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론가 김갑수, 졸혼의 이해(1)_자연스럽게 '각거'하기

서울문화사 2023. 5.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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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졸혼 생활을 즐기는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졸혼에 대하여.

자연스러운 각거

조용한 서울 마포 주택가의 낡은 건물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그의 공간이다. 꽁지머리로 유명한 시인이자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작업실. 문을 열면 그의 반려견 밤돌이가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꽤 넓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찬 LP판과 저음과 고음이 어우러져 기분 좋은 클래식 선율을 들려주는 빈티지 오디오들. 오디오 문외한이 보기에도 꽤 값나가는 물건들임에 틀림없다. 그의 말대로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한 공간이다. 그는 이 작업실에서 살고 있다.

1959년생인 김갑수는 내과 전문의인 아내 변정원 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는 졸혼한 이유에 대해 “37살에 결혼했다. 결혼 못 할 줄 알았는데 집사람이 나를 좋아해줘 결혼하게 됐다. 결혼 생활 초반에는 아이도 생기고 정말 좋았다. 그런데 우리 둘 다 자기의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들이라 따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각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 사는 부부와는 경우가 좀 다르다. 각자 따로 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특별히 사이가 나쁘지 않다. 서로의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삶을 존중할 줄 안다.

졸혼했지만,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결혼해보는 건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거의 완벽하게 결속의 의지를 다지고, 그 속에서 인생에 대한 강한 목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게다가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내 인생 전체 과정에서 여러 경험을 했다. 빛나는 활동도 해보고 처참한 상황에 직면해보기도 하고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과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만큼 커 보인 일은 없었다. 이렇게 엄청난 큰일을 내가 해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그는 우리 시대, 우리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졸혼의 형식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가 말하는 졸혼에 대하여.


저는 엄밀히 말하면 졸혼이 아니라 각거예요.
각자 다른 집에 사는 거죠.
부부가 꼭 한집에 살아야만 결혼 관계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혼을 유지시켜주는 경제 영역, 성적 영역, 생활공동체 이 3가지 중에
1가지만이라도 닿아 있으면 결혼 상태인 거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대부분의 사람이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학업이며 일이며 항상 뭘 해야 하잖아요. 저도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매일 진행하던 방송을 마무리하고 나서는 정말 한가해졌어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 삶을 처음 경험했어요. 갑자기 많아진 시간이 적응이 안 됐는데, ‘내 인생에 있어 이제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시기는 끝난 것 같고, 이제는 여생 비슷하게 편안하게 살자’고 마음먹으니까 괜찮아졌어요. 물론 돈을 모아두지 못해 불안감은 좀 있지만 그것 말고는 평온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래도 바쁘게 살던 게 몸에 배서 하루 일과가 빡빡할 거 같은데 어떠세요?

이렇게 말하면 또 별나 보여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웃음)

별난 게 선생님의 정체성 아닌가요?(웃음)

별나다는 말 듣는 게 싫어서 아닌 척하지만, 사실 전 아주 예전부터 사람들의 일반적인 일과와는 좀 다르게 살아왔어요. 예를 들어 식사를 하루에 한 번만 해요. 두 번, 세 번 하려면 너무 번거로워 한 번에 몰아서 많이 먹어요. 요즘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 뭐 이런 의미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먹었어요. 그러니까 남들 식사 시간하고 아무 상관이 없죠. 사람들 일과가 보통 낮 12시에 점심시간, 오후 6~7시 저녁 시간, 이런 사이클로 돌아가는데 제 경우는 아무 때나 배고프면 오후 4시에도 먹고 24시간 굶었다가 한 번에 많이 먹기도 하고요. 그냥 요즘 내 일상의 기본은 강아지 산책이에요. 하루에 두 번도 하고 더 하기도 하고. 강아지를 잘 돌보는 게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된 거죠.

그러고 보니 선생님 SNS 프로필 사진도 강아지네요. ‘내 아들 밤돌이’.

두 달 됐을 때 데리고 와서 이제 7살을 향해 가고 있네요. 그동안 밤돌이랑 뭉개면서 가장 가깝게 살아왔어요. 관심의 밀도나 애틋함, 내가 얘한테 들인 노력은 다른 가족 구성원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그야말로 대가를 전혀 바라지 않는 열정과 열망, 이런 게 진짜 사랑이구나 싶어요. 대신 저 녀석은 일을 하나도 안 해요. 먹고 놀기만 하고. 하나도 치울 줄도 모르죠.(웃음)

지금은 밤돌이가 선생님의 유일한 동거 가족이네요. 지금도 여전히 졸혼 중이죠?

나는 졸혼이 아니라고 열심히 주장했는데도 이상하게 매체와 인터뷰만 하면 졸혼으로 만들어버리네요. 다시 정리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졸혼은 곧 이혼이에요.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이혼은 법적으로 정리해 완벽한 타인이 되는 건데, 오래 산 부부가 더 이상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약간 편법으로 조정한 것, 법적 혼인 관계를 청산하지 않은 이혼 상태가 졸혼인 거죠. 저는 엄밀히 말하면 졸혼이 아니라 각거예요. 각자 다른 집에 사는 거죠. 부부가 꼭 한집에 살아야만 결혼 관계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혼을 유지시켜주는 경제 영역, 성적 영역, 생활공동체 이 3가지 중에 1가지만이라도 닿아 있으면 결혼 상태인 거죠.

두 분은 언제부터 따로 산 건가요?

한 15년 정도 된 거 같네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나는 글을 쓰고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작업실이 필요했던 거고, 아내는 아침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 나를 서포트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서로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 점점 적어졌죠. 게다가 나는 내 멋대로 살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해서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게 편해진 거예요. 특별히 사이가 나쁜 그런 이유가 아니라. 지금은 이런 각자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과연 옛날처럼 한집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예요.

누가 먼저 졸혼을 제안한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각자 살게 된 거네요?

맞아요. 아무도 제안한 적은 없죠. 내 작업실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집이 있어요. 결혼하고 몇 년 후에 내 일터이자 놀이 공간인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거기서 일하고 사람도 만나고. 살다 보니 옛날과 비교해 돈을 좀 벌게 됐고, 내 인생 전체의 유일한 욕망인 LP판과 오디오를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하이엔드 오디오를 듣다가 1930~1940년대 빈티지 오디오로 기기를 바꾸기 시작했는데, 빈티지 오디오는 이것저것 기계가 많아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특징이 있어요. 이것저것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하니까 할 일이 많아진 거죠. 그래도 예전에는 꼭 집에 들어갔는데, 언제부턴가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오히려 아내한테 방해가 되더라고요. 집사람은 출근해야 하니까 일찍 자는 편인데, 아무래도 내가 집에 들어가면 자다 깨게 되고. “당신 그냥 작업실에서 자!”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작업실에서 지내게 됐고, 가족들이 나를 보러 일주일에 한 번씩 작업실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거죠.

에디터 : 하은정 | 취재 : 박현구(프리랜서) | 사진 : 김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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