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헌법 제정할 칠레 의회, 우파 대거 입성···헌법 방향성 바뀌나
칠레 정부가 추진해온 새 헌법이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데 이어 이번에는 새 헌법을 제정할 제헌 의회 성격의 헌법위원회 선거에서 야당인 우파 계열 정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40여년 전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제정된 헌법을 뜯어고치려던 계획에 또 한번 제동이 걸리며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도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8일(현지시간) 칠레 일간 엘메르쿠리오 등에 따르면 지난 6~7일 치러진 헌법위원회 선거에서 우파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극우 성향의 공화당이 35.40%의 득표율로 전체 51석 중 23석을 차지했고, 또 다른 우파 정당 ‘안전한 칠레’도 21.07%의 득표율로 11석을 얻었다. 두 정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34석으로, 의결에 필요한 5분의3 이상인 31석을 넘어섰다.
반면 보리치 대통령 소속 정당인 좌파계열 ‘칠레를 위한 연합’은 28.59%의 득표율로 16석을 얻는데 그쳤다.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21석에도 미치지 못한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공화당 대표는 “오늘은 우리나라를 위한 더 나은 미래의 첫날”이라며 “칠레는 실패한 정부를 물리쳤다”고 연설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보리치 정부의 무기력과 무관심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위원회는 제헌 의회에서 만들었던 헌법이 지난해 9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다시 꾸려졌다. 당시 헌법에는 원주민 권리 인정 및 배상, 기후변화 책임 및 성평등 강화, 의료·주거·교육권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으나 국민투표에서 61.9%의 반대로 부결되면서 결국 폐기됐다. 새 헌법에 대한 여론 수렴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좌·우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진보 진영에서는 새 헌법이 변화를 제대로 담지 못하다고 비판했고, 보수 진영에서는 특정 세력의 의견을 지나치게 반영했다며 반대했다.
이번 선거로 꾸려진 새 위원회는 원주민과 진보성향 인물들이 대거 진출했던 2021년 제헌의회와 구성 측면에서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 공화당을 이끄는 카스트 대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과 비견될 만큼 극우적인 인물로 꼽힌다. 카스트는 그간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옹호해왔고, 안락사·임신중지·동성결혼·이주민·페미니즘을 반대하고 기후위기를 부정해왔다. 이에 따라 새 위원회가 다시 내놓을 헌법 초안의 내용은 이전과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칠레 언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칠레 정치의 지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칠레의 정치적 판도를 바꿔놨다. 엘파이스는 “(이제 칠레 국민은) 카스트의 헌법과 피노체트의 헌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자 로버트 펑크는 가디언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새 위원회가 헌법에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등 지금보다도 더 보수적인 헌법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그럴 경우 좌파 진영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서고, 또 새 헌법이 부결되며 불확실성과 긴장, 양극화가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로 구성된 헌법 위원들은오는 11월6일까지 새 헌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는 12월17일 시행된다.
칠레의 새 헌법 제정 논의는 2019년 지하철 요금 인상에서 촉발된 ‘사회 불평등 항의 시위’를 계기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정권(1973~1990년) 시절 만들어진 현행 헌법으로는 불평등과 인권침해 등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면서 탄력을 받았다. 2020년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78%가 피노체트 헌법 폐기와 새 헌법 제정에 찬성했다.
정치 분석가 크리스토발 벨로리오는 “지금 칠레의 정치 환경은 (헌법 개정 논의가 들끓었던) 2019~2020년과 같지 않다”며 “팬데믹 이후, 그리고 경제 및 안보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선택을 선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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