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름 닮은 원형 건물… 투박한 목축문화 살아숨쉬다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2023. 5. 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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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말·사람·땅의 이야기’ 제주 조랑말박물관
도시의 각진 건물과 달리 ‘원통’ 연상
번널오름 등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2층 전시공간은 자연스런 순환동선
1층은 말 거닐게 불규칙한 벽 배치
가시리 마을 옛 최대의 ‘국마’ 산지
말 더 대접 주민들 척박한 삶 살아
농·축산업 외 마을 활성화 방안 고심
국내 첫 리립박물관… 동네 역사 담아

제주도에는 유독 원통형 건물이 많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제주 사람들과 긴밀한 ‘자연환경’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에서는 효율을 위해 건물을 네모반듯하게 짓는다. 반면 자연에서는 건물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서 건물을 원통형으로 설계해도 주변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자연환경에서 원은 그 안에 포함된 것들과 밖에 있는 것들을 구분 짓는 특성이 도시 환경의 원보다 강하다. 자연에서는 경계를 나누는 특정한 기준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통형 건물은 자연환경과 더 잘 어울린다.

그다음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오름’이다. ‘오름’은 제주 지역에 있는 기생화산을 일컫는 제주 사투리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봉우리는 산맥을 이루며 이어져 있는데, 오름은 홀로 솟아 있다. 지도에서 보면 오름은 원형을 띠는데, 이 원형은 오름을 만든 지력(地力)의 영역이다. 우리나라 지형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보니 제주에서 건축물을 설계하는 많은 건축가가 오름을 디자인 모티브로 활용한다.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지어진 거칠고 투박한 조랑말박물관은 말을 키우며 굴곡지게 살아온 가시리 주민들의 삶을 상징한다. 조랑말박물관은 말과 주민들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살아온 마을에 대한 기록지이다.
제주도 남동쪽 중산간에 지어진 조랑말박물관도 원통형 건물로 설계자 윤웅원과 김정주(제공건축)는 자신들의 작업을 ‘아주 작은 오름’이라고 설명한다. 박물관 주변에 따라비오름, 번널오름, 병곳오름 등이 있고 마을의 풍경도 제주의 여느 마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주 작은 오름’이라는 설명이 어색하지는 않다.

자세히 보면 조랑말박물관은 원통 안에 작은 원통을 비워낸 링(ring) 형태의 건물과 그 아래 불규칙한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링 형태의 2층과 옥상에서의 이동은 강한 순환을 이루지만 1층에서의 이동은 예측할 수 없다. 상층과 1층의 이동이 다른 이유는 건축가가 이동의 주체를 사람과 동물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2층은 조랑말박물관의 전시 공간이다. 전시 공간에서 최적으로 생각하는 동선은 관람객들이 입구로 들어와 진행 방향을 일부러 찾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관람을 끝낸 뒤 입구로 나가는 순환 동선이다. 설계자도 전시 공간의 동선을 가장 단순화한 원형에 오름의 형태가 합쳐져 링 형태가 나왔다고 설명한다.
‘아주 작은 오름’을 닮은 조랑말박물관.
2층이 박물관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1층은 박물관 주변을 노니는 동물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전시 공간을 2층으로 올려 동물들이 다니는 들판을 막지 않도록 했다. 불규칙한 벽은 동물들의 행태를 예측해 만들어졌다. 물론 동물들이 불규칙한 벽으로 생긴 무작위 동선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설계자의 의도를 처음 알았을 때 ‘동물들이 정말 1층으로 돌아다닐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런데 박물관을 세 번째쯤 갔을 때 1층에서 유유히 걸어가는 말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순간 내가 허락 없이 그들의 영역에 들어온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사실 조랑말박물관을 찾는 방문객 수는 많지 않다. 평일에는 상시 개방하지 않고 방문객이 요청하면 마을 주민이 와서 열어줄 정도다. 그러니 관람객이 없을 때는 박물관 옆에 있는 조랑말 체험장에서 풀어놓은 말들이 1층을 오가는 장면이 오히려 익숙하다.

조랑말박물관은 대부분 밭작물과 축산에 종사하는 마을 주민들이 농업 외에 마을을 활성화할 방법을 찾다 가시리의 역사를 외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어졌다. 그래서 조랑말박물관은 마을 단위에서 건립한 국내 최초의 ‘리립(里立) 박물관’이다. 그러다 보니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진행됐다. 설계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추진된 조랑말박물관이 이 장소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말을 키우며 고단하고 굴곡지게 살아온 마을 주민들의 삶을 투박하고 거친 마감의 건물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랑말박물관에 대해 설계자 김정주는 ‘상황과 조건 속에서 해답을 찾는 건축’이고 ‘그 장소의 현재성을 찾고자 했던 작업’이라고 평했다.

옥상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은 1층의 불규칙한 벽 사이로 보이는 풍경과는 다르다. 사방이 탁 트인 광대함 속에 불쑥불쑥 솟아오른 오름은 강렬하기보다는 부드럽다.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배경으로 말을 키웠던 조선 시대 마을 주민들을 상상해 봤다.
박물관 주변을 노니는 동물들을 위한 1층 공간.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제주도는 말로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이곳 표선면 가시리 일대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국내 최대 국마(國馬) 산지였다. 산마장 중 가장 큰 ‘녹산장’과 최상급 갑마를 길렀던 ‘갑마장’ 모두 이곳에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의 말 중 약 40%를 이곳에서 길렀다고 한다.

당시 말은 사람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제주에서 말을 키우는 목자(牧子)는 미역을 따는 잠녀(潛女), 전복을 잡는 포작(鮑作), 귤을 키우는 과직(果直), 진상품을 운반하는 선격(船格), 관청의 땅을 경작하는 답한(畓漢)과 함께 제주 육고역(六苦役)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말이 아프거나 심지어 죽기라도 하면 말을 키우는 자가 그에 따른 책임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을 키우는 자의 죽음에는 오히려 무관심했다. 그러니 이곳의 풍경도 당시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름답거나 부드럽다는 감상을 주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척박한 삶이 이어지는 터전일 뿐이었다.

역사적으로 박물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놀랍고 신기하며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박물관의 원형 중 하나인 ‘분더카머(Wunderkammer)’가 ‘경이로운 방’이라는 의미이고 이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호기심과 지원으로 급격히 늘어난 ‘쿤스트카머(Kunstkammer)’의 뜻이 ‘예술의 방’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조랑말박물관에서만큼은 이 공식을 적용하기 힘들다. 가시리 주민들에게 말은 경이로운 것도 예술적인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이유였고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고되게 하는 원인이었다. 조랑말박물관은 말과 주민들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살아온 이곳 가시리에 대한 투박한 기록지이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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