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그럴 리 없다는 착각 [기자의 추천 책]

김동인 기자 2023. 5. 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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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밀 문건 유출 이후 또다시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쯤 되면 저 태도는 가짜고, 뒤에서는 미국 정부에 항의해 다른 이익을 챙겼으리라고, 우리 정보기관도 미국 정부를 도청하고 있을 것이라고 몽상을 펼치는 게 마음 편할 지경이다.

이 책은 이집트 고대문명 시절부터 에드워드 스노든의 NSA 기밀 문건 폭로까지 인류사와 함께한 비밀 정보기관의 역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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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꼽은 인생 책. 최근 읽은 책 가운데 한 권을 소개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소개됩니다.
〈비밀정보기관의 역사〉
볼프강 크리거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미국 기밀 문건 유출 이후 또다시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 문건에는 한국 정부의 핵심 인사를 도청한 정황도 담겨 있는데, 여기에 대응하는 한국 정부의 공개적 태도는 일관되게 ‘현실 부정’이다. 이쯤 되면 저 태도는 가짜고, 뒤에서는 미국 정부에 항의해 다른 이익을 챙겼으리라고, 우리 정보기관도 미국 정부를 도청하고 있을 것이라고 몽상을 펼치는 게 마음 편할 지경이다.

첩보의 세계에서 친구란 없다. 오랜 기간 그랬다. 이 책은 이집트 고대문명 시절부터 에드워드 스노든의 NSA 기밀 문건 폭로까지 인류사와 함께한 비밀 정보기관의 역사를 소개한다. 정보기관의 역사란 연구하기 까다로운 주제다. 공개된 자료가 제한적이고 각국의 정보활동이 불법과 합법 사이 ‘회색지대’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현장에서 비밀 정보기관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꼼꼼하게 파헤친다. 비밀 정보기관은 지배권력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근대 이전에도 유럽 각국이 적극적으로 이웃 국가에 대한 첩보활동을 벌였고 정치공작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점점 정보조직은 비대해졌고, 지리학·사회학·인류학·정치학·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이는 일종의 싱크탱크로 기능하면서 학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냉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비밀 정보기관을 통제할 것인지에 대해 이 책은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일종의 딜레마다. 시민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테러리즘과 초국적 범죄에 대응해야 하는 역할이 국가에 부여되어서다. 여전히 강대국(특히 미국)은 자신들이 가진 무기(거대한 비밀 정보기관과 인터넷망 감시)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되는 책이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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