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행보 늘지만, 책임자는 여전히 불분명 [윤석열 정부 1년]
대선 전 김건희 여사는 ‘조용한 활동’을 약속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 대선 기간 불거진 김 여사의 허위 경력 논란에 사과하고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차원이었다. 약속이 무색하게도 김건희 여사의 행보는 줄곧 윤석열 정부의 국정 평가에 영향을 끼쳤다. 윤석열 정부의 1년에서 김건희 여사를 빼놓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를 한 가지 꼽아달라는 주관식 질문에 ‘김건희 여사의 행보’와 관련한 답변이 1년간 45차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26회) 등장했다(한국갤럽 정례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례 없는 일이다. 한국갤럽은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매주 대통령 국정 지지율을 조사했다(이전까지는 분기별 조사). 그때부터 윤석열 정부 출범 전까지, 부정 평가 사유로 대통령 배우자 이슈가 대두된 건 10년 동안 단 두 번이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인 3월 다섯째 주와 4월 첫째 주 ‘김정숙 여사 의상비 논란’이 항목에 올랐다.
김건희 여사가 처음 부정 평가 이유로 꼽힌 건 지난해 6월 셋째 주다. 김 여사의 팬클럽에서 대통령 부부의 사진과 일정이 나오고, 김 여사가 경남 김해 봉하마을 방문에 지인을 대동한 것을 두고 ‘비선 논란’이 일던 시점이다. 여야 모두에서 제2부속실을 설치해 김건희 여사를 공식적으로 관리하고 보좌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한 제2부속실은 부활하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국내에서 김건희 여사의 단독 공개 일정이 사라졌다. 김 여사는 봉하마을 방문 이후 4개월 동안 대통령 배우자가 동행해야 하는 공식 행사나 외교 일정을 제외하고는 공개적 행보에 나서지 않았다.
그사이 또다시 ‘사적 수행’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6월 나토 정상회의 순방에 대통령 부부의 지인이자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배우자인 민간인 신 아무개씨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동행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7월5일 알려졌다. 한 달 뒤인 8월에는 대통령 관저 인테리어 공사를 맡은 업체가, 김건희 여사가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할 당시 전시를 후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시사IN〉 제778호 ‘관저 공사업체와 대통령 부인의 관계는?’ 기사 참조). 공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을 사적으로 다뤘다는 비판이 반복됐다.
4월24일 대통령실은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국빈 방미 첫 성과로 ‘넷플릭스 3.3조원 투자 유치’를 알렸다. 그러고는 이 공을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김건희 여사에게 돌렸다. 국가적인 산업 투자 유치를 위한 김건희 여사의 ‘노력’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 투자 유치 준비에 핵심적으로 관여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고 김건희 여사에게 중간중간 진행되는 과정을 보고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넷플릭스 투자 유치 건은 정상외교 프로토콜상 명확하게 대통령 고유의 업무 영역이다. 대통령실에 (여사 전담 조직을) 편제해 조직과 인력, 예산을 공식화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실 내부적으로 여사의 업무 위임 범위와 책임 소재가 분명해진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공사 구분 없이 가면, (여사가) 낄 데 안 낄 데 다 끼게 된다. 김건희 여사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공식화해야 한다.”
의전비서관으로 임명된 김 여사의 지인
최근 김건희 여사는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단독 공개 행보 대부분이 해외 일정이었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국내에서도 적극적으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과의 식사(1월27일, 1월30일) 등 단독으로 정치권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대구 서문시장(1월11일)을 기점으로 경북 포항 죽도시장(3월3일), 대전 태평전통시장(4월14일)을 찾아 지역 주민들과 만나기도 했다. 지난해 국내 일정이 자원봉사나 위로·격려 방문 등에 그쳤던 것과도 비교된다.
김건희 여사의 목소리도 커졌다. 4월12일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 “이런 납치(납북‧억류)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에 강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 사실이 연달아 알려졌다.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과 책임을 넘어서는 주장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4월16일에는 김 여사의 대학원 최고위과정 동기인 김승희 전 선임행정관이 의전비서관으로 임명되는 등 대통령실에서 김건희 여사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해석도 나왔다.
문제는 대통령 배우자의 일정과 메시지 등을 총괄하는 담당자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제2부속실장이 이 역할을 맡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제2부속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에서 나아가 대통령 배우자 활동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통령 배우자의 지위나 역할을 규정한 법률은 없다. ‘대통령비서실 직제(대통령령)’에는 제2부속실 같은 ‘대통령비서실에 두는 하부조직과 그 분장사무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정한다’라고만 규정돼 있다. “김건희 여사는 조용한 내조를 한다고 했는데 역할이 계속 확장된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었고, 현재로서 그걸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법에 근거한 역할과 지위를 주지 않으면 지금처럼 김건희 여사가 월권한다거나 투명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채진원 교수).”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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