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에 불 지르고 떠난 ‘님’에게… 42자 노래제목에 꾹꾹 눌러 쓴 말[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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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학생(김하진)이 도화지에 그림과 함께 3행시를 썼다.
'누가 내 가슴에다 불을 질렀나.' 객석에서 화답한다.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총 42자). 제목을 온전히 외우고 싶다면 그냥 노래를 배우는 게 낫다.
화(火)를 내는 건 불을 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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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학생(김하진)이 도화지에 그림과 함께 3행시를 썼다. 제목은 소나기. ‘소방차가 불난 집 불을 끈다./ 나는 신나게 구경을 했다./ 기절했다. 우리 집이었다.’ 멀리서 불난 걸 구경하다가 그게 우리 집이라는 걸 알고 기겁했다는 얘기다. 포스터의 주제는 불조심이지만 크레파스로 인간의 양면성까지 끄집어냈으니 ‘10점 만점에 10점’(2PM) 주고 싶다.
때마침 대학 축제에선 잔나비(최정훈)와 관객들 사이에 진풍경이 펼쳐진다. 가수가 묻는다. ‘누가 내 가슴에다 불을 질렀나.’ 객석에서 화답한다. ‘잔나비.’ 다시 묻는다. ‘당신께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 관객이 외친다. ‘방화죄.’ 이 기발한 ‘문답 송’은 제목이 긴 걸로도 유명하다.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총 42자). 제목을 온전히 외우고 싶다면 그냥 노래를 배우는 게 낫다. 도입부 전체가 그대로 제목이기 때문이다.
잔나비의 노랫말 속에 명기된 죄는 ‘쉽사리 내 맘을 준 죄’다. 마음을 여는 건 자유지만 마음을 주는 일엔 신중해야 한다. 소중한 마음을 쉽사리 줘버리면 예기치 않게 후폭풍이 몰려온다. 뒤늦게 상대에게 간청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내 님아 다시 내게 믿음을 주오.’ 사랑하던 둘 사이에 믿음이 깨지면 ‘님’이 ‘남’ 되는 건 시간문제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김명애 ‘도로 남’)를 접할 때 떠오르는 이웃집 누나가 있다. 그 누나는 결혼을 앞두고 하루는 점 보러 가고 하루는 점 빼러 갔다. 초등학생인 내가 보기엔 점이 매력 포인트인데 그걸 왜 빼지? 그래도 누나는 강행했다. (우리는 가끔 ‘시선의 노예’가 된다) 결과는 안 좋았다. 최고의 신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이유가 뭐지? 누나한테 물었더니 점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안 맞는다고 했다.
오늘의 여정은 불에서 점, 그리고 마음으로 이어진다.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두 사람이 만드는 걸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까’(태진아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인간의 점은 대략 7개다. 장점, 강점이 있고 약점, 단점, 허점, 결점, 오점이 있다. 연애할 땐 앞의 두 점이 크게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뒤에 있는 5개의 점이 눈에 거슬린다.
잃고 나서야 알게 된다. 중요한 건 점이 아니라 마음이다. 하지만 점은 보여도 마음은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중략)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방주연 ‘당신의 마음’). 이참에 폴 킴의 ‘마음’도 소환하자. 이 노래에도 ‘점’과 ‘마음’이 차례로 등장한다. ‘무한한 밤하늘 그 속에 작은 점 하나뿐일 수많은 별 중에 보지 못한 마음이 더 많다는 걸 아니.’
뉴스에서도, 드라마 속에서도 사람들은 화를 못 참는다. 화(火)를 내는 건 불을 내는 거다. 불이 나면 불을 끄듯이 화가 나면 화를 꺼야 한다. 잿더미 속에서 사람들은 허둥지둥 타다 남은 마음의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시작은 조심이고 우리가 찾아야 할 마음의 끝은 안심이다. 지금 내 속엔 어떤 마음들이 들어앉아 있는가. 앙심, 적개심, 욕심, 사심, 흑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24시간 쓰레기를 품고 사는 게 아닌가.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 ‘언제까지 너 이럴 거니 잘 생각해 보면 지금 이런 두려움 따윈 짧은 생의 작은 점일 뿐’(서영은 ‘웃는 거야’).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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