 아리랑 불러달라"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별세…향년 90세

조제행 기자 2023. 5. 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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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남달랐던 고인은 "장례식 때 꼭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9일 유족들과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에 따르면 호펠스 씨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현지에 있는 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1951년 5월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대했던 호펠스 씨는 군 복무가 끝나갈 때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전 참전에 자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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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호펠스 씨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 전투에서 생존한 룩셈부르크 참전용사가 향년 90세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생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남달랐던 고인은 "장례식 때 꼭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9일 유족들과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에 따르면 호펠스 씨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현지에 있는 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장례는 전날 룩셈부르크 남동부 레미히에 있는 한 성당에서 유가족들과 박민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 박성호 주벨기에대사관 무관(대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8일 소규모로 치러졌습니다.

1951년 5월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대했던 호펠스 씨는 군 복무가 끝나갈 때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전 참전에 자원했습니다.

이듬해 3월 부산에 도착한 그는 당시 일등병이자 기관총 사수로 백마고지 전투 등에서 벨기에대대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 1953년 1월 룩셈부르크로 복귀했습니다.

박 한인회장은 "당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조차 몰랐고, 2차 대전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부모님은 참전 지원에 반대하셨다고 한다"며 "그러나 침략당한 나라의 자유를 되찾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겠다는 마음에서 참전했다고 생전 말씀하셨다"고 연합뉴스에 전했습니다.

그가 참전한 백마고지 전투는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힙니다.

호펠스 씨 역시 불과 10m 거리에서 적군의 포탄이 떨어지는 등 몇 번의 고비를 넘겨 살아남았습니다.

당시 전선에서의 치열한 하루하루를 일기로 기록했고, 이는 현재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사료로 전시돼 있습니다.

한국전 참전 당시 호펠스 씨의 모습 (사진=룩셈부르크 국립전쟁박물관 홈페이지, 연합뉴스)


호펠스 씨는 지난 2019년 한국전쟁유업재단(KWLF)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참전 뒤 20여 년 만인 1975년 처음 재방한했을 때를 언급하며 "당시에 여전히 가난한 아이들과 새로 들어선 많은 건물에 '낯선 감명'을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또 "오래된 기차역들이 아직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 지어진 역들도 많았다"면서 "그때 한 기자가 내게 서울의 변화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냐고 물었고, 나는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선 한복판에서의 기억은 한국에 대한 평생의 관심과 애착으로 이어졌습니다.

참전 뒤 룩셈부르크 세관에서 일한 그가 업무와 무관한 한국 역사에 대한 책도 다수 읽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입니다.

실제로 그는 KWLF와 인터뷰에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한국에 사과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최소 열 차례 보훈처의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 등에 참석했고, 몇 해 전까지는 룩셈부르크 참전용사협회장으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 파병 당시 인구 20여만 명에 불과했으나 100명(연인원 기준)의 전투 병력을 참전시켰습니다.

22개 참전국 중 인구대비 최다 파병국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남은 생존자는 2명으로 줄었습니다.

(사진=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 제공, 연합뉴스)

조제행 기자jdon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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