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개방한 청와대, 문만 열려 있었다 [윤석열 정부 1년]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 개방 약속은 흔들린 적이 없다. 74년 만에 권력의 축을 옮기겠다고 공언한 뒤 국가적 논란 한복판에 서면서도, 대통령실 이전지 선정 과정을 두고 갖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청와대 문을 열고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는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청와대는 개방 이후가 중요했다. 활용 방식에 따라 새 정부의 색깔과 철학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기 위해 보인 제왕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근 그룹과 여당이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추진력과 결단력, 소통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었다.
개방 1년, 청와대는 문만 열려 있었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활용 방안은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청와대를 주도적으로 관리할 주체는 개방 1년을 약 한 달 앞두고 정해졌다. 청와대가 가지고 있던 권위를 허물고 싶은 쪽과 한국 정치 심장의 역사성을 지켜내고 싶은 이들이 곳곳에서 맞붙고 있지만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은 돌고 돌아 다시 청와대 영빈관을 쓰기 시작했다. 〈시사IN〉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도움을 받아 청와대 개방 이후 현재까지를 되짚었다. 청와대가 보낸 지난 1년에는 혼선과 불통 속에 밑그림 없이 추진된 개방의 부작용, 대통령실 졸속 이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청와대 영빈관은 최근 내부 관람이 자주 제한된다. 건물 외부는 둘러볼 수 있지만 현관 근처엔 입장할 수 없다는 안내 표지판이 놓여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을 활용하는 횟수가 늘고 있어서다. 지난해 12월5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 환영 행사를 청와대에서 연 것이 시작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푹 주석과 영빈관에서 만찬을, 상춘재에서 차담을 가졌다. 대통령실은 이후 카타르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만찬(12월8일), 국정과제 점검회의(12월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국민경제자문회의(12월21일) 등 대통령 행사를 영빈관에서 열었다. 지난해 12월 한 달에만 총 9번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보안 행사’로 영빈관 내부 관람이 제한됐던 날은 총 80일로 확인됐다. 상춘재는 3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행사였다. 김건희 여사만 참석한 행사(3건)도 포함돼 있다. 올해 1월2~30일 사이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정부부처 업무보고 및 회의’를 제외하면 ‘보안 행사’는 주로 하루 일정으로 끝났다. 다만 준비 시간과 철거 시간이 필요해, 행사가 한 번 열릴 때마다 2~3일은 방문객 접근이 금지됐다. 매주 화요일 청와대 휴관일을 제외해도 5개월 동안 절반 이상은 대통령 방문 등을 이유로 영빈관 관람을 할 수 없었다. 대통령 행사는 보안 사항이라, 방문객들은 당일 청와대를 방문해서야 내부 관람 가능 여부를 알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용산 시대’가 시작된 이후 대통령실은 대통령 주요 행사와 외빈 방문에 사용할 장소를 찾아 돌고 돌았다.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윤석열 대통령 주재 만찬은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이후 여러 내외빈 행사가 국방컨벤션센터, 용산 대통령실, 호텔, 대통령 관저, 총리 공관 등에서 열렸다.
대통령실과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찬 때처럼 매번 국립중앙박물관을 활용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모든 내외빈을 관저로 부를 수도 없고, 특급호텔에서 행사를 열어도 국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대통령실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다. 대통령실 주변에 새 영빈관을 지을 수도 없었다. 지난해 9월 대통령실 주변에 영빈관 신축을 추진했으나 백지화됐다. 공론화와 사전 설득 없이 878억원을 쓰겠다고 국회에 예산을 신청했다가 거센 비판이 일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철회를 지시했다(〈시사IN〉 제785호 '왜 국무총리도 모르게 영빈관 신축을 진행했나' 기사 참조).
청와대 영빈관은 대통령과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설계된 2층 건물이다. 지은 지 45년(1978년)이 되었지만, 전임 정부 때 대폭 수리하면서 시설이 개선됐다. 대통령이 국격에 맞는 공간에서 손님맞이를 하는 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를 비우고 대통령실을 옮기며 선언한 ‘용산 시대’ 의미가 흐려지는 딜레마가 문제다. 대통령의 청와대 방문이 잦을수록 용산은 확실한 청와대의 대체 공간이자, 랜드마크로 자리 잡지 못하게 된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2월5일 청와대 영빈관을 다시 사용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공간을 실용적으로 재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관람객 불편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청와대 장소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그런 이유라면 왜 준비도 없이 청와대에서 나왔느냐”라고 맞받았다.
‘국민 문화예술역사 복합공간’ 청와대?
잦아지는 대통령 내외의 영빈관 방문은 구체적 밑그림 없는 청와대 개방 부작용의 단편적 사례다. 청와대 문이 열린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충분한 구상과 계획 없이 추진됐다는 것을 방증하는 흔적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일단 문은 열어뒀지만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대통령실과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문화재청 사이 혼선과 불통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 개방 약속을 대선후보 시절 처음 내놓았다. 2022년 1월27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정치 분야 공약을 발표하면서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고 청와대 부지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라고 밝혔다. 청와대 활용에 대해선 “역사관, 또는 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겠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활용 방안 청사진이 처음으로 나온 건 윤석열 대통령 취임(2022년 5월10일) 3개월 뒤였다. 7월21일 박보균 문체부 장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다. 박 장관은 문화·예술·체육·관광 정책 전반을 주관하며 연 7조원 예산을 쓰는 문체부의 업무계획 보고 과정에서, 청와대 활용 방안 설명에 초점을 맞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문체부가 공개한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청와대 활용 계획 설명은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박 장관은 업무보고 이후 “국민에게 개방한 1단계에서는 문화재청과 청와대 관리비서실이 함께했으나,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드는 2단계에선 문체부가 주도할 것이다”라며 향후 청와대 관리활용 주도권을 가져오겠다고도 밝혔다.
박 장관 구상의 핵심은 청와대를 ‘프리미엄 근현대 미술 전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업무보고 자료에는 ‘청와대 아트 콤플렉스(complex·단지)’라는 소제목으로, 본관과 관저를 상설 전시장, 영빈관은 특별 기획 전시장, 녹지원 등은 야외 특별 전시장, 춘추관은 민간 대관 특별 전시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 상세히 담겨 있다. 해외 참고 사례로 프랑스 베르사유궁과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궁전을 들었다. 그 밖에 청와대를 역사 공간 및 수목원으로 활용하고, 문화재를 보존하는 계획이 업무보고서 한 쪽 분량으로 담겼다.
박 장관 업무보고 직후 청와대가 ‘미술관화’된다는 소식이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문체부는 ‘청와대 미술관화’라는 단어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인다. 강정원 문체부 대변인은 〈시사IN〉과 통화에서 “(박보균) 장관이 청와대 미술관화라는 단어를 쓴 적도 없고, 청와대 전체를 미술관으로 바꾸겠다고 밝힌 적도 없다. 역사 공간, 수목원 활용, 문화재 보존 등에 대해 계획을 세웠음에도 언론과 야당이 미술관 계획만 부각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체부의 이러한 반응은 박보균 장관의 업무보고 직후 불거져 최근까지 이어지는 논란 때문이다.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된 계획이라는 게 논란의 골자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문화재청지부는 박 장관 업무보고 직후 성명을 내고 “문체부가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에게 청와대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기나 했느냐”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동안 문화재 보존과 관리 주무 부처인 문화재청은 청와대 소유권을 가진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실로부터 임시로 권한을 위임받아 청와대 개방 직후부터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청와대 관리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예산을 조정해 청와대 시설 유지보수와 관람객 지원에 투입했다. 청와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관리하고, 기초조사 및 연구, 문화재 지정‧등록 등을 추진했다.
문화재청 정책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 소속 분과위원장들은 박보균 장관의 계획에 대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 지정, 등록, 보존과 관련해 심의를 하는 곳이다. 앞서 분과별 위원장이 ‘긴급회의’를 벌인 때는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등 중대하고 긴급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경우다. 위원회 회의에서는 박보균 장관 구상이 ‘청와대의 역사성 규명과 보존 등에서 우려되는 측면이 명백하다’라는 취지의 의견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예술계 안팎에선 청와대 주요 시설의 미술‧전시관 활용에 대한 의구심도 나왔다. 미술관 용도로 설계되지 않은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하려면, 작품 훼손 방지를 위해 항온·항습 기능을 갖추고 별도 조명을 설치해야 해서다. 그러나 이 경우 청와대 내부 변경이 불가피해 반대로 청와대 원형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실제 문체부가 지난해 가을께 개최하려 했던 '청와대 컬렉션 특별전'이 이러한 이유로 무산되기도 했다.
원형 훼손을 방지하려면 그 원형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하는데, 업무보고 당시에는 이러한 기초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강정원 문체부 대변인은 “청와대 본관 등에는 원래 미술품이 걸려 있었다. 개방 이후 훼손 우려로 별도 보관 중인데, 지난해 7월 업무보고 내용은 그것을 공개한다는 뜻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 대변인의 설명은 업무보고 자료에 담긴 ‘국내외 유명 작가 등 최고 작품 유치 및 기획 전시하겠다’는 계획과 배치된다.
박 장관 구상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에서도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청와대 관리 및 활용 로드맵을 짜기 위해 민간 자문기구를 만들기로 하자마자 문체부가 돌연 청와대 관련 주도권을 가져가겠다고 밝힌 모양새가 돼서다. 문체부 업무보고 사흘 전(지난해 7월18일), 대통령실은 대통령 직속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 구성을 예고했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른 부처들과 달리 문체부가 국정과제에도 없었던 안건(청와대 주요 시설 미술관화)을 협의도 없이 갑자기 발표했다는 식의 뒷말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미술관화’에서 시작된 논란은 대통령실-정부 부처들 사이 혼선이 생겼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문체부와 문화재청, 대통령실이 청와대 청사진을 두고 3파전 양상이 되며 엇박자를 낸다는 것이었다. 명확한 청사진이 정해지지 않은 채 개방된 청와대에는 ‘국민 문화예술역사 복합공간’이라는 정체불명의 수식어가 붙어 사용되기도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각 기관이 제시한 방안을 모두 합친 단어로 보인다.
논란이 커지자 문체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대통령실과 문체부, 문화재청이 협의하며 청와대 활용 방안 마련을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문체부와 문화재청은 대통령 직속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이 결론을 내고 만든 로드맵에 따르기로 했다. 뒤늦게 일종의 ‘교통정리’가 이뤄진 것이다.
확인조차 불가능한 ‘2000억원 경제효과’
청와대 활용 로드맵을 만들기로 한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 활동이 시작되면서, 문체부와 문화재청은 청와대를 방문객 관람 지원에 초점을 맞춰 운영했다. 박보균 장관의 아이디어도, 문화재청의 주장도 추진 동력을 잃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영빈관 사용이 시작되면서 운신의 폭은 더 줄었다. 청와대 문을 열어두는 것 외에 청와대 활용과 관련한 활동은 사실상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 개방 약속 당시 관심을 끌었던 ‘2000억원 상당의 경제효과’의 진위 여부는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앞서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난해 3월 ‘청와대를 개방하면 매년 생산유발 1435억~1548억원, 부가가치유발 545억~589억원 효과가 발생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연간 2000억원에 달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부터 3월21일 유선으로 요청을 받고 불과 이틀 뒤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0억원 경제효과를 추산하는 과정에서는 ①연간 경복궁 방문객 약 300만명 ②경복궁 인근에 있는 이건희 컬렉션 방문객 1인 평균 지출액 약 2만3000원 ③경복궁 방문객 인원이 모두 청와대를 방문할 경우라는 전제를 달았던 점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졌다.
문체부는 청와대 개방 이후 경제효과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향후 측정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체부는 ‘청와대 경제효과 추산 현황 및 계획’을 묻는 임종성 의원실 질의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의뢰에 따라 긴급하게 검토한 바 있다. 현재로서는 추산 계획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는 답을 보내왔다.
대통령 직속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은 해를 넘겨 올해 초까지도 결론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자문단 출범과 함께 지난해 말까지 결론을 내고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문체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청와대 미술관화’ 계획을 제외했다. 문화재청도 “자문단 로드맵이 나오면 검토하겠다”라는 입장만 밝혔다. 청와대는 여전히 방문객 관람 지원을 중심으로만 운영됐다.
문체부는 4월10일 청와대 권역 운영 기본 방향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박보균 장관의 업무보고 이후 문체부가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 취임과 청와대 개방 1년을 정확히 한 달 앞둔 날이었다. 문체부는 3월31일 대통령실과 문화재청 협의를 통해, 청와대 관리 활용에 관한 업무 주체로 공식 지정됐다고도 밝혔다.
이날 문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향후 추진할 주력 콘텐츠는 대통령 역사·문화예술·문화재·수목이었다. 네 가지 키워드와 연관된 전시, 공연,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도 박 장관의 청와대 주요 시설을 미술관으로 활용하겠다는 청사진은 반영되지 않았다.
부서도 신설했다. 지난 3월27일 문체부 제1차관 직속으로 ‘청와대 관리활용 추진단’이 만들어졌다. 추진단 산하에 ‘청와대관리활용기획과’가 설치됐다. 문체부는 청와대관리활용기획과에 4급 서기관인 과장 1명을 포함해 공무원 20여 명을 배치했다. 통상 과별로 10~15명이 배치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다만 6개월 임시 조직이다. 6개월 단위로 활동 기한을 연장한다.
이번 문체부 운영 방향과 부서 신설의 배경은 청와대 자문단의 최종 검토 보고서인 것으로 확인됐다(〈시사IN〉 제816호 '[단독] “영빈관, 대통령이 계속 사용해야”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 보고서 입수’ 기사 참조). 자문단은 올해 1월 활동을 마쳤고, 2월 대통령실에 검토 보고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IN〉이 입수한 자문단 보고서를 보면, 자문단은 표지와 목차 포함 총 20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청와대 관리활용 방안 로드맵 마련 배경과 기본 원칙, 활용 방안, 향후 추진 계획 등을 밝혔다. 자문단은 청와대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청와대의 역사성과 상징성, 정체성을 원형 그대로 보존‧관리하면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청와대만의 스토리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역사 문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리 활용을 위한 부서를 신설하고, 법 개정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청와대를 미술관과 전시관으로 활용한다는 박보균 장관의 구상은 언급되지 않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4월10일 발표한 청와대 권역 운영 기본 방향 등은 자문단 보고서와 기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문체부의 새로운 계획을 함께 추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자문단 “영빈관은 대통령이 계속 써야”
그러나 자문단 보고서부터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활용을 위한 세부적인 추진 방안은 설명되지 않았다. 보고서의 근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청와대의 역사’나, 그동안 문화예술계 및 국회 공청회 등에서 제안된 내용들과 비슷했다. 올해 초 청와대에서 고려시대 기와가 발견되자 청와대를 문화재로서 관리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영되지 않았다. 박 장관 구상안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점에서도 자문단과 문체부 사이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자문단은 영빈관에 대해선 “본래 역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현직 대통령의 주요 행사 및 외빈 접견에 활용해야 한다. 그 외에는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품격 있는 문화공간으로 사용해야 한다”라고 못 박았다.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상춘재에선 한옥, 한식, 한지, 국악 등 ‘K-전통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필요시에는 현직 대통령의 외빈 접견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시작된 ‘용산 시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결론이다. 자문단 보고서가 완성될 시점인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영빈관을 적극 활용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문단의 결론이 나오기까지, 문체부-자문단, 문체부-문화재청의 소통이 지난해 8월 이후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앞서 문체부는 4월10일 운영 방향 발표와 함께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그동안 청와대 관리 활용과 관련해 대통령실, 문화재청 및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해왔다”라고 밝혔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문체부가 임종성 의원실에 보낸 자료를 보면, 자문단과의 소통은 지난해 8월29일 문체부 예술정책관실이 자문단 회의에 단 한 차례 참석한 것뿐이었다. 자문단과 별도로 주고받은 공문 등 공식적으로 남긴 기록도 없었다. 문화재청과의 논의는 지난해 5월31일 문체부 장관과 문화재청장 면담, 6월28일 문체부 1차관과 문화재청장 면담, 7월18일 문체부 문화정책관-문화재청 차장 면담, 문체부 1차관-문화재청장 면담을 제외하고 모두 유선으로 이뤄졌다. 그마저도 지난해 7월26일 이뤄진 전화 통화(문체부 문화정책관-문화재청 기획조정관)가 문화재청과의 마지막 논의였다. 강정원 문체부 대변인은 “실무자급 이상 관계자들이 대통령실과 지속적으로 협의해왔다”라고 말했다. 기록을 남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문체부는 청와대 관리활용 주체로 지정된 만큼 향후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방침이다. 4월10일 운영 방향을 세분화해 알리기로 했다. 청와대 주요 시설을 활용한 프리미엄 미술관, 전시관 등의 활용 계획은 무산되지 않았고, 장기적 과제로 계속 추진하겠다고 〈시사IN〉에 밝혔다. 특히 올해 미술품 등 전시 사업 목적으로 예산 36억원을 배정받은 만큼, 계획을 세워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반기 계획 일부는 용역계약을 추진 중이고, 하반기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청와대 개방 직후 전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의 발걸음은 빠르게 줄었다. 2022년 5월 57만명에 달했던 방문객은 2023년 1월 10만명 수준까지 줄었다가 3월 15만명, 4월 18만명을 기록했다. 〈시사IN〉은 문체부 발표 이후인 4월19~21일 사흘간 청와대를 찾았다. 방문객 대부분이 중장년층과 군복 입은 군인이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중장년층 방문객들은 인솔자를 따라 줄지어 청와대를 관람했다. 이들의 목에 걸린 명찰 등에는 이름과 지자체 행사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청와대 관람 행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된 지자체들은 〈시사IN〉에 “우리 기관이 자체 기획한 관람 행사였다”라고 답했다.
임종성 의원은 “아무런 철학도, 준비도 없이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영빈관 등을 계속 사용해 청와대 활용 계획을 마련하는 데도 큰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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