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대항마?…중국정부 비판하자 ‘폐쇄’
'곡선 주로에서 선두 차량을 추월하겠다(彎道超車)'. 중국이 이른바 '기술 패권'을 두고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직선 주로에서는 선두를 달리는 차량을 추월하기 어렵지만 곡선 주로, 즉 제반 환경이 특수한 변곡점에 이르렀을 때 선두를 추월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에서 착안한 비유적 표현으로 바이두 창업자 리옌훙이 지난 2009년 중국 경제의 위기와 기회를 언급하며 처음 사용한 이후 AI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 패권을 언급할 때도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술 발전이 변곡점에 이르렀을 때 이를 기회로 선두주자인 미국을 추월해 기술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챗GPT가 전 세계에 충격을 넘어선 공포를 가져다줬다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기술 발전이라는 트랙을 달리는 각국이 바야흐로 중국이 기다리던 곡선 주로에 진입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선두를 추월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치는 중국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챗GPT 대항마, 오히려 중국 정부 위협?
지난 2월, 이른바 중국판 챗GPT '챗위안(ChatYuan)'이 공개됐습니다. 중국 스타트업 기업이 개발한 생성형 AI 챗 위안은 막 공개됐을 때까지만 해도 현지 매체들이 '챗GPT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기대를 모았는데, 첫 선을 보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사용자들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입장과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된 후에 발생한 일입니다.
타이완 매체 '타이완 뉴스'는 챗 위안의 서비스 중단 이유를 민감한 주제에 대한 검열 문제에서 찾았습니다. 투자와 수출 성장 동력 부족·부동산 거품 등을 언급하며 중국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중국 정부의 입장과는 다르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답하며 문제가 됐다는 겁니다.
이 매체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종신 연임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챗 위안이 '국가 발전과 사회 진보를 실현케 한다'며 '이로써 중국이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유지하고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보도했는데, 이처럼 사용자들에게 중국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는 답변도 제공했던 것을 고려하면 개발업체가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부분을 사전에 미처 걸러내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개방성 핵심인데...만리방화벽, 자국 AI 기술 발전 막을까
논란이 일고 약 두 달 후,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이 '생성형AI서비스관리방법'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전체 스물한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 초안의 제 4조에서 중국 정부는 생성형 AI가 다음의 조건에 부합해야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밖에도 처벌 관련 조항도 포함되어 있는데, 중국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생성형AI서비스관리방법 초안
"생성형 AI를 이용해 만들어진 콘텐츠는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관을 반영해야 하며, 국가 정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시키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되며, 국가 분열을 일으키고 국가의 통일을 해쳐서는 안되고, 테러리즘·극단주의·민족혐오 및 갈등을 퍼뜨려서는 안되며, 폭력 및 외설적 정보, 거짓 정보, 경제 질서와 사회질서의 혼란을 유발하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
이에 더해 일부 매체는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사회주의 핵심 가치에 위배되는 상품을 만든 뒤 해외 대중에게 서비스해 의도적으로 규정을 피해갈 수 있다며, 해당 초안의 적용 범위를 중국 국내의 대중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로 한정짓지 말고 더욱 확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고문을 싣기도 했습니다.
해외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고, 자국 사이버 공간에서 유통되는 내용까지 검열하는 중국의 만리방화벽은 AI 앞에서 무너지기는 커녕 여전히 견고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방대한 정보를 학습해 사용자에게 객관적으로 입증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해야하는 생성형 AI의 특성을 고려하면, 정부의 입맛에 맞춰 정보를 제한하는 중국 정부의 방침이 자국의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수집한 광범위한 데이터가 개발 업체에 제공된다면 기술 발전에 유리하다는 상반된 주장도 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챗GPT의 성능이 전세계적으로 충격을 가져다주며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 규제안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정권과 제도에 대한 위협을 내세운 중국과는 달리 개인정보와 지적재산권 보호 등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바이두의 어니봇, 알리바바의 퉁이첸원 등 중국 자체 생성형AI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조치가 앞으로 이들 기업의 기술발전을 촉진할지 저해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6개월 연구 중단, 중국만 이롭게 해"..."중국, 스스로 전복됐다"
AI 등 신기술은 미중 패권다툼의 격전지였습니다. 앞서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에서 생산하는 AI용 핵심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금지했는데 중국과의 기술패권에서 계속 우위를 점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중국 정부 역시 시진핑 주석이 차세대 AI 기술 발전을 두고 '중국이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과 산업 혁명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와 연관된 전략적 문제'라고 언급하는 등 AI 기술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2023 AI 인덱스 보고서' 에 따르면 민간의 AI 분야 투자 규모 역시 지난해 기준 약 134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약 474억 달러로 1위를 차지한 미국과의 격차는 크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의 추격자로, 과연 미국이라는 기술 패권 선두주자를 추월하기 위해 곡선주로 주행을 기다린 국가답습니다.일례로, AI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며 6개월동안 연구를 금지하자는 주장이 나오자 에릭 슈밋 전 구글 CEO가 '중국만 이롭게 할 뿐'이라며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개된지 얼마 되지 않아 챗위안 서비스가 중단되자, 이를 두고 중국의 일부 누리꾼들이 '차가 전복됐다(翻車)'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아쉬움을 전달하기 위한 표현일수도 있지만, 그간 중국의 기술패권 장악 의지와 겹쳐봤을때 약간의 자조와 씁쓸함마저 읽힌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이미 본궤도에 오른 지금, 중국이 앞으로의 AI 경쟁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휘발유차 ‘멈춤’, 전기차 ‘질주’…우리 정책과 전략은?
- 제주 여행 찍어 올린 타이완 유튜버…상품도 ‘불티’
- 김재원·태영호 징계 미뤄…내일 다시 논의
-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개최…보안 강화·일부 지역 행사 취소
- 해고됐는데 자진 퇴사라니…구두 통보에 속수무책 [작은 일터의 눈물]②
- 챗GPT 대항마 만들었는데…중국, 기술패권 가속페달 ‘일시 멈춤’
- 미국 총기 난사에 한인 가족 참변…“아이 옷 바꾸려다”
- 은퇴자 울리는 ‘분양형호텔’ 피해 속출…관리 사각지대
- [단독] “이달부터 격리 권고로”…방역 완화 빨라진다
- [단독] ‘110억대 주가조작’에 증권사 이사 연루 포착…압수수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