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없는 SM…에스파, 현실 세계로의 ‘영리한 귀환’
시즌1 세계관 마치고 시즌2로 새 이야기
선주문량 180만 장·발매 첫날 137만장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상세계 ‘광야’로 떠났던 에스파가 현실로 돌아왔다. 귀환한 세계에선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빌런과의 전투를 벌이던 전사들은 하이틴 감성을 입었다. 네 명의 소녀들이 마주한 리얼세계는 달콤하고 청량하다.
“그동안 어둡고 심오한 이야기만 담다 보니, 저희가 한이 많이 맺혔어요. 그 한이 다 풀릴 때까지 무대에서 노는 게 목표예요.” (에스파 윈터)
에스파의 시즌2가 시작됐다. 잘 짜여진 세계관으로 전무후무한 스토리를 이어나간 에스파가 시즌1 격이었던 ‘광야 세계관’을 마치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니 3집 ‘마이 월드’(My World)를 통해서다.
에스파 카리나는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간 광야에서 블랙 맘바를 무찌르며 전사 같은 모습을 보여왔는데, 이번엔 리얼 월드(현실 세계)로 돌아와 우리 나이에 맞는 좀 더 영한 하이틴 감성을 담았다”고 말했다.
에스파의 이번 음반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다. 지난 2월 ‘SM 3.0’의 선언과 함께 시작된 인수전을 마무리한 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SM 아티스트의 첫 앨범이기 때문이다.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 에스파의 변화가 흥미로운 것도 이 때문이다.
에스파는 K-팝 그룹의 전매특허인 세계관과 뗄 수 없는 그룹이다. 데뷔곡 ‘블랙 맘바’(Black Mamba)부터 ‘넥스트 레벨’(Next Level), ‘새비지’(Savage), ‘걸스’(Girls)에 이르기까지 이 그룹은 가상세계와 아바타를 끌고와 그들만의 독창적 스토리를 구축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에스파는 기존 SM엔터테인먼트에서 상당히 공들인 그룹인 데다 SM과 K-팝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에 선두에 있던 팀이었다”며 “다른 그룹은 하지 않는 하드한 콘셉트와 음악, 오래도록 갇혀있던 광야 세계관을 어떻게 빠져나올 지가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2020년 데뷔 이후 3년간 쌓아온 에스파의 세계는 유튜브 콘텐츠로도 총 세 편의 스토리를 만들어낼 만큼 견고했다. K-팝 버전의 SF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던 에스파의 세계관은 지난 10개월의 공백기를 거치며 새로운 세상으로 향했다. 정 평론가는 “‘리얼 월드’로 전환한다는 간단한 설정으로 기존 세계관에서 영리하게 벗어난 점에서 감탄했다”고 말했다.
‘기획의 승리’는 에스파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현실로 ‘귀환’한 에스파는 10개월 만에 내놓은 새 앨범을 통해 “자유분방한 에스파의 다양한 매력을 표현”(지젤)한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새로운 에스파를 만나게 된다.
‘마이 월드’에선 에스파가 ‘리얼 월드’로 돌아오며 겪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실에서의 에스파는 미국 하이틴 영화 속 소녀들처럼 사랑스럽다. 타이틀곡 ‘스파이시’는 신스 베이스에 청량한 고음이 시원하게 등장하고, 과격한 전사 스타일의 안무를 벗어나 싱그러운 소녀들의 동작이 여름 감성을 담는다.
닝닝은 “‘스파이시’는 에스파가 한 번도 해보지 않는 곡이기에 처음 만나는 에스파를 볼 수 있는 곡”이라며 “에스파는 양면성이 있는 그룹이다. 이전엔 전투적인 노래를 했다면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대중적인 시도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수록곡들 역시 다양하다. 지난 첫 단독 콘서트에서 공개한 이후 팬들 사이에선 ‘단짠송’으로 불리는 강렬한 댄스곡인 ‘솔티 앤 스위트’(Salty & Sweet), 감미로운 보컬의 알앤비 곡 ‘써스티’(Thirsty), 몽환적 분위기의 ‘아임 언해피’(I‘m Unhappy), 팬들을 향한 마음을 담은 발라드 ‘틸 위 미트 어게인’(Til We Meet Again) 등 총 6곡이 담겼다.
블랙맘바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세계관의 시즌1은 끝났지만, 에스파는 이번 앨범에서도 기존 세계관의 연속성을 가져간다.
수록곡인 ‘웰컴 투 마이 월드’는 ‘블랙 맘바’와의 전투에서 멤버들을 도와줬던 가상 인간 ‘나이비스’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카리나는 “AI와 춤도 추고 뮤직비디오도 찍어봤는데, 녹음은 처음이라 뚝딱거릴 줄 알았는데, 멤버로 자연스럽게 섞여든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나이비스도 독특하다. 그의 존재를 알기 위해선 에스파의 세계관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에스파 네 멤버는 현실에서 소통하던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 아이(æ)와의 교신이 강제로 끊기는 ‘싱크아웃’ 현상을 만든 ‘블랙맘바’를 무찌르기 위해 광야로 향했다. 이곳에서 벌인 블랙맘바와의 전투에서 조력자가 된 가상인간이 바로 나이비스였다. 나이비스는 광야에서의 규칙을 어기고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네 멤버를 도운 대가로 ‘징벌’을 받았으나, 그 역시 ‘리얼 월드’로 당도했다. 타이틀곡 ‘스파이시’의 뮤직비디오에서 이상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세계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리나는 “가상 현실 속 인물이던 나이비스가 현실 세계에 오면서 이상 현상이 계속되는 것으로 세계관은 지속된다”며 “이번 음반 이후 세계관 시즌3가 나올지는 미정이나, 또 다른 세계관에선 전투를 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랜 휴식 이후 묵묵히 준비해온 과정은 에스파의 자신감으로 묻어났다. 카리나는 “공백이 길었던 만큼 재정비 시간을 많이 가졌고, 어느 때보다 준비도 열심히 했다”고 했다. 윈터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회사에 변화는 많았지만, 우리는 달라진 것이 없다. 공백 동안 어떻게 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며 “도리어 팬들이 혼란스러워할까 걱정했다. 큰 사랑을 받은 만큼 그에 걸맞은 아티스트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에스파의 컴백은 이미 반응이 좋다. 앨범 발매 첫날 세운 기록도 상당하다. 9일 한터차트에 따르면 전날 오프라인에 발매된 ‘마이 월드’는 총 137만2929장이 팔려 나갔다. 에스파는 이번 앨범으로 전작에 이어 2연속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것은 물론 K-팝 걸그룹 음반 발매 첫날 최고 판매량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기존 첫날 기준 K-팝 걸그룹의 최고 판매량은 르세라핌이 세웠다. 르세라핌은 지난 2일 발매한 첫 번째 정규 앨범 ‘언포기븐’(UNFORGIVEN)으로 달성한 102만장이었다. 블랙핑크는 지난해 정규 2집 ‘본 핑크’로 101만 장을 넘겼다.
사실 에스파의 흥행은 예고됐다. 선주문량으로만 180만장을 기록, 미니 2집 ‘걸스’의 161만장을 뛰어넘었다. K-팝 4세대 그룹 중에선 역대 최고 수치다. 현재까지 K-팝 걸그룹 초동(음반 발매 이후 일주일치 판매량) 1위는 블랙핑크 ‘본 핑크’가 세운 154만 장이다. 에스파는 음반 발매 첫날 단숨에 2위로 올라섰으나, 선주문량을 감안하면 최고 기록 달성에도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 평론가는 “이번 앨범은 적당히 에스파의 개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확장성을 담았다. 광야에서 빠져나온 에스파는 다른 세계관으로 가든 어떤 음악을 내놓든 뭐든 할 수 있는 제약이 없는 팀으로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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