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이어 '슈가'플레이션…과자·빵·음료 또 오를까

한전진 2023. 5. 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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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가격 12년 만에 최고 수준 '껑충'
빵·음료·아이스크림…도미노 인상 우려
/ 사진=한전진 기자 noretreat@

국내 식품업계가 설탕 가격 상승에 긴장하고 있다. 세계 설탕 가격이 1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다. 설탕은 밀가루 등 곡물과 함께 식품의 필수 원재료 중 하나다. 앞으로 국제 설탕 가격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또 다른 가격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슈가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이다. 업계는 설탕 가격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밀 떨어지니 설탕이

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7.2p로 전월(126.5p) 대비 0.6% 상승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 3월 159.7p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12개월째 하락세를 보였다가 지난달 상승 전환했다. FAO는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 가격 동향을 조사해 곡물·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 5개 품목군별로 식량가격지수를 매달 발표한다.

2023년 세계 설탕 가격지수 추이 / 그래픽=비즈워치

그간 가격 상승을 이끌던 곡물 가격은 하락세를 보였다. 세부 품목별로 살펴보면 곡물 가격지수가 136.1로 전달(138.6) 대비 1.7% 떨어졌다. 이는 러시아와 호주에서 수출할 수 있는 밀의 양이 늘어난 것과 유럽의 밀 작황이 양호해진 덕분이다. 이외에 .우크라이나 곡물의 자국 경유 수출을 금지했던 유럽 국가들이 이를 다시 허용하도록 합의한 것 등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세계식량가격지수를 상승세로 이끈 것은 '설탕'이다. 설탕은 149.4p로 전월(127.0p)보다 17.6%나 뛰며 3개월 연속 오름세였다. 이는 2011년 10월 이후 11년 6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오른 수준이다. 농식품부 측은 "설탕과 육류 가격이 전월 대비 상승했고 곡물, 유지류, 유제품 가격은 하락했다"며 "특히 설탕 가격이 치솟으면서 전체 식량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슈가플레이션 우려
 

설탕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건 공급이 부족해서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 고온과 폭우로 설탕 생산량이 감소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설탕 원료인 사탕수수를 에탄올 생산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최대 생산국 인도는 생산량 감소를 이유로 설탕 수출 제한을 이어가는 중이다. 태국과 유럽연합(EU)의 생산량도 기대보다 밑돌 것이란 예상이 많다. 

가격표를 살피는 주부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설탕은 국내 식품업체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필수 원재료 중 하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설탕류는 즉석식품, 탄산음료, 밀가루, 맥주에 이어 국내에서 5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식품이다. 하지만 자급률은 2020년 기준 36%에 불과하다. 설탕 가격 상승이 장기화하면 설탕을 원료로 쓰는 식품류의 가격이 연달아 오르는 슈가플레이션이 촉발될 수 있다. 

실제로 가공식품 물가는 들썩이고 있다. 설탕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4.2% 올랐다. 이 가운데 가공식품이 9.1% 상승했다. 특히 빵(10.8%)·과자(11.2%)가 두 자릿수로 올랐다. 올해 들어서만 초콜릿·콜라와 아이스크림 등 가격이 일제히 100~200원 오른 영향이다. 지난 2015~2016년 설탕값이 크게 올랐을 당시와 비슷하다. 

당장은 괜찮지만…

국내 식품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업계는 당장 큰 상승 압박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당을 들여와 설탕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업체들은 보통 가격이 낮을 때 설탕을 대량 매입한다. 아직 매입분이 어느정도 남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제 설탕 가격은 올해 초 파운드당 19.67센트로 최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6개월 이상 설탕 가격이 급등세를 유지했을 경우다.

업계는 국제 설탕 가격이 쉽게 떨어질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인상 요인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다. 설탕 가공 업체들은 하반기부터 가격 상승을 본격화할 수 있다. 대한제당,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업체들이다. 한 제과업계 관계자는 "당장 관련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면서도 "B2B 설탕 가격이 오르기 시작면 관련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가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외식 물가도 직격타를 받을 수 있다. 설탕은 식품뿐 아니라 다양한 음식에도 들어가는 기초 식재료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에너지와 물류비, 인건비 등의 상승으로 일반 식품뿐 아니라 외식 물가가 치솟았다"며 "설탕도 공통적 요소인만큼 설탕 공급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면 업계 전반에 도미노 인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지금도 제품 생산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 때문에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며 "여기에 설탕마저 가격이 오르게 되면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이 늘어나 가격 상승을 이끄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전진 (noretreat@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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