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튜브 방송 보고 투자 실패? 시청자 책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前 동아일보 기자 2023. 5. 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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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미쿡] FTX 파산에 1조 원대 소송 당한 美 유튜버들

● 돈 받고 암호화폐 홍보한 유튜버 9명
● 미등록 증권 상품 판매 홍보 행위도 불법?
● 고객 피해 영향 정도 따라 결과 달라질 것

지난해 11월 파산한 암호화폐거래소 FTX. [뉴시스]
3월 미국에서 대형 유튜버들이 10억 달러(당시 환율로 대략 1조3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렸다. 이들이 소송을 당한 건 지난해 11월 파산한 암호화폐거래소 FTX가 '미등록 증권 상품(암호화폐를 예치하면 최고 8%까지 이자를 주는 계좌, 이하 FTX 이자계좌)'을 제공하고 판매하는 걸 홍보 지원했다는 혐의였다. FTX 계좌에 암호화폐와 현금 자산을 두고 있다가 FTX 파산으로 계좌가 동결되면서 피해를 본 고객들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1월에 밝힌 바에 따르면, FTX 고객 피해 규모는 8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거래소 고객 피해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유튜버 대상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은 돈 받고 홍보하는 유튜버,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둘러싼 것이다.

연 600만 달러 수익 올리는 유튜버

이번 소송 대상에는 총 9명의 유튜버, 그리고 이들 중 일부에게 돈을 지급하고 FTX 홍보를 하도록 한 매니지먼트회사도 포함됐다. 유튜버들은 하나같이 쟁쟁했다.
‘31세 아빠 겸 재정분석가’로 칭하는 유튜브 채널 ‘케빈을 만나다(Meet Kevin)’의 케빈 패프래스(Paffrath). [유튜브 화면 캡처]
먼저 구독자가 18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케빈을 만나다(Meet Kevin)'의 케빈 패프래스(Paffrath). 자신을 '31세 아빠 겸 재정분석가'로 칭하는 그는 부동산중개업을 하면서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등 경제정보를 제공하는 인플루언서로 활동해왔다. 2021년 9월 치러진 캘리포니아 주지사 주민소환(리콜) 선거에도 출마하면서 더욱 이름을 알렸다. 현역 개빈 뉴섬 주지사를 끌어내릴지 묻는 투표와 더불어 '뉴섬 주지사가 낙마할 경우 그를 대체할 후보'를 뽑는 선거가 치러졌을 때 여러 후보 중 한 명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뉴섬 주지사 소환 투표는 부결됐다.

미등록 증권 홍보 및 뒷광고 논란

4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그레이엄 스테판(Graham Stephan) 역시 여러모로 '케빈을 만나다'의 패프래스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스스로 30세 부동산중개인이자 투자자라고 말하는 스테판은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같은 경제정보를 제공하는 영상을 만들며 인기를 끌었다. 2021년 9월 9일 CNBC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그는 2019년 26세 때 처음으로 연소득 100만 달러를 넘겼고 2020년엔 510만 달러, 2021년엔 비용을 뺀 소득이 600만 달러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특히 2021년 예상 소득 600만 달러 중에서 300만 달러는 유튜브 광고 수익, 나머지 300만 달러는 광고 협찬, 제휴 마케팅 수익 등에서 온다고 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에 살다가 이웃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해 살고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벤 암스트롱은 '빗보이 크립토(BitBoy Crypto)'라는 유튜브 채널로 알려진 암호화폐 유튜버이자 인플루언서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45만 명이 넘는다. 채널 이름은 '비트코인'과 '보이'를 합성했지만 비트코인이 아닌 알트코인을 홍보해온 유튜버다. 그는 방송에서 감정 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다혈질 남성이다.

이 외에도 마술사 출신으로 금융 투자 암호화폐 관련 영상을 만들어온 구독자 220만 명의 안드레이 지크(Andrei Jikh), 비슷한 분야의 영상을 제작해온 구독자 158만 명의 채널 '마이너리티 마인드셋(Minority Mindset)'의 재스프릿 싱(Jaspreet Singh), 구독자 128만 명의 브라이언 정(Brian Jung), 구독자 72만 명의 '파이낸셜 에듀케이션(Financial Education)' 채널 제러미 레페버(Jeremy Lefebvre), 구독자 28만 명의 톰 내시(Tom Nash) 등이 소송 대상이 됐다.

변호사이자 유튜브 구독자 120만 명, 틱톡(TikTok) 팔로워 900만 명인 에리카 컬버그(Erika Kullberg). [에리카 컬버그 인스타그램]
그리고 변호사이자 유튜브 구독자 120만 명, 틱톡(TikTok) 팔로워 900만 명인 에리카 컬버그(Erika Kullberg)와 그가 창업하고 운영해온 매니지먼트회사 '크리에이터스 에이전시(Creators Agency)'가 각각 소송을 당했다.

소장에 공개된 유튜버들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FTX가 고객들(구독자를 포함한 해당 유튜브 채널 시청자)에게 허가 받지 않은 증권(FTX 이자계좌)을 판매하는 데 책임이 있으며, FTX 회사 측에서 수십만, 수백만 달러의 돈을 받고 홍보한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에 제출된 소장은 구글에서 'ftx youtuber lawsuit' 같은 검색어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허가 받지 않은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는 증권 관련법의 문제다. 암호화폐거래소에서 고객에게 제공한 '암호화폐 예치 시 이자 주는 상품(이자계좌)'은 증권인데, FTX가 이 상품을 규제당국에 등록하고 허가 받아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등록 증권 판매이며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품을 유튜브 방송에서 홍보한 것은 이런 불법 행위를 도운 것이고 그 역시 불법이라는 논리다.

"억울하다" 호소하는 유튜버들

유튜버·인플루언서가 특정 업체로부터 대가를 받고 유튜브 등에 업로드할 콘텐츠를 제작한 후 유료광고임을 표기하지 않는 행위를 칭하는 '뒷광고' 역시 문제가 됐다. 이들이 FTX 회사 측에서 거액의 돈을 받았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홍보한 혐의는 공정거래 관련법 위반의 문제다. 연방법은 물론 이번에 소송이 제기된 지역인 플로리다주 관련법 역시 영향력 있는 유튜버 같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돈을 받고 홍보할 때, 회사 측에서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는 점을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거액의 돈을 받고 홍보한다는 점을 밝히지 않은 것은 시청자 및 구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소송을 제기한 FTX 피해 고객 7명은 법원에 같은 피해를 입은 고객들이 모두 참여하도록 허용하는 집단소송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유튜버들의 FTX 홍보 추천 영상을 보고 FTX 이자계좌를 개설했을 피해 고객들이 모두 참여하게 해달라고 한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총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를 초과한다고 밝혔다.

소송을 당한 유튜버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FTX 사태 전후 사과 방송을 내보낸 이들도 꽤 있다. 이번 소송 직후 '케빈을 만나다'의 케빈 패프래스는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내용의 방송을 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보는 시청자에게 '투자자문(personalized financial advice)'을 제공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개인을 위한 투자자문은 전문적인 투자자문가와 계약을 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며 자신과 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아이디어와 관점을 공유하는 것일 뿐 투자자문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방송을 보고 투자를 하는 건 시청자 판단이고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빗보이 크립토'의 벤 암스트롱은 "나는 FTX에서 돈 받고 홍보한 적이 없는데 소송 대상에 포함시켰다"며 무고 혐의로 역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트위터와 방송을 통해 반발했다. 자신은 FTX가 망하기 몇 달 전부터 FTX를 비판해왔고 오히려 계속해서 문제를 지적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가를 받고 금세 폭락할 알트코인 홍보를 해왔다는 다른 유튜버의 비판을 받고 소송을 했다가 취하한 전력이 있다. 2021년 11월 25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선 FTX의 거래소 토큰 FTT를 "곧 폭등할 코인"이라고 홍보한 이력도 있다. FTT는 그가 홍보 영상을 만들기 2개월 전인 그해 9월 80달러 수준까지 오른 뒤 계속 하향세를 보였고 FTX 파산과 함께 1달러대로 추락했다. 암스트롱은 FTX가 망하면서 FTT를 보유하고 있던 자신이 큰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주목되는 FTX 유튜버 소송 결과

이번 소송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암호화폐 관련 인플루언서 소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 사례를 보면, 법원이 소송을 제기한 FTX 피해 고객 측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FTX 홍보 모델로 활동한 미국프로풋볼(NFL) 스타 톰 브래디. [뉴시스]
당장 지난해 11월 FTX 파산 직후엔 FTX 홍보 모델로 활동한 미국프로풋볼(NFL) 스타 톰 브래디, FTX 파산 한 달 전 브래디와 13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세계적 톱 모델 지젤 번천, 미국프로농구(NBA) 스테픈 커리 등이 소송을 당했다. 대상이 다를 뿐 이번 유튜버 소송과 매우 유사한 소송이다.
암호화폐 이더리움맥스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소송을 당한 모델 겸 방송인 킴 카다시안. [뉴시스]
그보다 앞서 모델 겸 방송인 킴 카다시안 사례가 있다. 카다시안은 2021년 6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암호화폐 이더리움맥스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당시 카다시안이 해당 게시물을 올리는 대가로 25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게 증권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소송은 카다시안 측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SEC에 총 126만 달러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지난해 10월 초 종결됐다.

카다시안은 같은 건으로 이더리움맥스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했는데, 지난해 12월 법원은 카다시안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2월 7일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를 비롯한 여러 매체 보도를 보면, 연방법원 판사는 '먹튀 코인 사기'를 홍보해서 손해를 입혔다며 이더리움맥스 투자자들이 카다시안 등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 요구를 기각했다. 카다시안 등이 투자자를 속여서 해당 코인을 구매하도록 공모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판사는 카다시안 등이 '개인적 이익(금전적 대가)' 때문에 홍보를 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행위가 투자자들이 해당 코인을 구매하도록 확신을 줬다는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암호화폐 홍보와 관련해서 인플루언서의 법적 책임에 제한을 둔 판결로 해석됐다.

1조 원대 FTX 유튜버 소송의 결과를 점치기는 어렵다. 원고 측이 '대형 유튜버들이 만든 FTX 홍보 영상으로 인해 많은 시청자가 FTX 이자계좌를 개설해서 피해를 입게 됐고, 홍보 영상을 올리면서 거액의 대가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점이 고객 피해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지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으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다. 암호화폐거래소가 망했으나 거액을 받고 해당 거래소를 홍보했던 유튜버 중 누구도 '내 탓이오'를 외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前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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