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가슴 아프게

최현진 기자 2023. 5. 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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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연락선이 없었다면

날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을

아득히 바다 멀리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1967년 발표된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남진의 노래 ‘가슴 아프게’입니다. 이 노래는 바다 멀리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당시 이 노래는 재일동포가 많이 불렀습니다. 1970년대 일본 가수들이 번역해 불렀습니다. 항구의 아가씨가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갑자기 웬 트로트 가요냐구요. 어제(지난 7일) 한일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 말 때문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3월 6일 발표된 조처(제3자 변제안)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 열어주신 데 대해 감명받았다”며 “저도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을 하게 된 많은 분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게 된 것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림 서상균.


기시다 총리는 분명히 과거사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했을 겁니다. 그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일본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견임을 전제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때보다는 진전된 발언이지만 진정성은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여서 좀 더 기다려보자는 입장입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앞으로 말과 행동으로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가겠단 표현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린 속 시원하게 미래로 가자고 했는데 일본은 속으로는 좋으면서 겉으로는 눈치를 많이 보는 모습입니다.

윤 대통령이 현재까지 과거를 덮는 방식으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열을 올리지만 일본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의 시찰을 허용하겠다는 것 외에는 진전된 것이 없습니다. 사실 이것도 검증인지 단순한 시찰인지 불명확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왜 먼저 나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앞장서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 소재 부품 장비를 갖춘 일본 기업의 협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이건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일본기업은 반도체 제조 강국인 우리나라에 물건을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했을 때에도 일본 기업은 유럽의 지사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우리나라에 소부장 제품을 팔았습니다.

일본은 또 우리의 반도체 제조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대기업 8곳이 미국과 대만의 도움을 받아 기술력을 높이려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열심히 해서 우리를 따라 잡아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양보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 결국 안보 문제로 귀결됩니다. 현 정부는 북한 중국 러시아의 도발에 한미일 공조 체제로 대응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해군력과 정보력을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렇게 서둘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해군과 정보력이 아주 낮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죠. 일본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 좋다는 거죠.

대통령이 속 시원히 국민에게 얘기를 하지 않으니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뭔가 복안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게 없다면….

기시다 총리의 답방은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일본이 뭔가 급한 게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누구는 한미 간 핵협의그룹을 창설한 것과 관련해 일본이 여기에 끼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다른 이는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한국의 동의를 받으려는 뜻으로 풀이했습니다. 뭐가 됐든 윤 대통령이 일본의 핵협의그룹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고, 원전 오염수 문제도 반대할 것 같지는 않으니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방한입니다.

다시 ‘가슴 아프게’ 노래 말로 돌아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과거사가 없었다면 쓰라린 반목은 없었을 것을’. 이런 가사는 윤 대통령를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기시다 총리를 위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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