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독재자 축출뒤 군벌 무력충돌… 피로 물든 ‘흑인들의 땅’[Global Window]
쿠데타 힘 합쳤던 정부군 - RSF
문민통치 요구 불면서 권력다툼
국제사회, 부패권력 사실상 외면
러시아, 용병으로 분쟁개입 정황
총격에 민간인 포함 550명 사망
수단 머물던 외국인들 탈출러시
‘흑인들의 땅’ 수단이 붉게 물들고 있다. 수단은 7세기 아랍인들이 흑인들의 땅이란 뜻의 ‘빌라드 아수단’으로 부르며 국호 자체가 인종을 나타내게 된 나라. 그럼에도 19세기 수도 인구의 3분의 2가 백인들의 노예가 돼야만 했던 나라. 한때 아프리카 대륙 최대 국가였지만 이를 활용하기는커녕, 내분을 봉합하지 못해 남수단을 분리해야만 했던 비운의 역사가 있는 나라다. 그런 수단이 이번에는 자국 내 정부군과 신속지원군(RSF) 간 유혈 충돌에 피를 흘리고 있다.
핵심은 군벌 간 권력 투쟁이다. 1956년 이집트와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한 이후 67년 동안 쿠데타 시도나 조짐이 서른다섯 차례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누군가는 이를 또 한 번의 내부 다툼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주변국들이 분쟁에 취약한 상황인 데다,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세력 확장을 꾀하던 러시아 민간 용병 회사 바그너그룹이 이번 사태에 관여하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내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십만 명의 난민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벌 무력 충돌에 사상자 급증…80만 명 이상 탈출 전망 = 지난달 15일 북아프리카 수단 수도 하르툼을 비롯한 곳곳에서 정부군과 RSF가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RSF는 대통령궁과 국제공항을 장악했다고 주장했고, 정부는 RSF를 ‘반군’으로 선언하며 전투기를 동원해 반격에 나섰다. 공항 활주로가 검은 연기에 휩싸였고, 거리 곳곳에서는 밤낮없이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 외교관 차량 행렬이 피격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가 계속되자 이들은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일시 휴전하겠다고 합의했지만, 이후에도 교전과 휴전을 반복하며 인명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까지 550명이 사망했고, 490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인이 포함된 숫자다.
수단에 머물던 외국인들의 ‘탈출 러시’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달 25일부터 자국민 1500명 이상을 대피시켰고, 중국도 군함을 보내 자국민과 외국인 등 1만 명을 옮겨 날랐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21일 군 수송기를 급파하는 등 재외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신속 대책을 마련하라 지시했다. 이후 ‘프로미스(promise·약속)’ 작전으로 707특임대와 공군 급유 수송기를 투입, 교민 28명 전원을 무사히 구출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현재진행 중이다. 라우프 마조우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보는 1일 기준 7만3000여 명의 수단 주민이 남수단·차드·이집트 등 이웃 7개국으로 도피했다며 “이들 국가로 81만5000명 이상이 피신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수단인들과 수단 내 남수단 난민들을 포함한 추정치로, 이웃국에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함께 쿠데타 일으켰던 정부군·RSF, 반목 이유는 = 이번 교전의 중심에는 군부 지도자인 압둘팟타흐 알부르한 장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RSF 사령관이 있다. 이들은 2019년 빵 가격 급등으로 반(反)정부 시위가 촉발되자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30년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당시 대통령을 축출했다. 이후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려는 과도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들은 2021년 10월 2차 쿠데타를 일으켜 이를 무너뜨리고 알부르한 장군이 정권을 장악했다. 이때까지는 이른바 ‘쿠데타 동지’로서의 모습이었다.
두 동지의 갈등은 수단에서 문민 통치 요구가 불어오며 시작됐다. 이들은 쿠데타 이후 하르툼에서 정기적으로 민주화 시위가 일자 지난해 12월 민간의 손에 권력을 이양하는 방향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약 10만 명에 달하는 RSF를 정부군에 통합해야 했고, 결국 이것이 뇌관이 돼 첨예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누가 누구에게 종속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동지였던 이들은 이때부터 서로를 향해 맹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다갈로 사령관은 알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정부가 “과격한 이슬람주의”라며 자신과 RSF가 “수단 국민이 오랫동안 갈망해 온 민주적 진보를 보장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알부르한 장군은 문민 통치로의 복귀를 지지한다며 ‘선출된 정부’에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측 모두 나름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현재 쥐고 있는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수단 ‘위기’ 틈타는 외국 세력들…국제사회 적극 개입 필요 =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 바그너그룹이 최근 수단의 RSF를 지원하고 있다는 CNN의 보도가 나왔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의 용병 회사다. 지난해 러시아가 수단 군부를 정치적·군사적으로 돕는 대가로 금 채굴권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 데 이어 아예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바그너그룹 개입은) 수단에서 더 많은 죽음과 파괴를 가져오는 요소로,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2019년 수단 쿠데타 이후 수단 내 상황에 사실상 손을 떼고 있었던 국제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클린 번스 미 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3일 뉴욕타임스(NYT)에 ‘수단 분쟁은 우리의 잘못이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내고 “국제사회가 진정한 정치개혁과 민주정부를 원하는 목소리보다 부패한 무장세력의 목소리를 우선시한다면, 수단에서 목격한 폭력과 고통의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제사회가 2019년 독재 정권 축출에 힘을 보탰던 민주 시민 세력의 힘이 미약했음에도, 분쟁 해결 중재 과정에서 무장단체나 군벌의 이익을 과도하게 대변해 잘못된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번스 연구원은 “국제사회는 폭력적인 분쟁을 종식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나, 평화를 위한 향후 노력에서는 누가 중요하고 누가 중요하지 않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쿠데타·연쇄 폭탄테러·이슬람 무장단체… ‘무차별 폭력’ 시달리는 아프리카
말리·기니·부르키나파소…
민주정부 수립까지 ‘산넘어 산’
쿠데타와 내전의 반복은 비단 동아프리카만의 일이 아니다. 말리와 기니,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에서도 지난 3년 동안 쿠데타가 빈발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까지 기승을 부리며 아프리카 대륙이 눈물 자국으로 뒤덮이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선거’라는 민주주의적 형식에만 얽매인 탓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부르키나파소 북부 야텡가 지역의 카르마 마을에 제복을 입은 무장 병력이 민간인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해 최소 150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두 차례의 쿠데타 끝에 이브라힘 트라오레를 수반으로 하는 군사정부가 권력을 장악, 폭력 사태를 막겠다고 내걸었지만 자국 내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각각 2020년 8월·2021년 5월, 2021년 9월 쿠데타로 기존 정권을 축출한 말리와 기니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달 22일 말리 중부 세바레 마을에서는 3차례에 걸친 연쇄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9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다. 군정이 내달 18일 새 헌법 제정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등 민정 이양 과정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지난 3월 국민투표 일정을 9일 남겨두고 투표를 무기한 연기한 바 있어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쿠데타 정권에서 민정 이양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 하더라도 또 다른 쿠데타가 발생할 위기가 상존한다는 점이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역적 불안정성과 선출된 지도자들의 부족한 통치 능력에 과거 쿠데타 성공 경험들이 겹쳐지며 서아프리카 지역에 ‘쿠데타 물결’이 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월드폴리틱스리뷰(WPR)는 이들 지역에 선거로 지도자가 선출되면 안심하고 말았던 서방에도 일견 책임이 있다고 봤다. WPR은 “(민주화의 성공 척도를) 선거에만 두다 보니 안정적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다른 모든 요소가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이슬람 무장단체까지 세력을 넓히며 아프리카 대륙을 위협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이들 급진 세력을 비롯한 테러리스트들이 지난 5년 동안 영토 최대 40%를 장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학교 2500여 곳이 문을 닫았고, 100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난 상태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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