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타슈' 타보슈
국민학교 5학년 봄,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사주셨다. 석 달 내내 마주칠 때마다 조르고 조른 후에 얻어낸 값진 성과였다. 머리와 가슴이 제법 자란 5학년 무리들은 익숙한 나의 동네를 넘어 이 동네, 저 동네를 넘나들며 나름의 모험을 즐겼다. 딱히 정해진 목표 없이 내키는 대로 페달을 밟으며 달렸던 길은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새로운 영역에 발은 들인다는 설렘이 함께 섞인 묘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자전거로 누비던 동네에 대한 경험은 아주 깊이 머리와 가슴에 뿌리를 내려 지금도 가끔 꿈에 당시의 동네 모습이 선명하게 등장하곤 한다.
올해 초부터 서울에 정기적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운전을 싫어해서 기차 또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역이나 터미널까지 택시로 이동했는데, 정기적으로 오가다 보니 한 달이 들어가는 택시비가 만만찮았다. 직접 역까지 운전해서 차를 세워두고 다녀오는 방법도 써봤으나, 이 또한 주차비나 기름값이 만만찮았고 오갈 때 이동 수단이 반드시 같아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그런데 대전의 공영자전거 '타슈'를 활용하게 되자 아주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탈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선뜻 대중교통을 타지 못한 이유로는 버스는 노선이 안 맞아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지하철역은 걷기에는 부담스럽고 버스로는 번거롭다는 애매함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버스 한 대를 막 놓쳐 시간이 애매해진 어느 날, '어? 지금 자전거를 타면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타슈를 이용하게 되었다.
타슈는 아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우선 스마트폰에 전용 앱(app)을 설치해야 한다. 타슈앱을 켜면 지도가 뜨는데, 내 위치를 중심으로 근처 대여소의 위치 및 해당 대여소에서 활용 가능한 자전거의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여소에 가보면 뒷바퀴에 잠금장치가 채워진 채 거치대에 놓여있는 자전거를 확인할 수 있다. 잠금장치에는 QR코드가 붙어있는데, 앱에서 '대여하기' 버튼을 누르고 이 QR코드를 찍으면 잠시 후 잠금장치가 해제되면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타슈를 빌리고 페달을 몇 번 밟아보고 나서는 깜짝 놀랐다. '공영(公營)'이라는 단어 때문에 으레 불편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매우 편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3단 기어가 장착되어 있어 오른쪽 손잡이를 돌려 페달을 밟을 때 들이는 힘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쉽게 안장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안장 높이를 최고로 맞추면 편한 자세로 탈 수 있었다. 반납의 경우, 목적지 근처의 대여소에서 할 수 있다. 대여소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손으로 잠금장치를 채운 후, 앱에서 '반납하기' 버튼을 클릭하면 간단하게 가능하다. 대여료도 싸다. 1시간 안에 반납하면 대여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하루 최대 대여료 또한 5000원으로 부담이 적다. 이처럼 타슈가 꽤나 괜찮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만은 아닌 듯하다. 작년 7월 QR코드를 통해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타슈 시즌2'가 도입되고 대여소 숫자도 1150개로 크게 늘어 접근성이 매우 높아져 2023년 1월부터 3월까지 '타슈'이용 횟수는 약 81만 5500건으로 2022년 대비 5배 정도가 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익숙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다. 어른이 되고 4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길'은 매일 차로 오가며 다닌 지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상을 쪼개 자전거로 밟기 시작한 길은 깊은 밀도를 지닌 선명한 경험으로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공간이 이제는 내가 모험을 떠나는 나의 동네가 된 것이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 중 한 구절을 빌려본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은 세상의 길로 흘러 나아간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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