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e스토리]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만족할 수 있다면, '도란' 최현준
LCK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시즌이 바뀌는 서머에서 다음 해 스프링까지 연속으로 우승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2023년 젠지는 페이즈-딜라이트를 새로 합류시키며 스프링은 적응 기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과 기존 선수들이 활약하며 작년 서머에 이어 다시 한번 대회에서 우승하며 앞으로의 전망을 밝혔다.
도란의 게이머 데뷔 계기는 보통의 동갑내기 프로게이머와 비슷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도란은 집에서 혼자 게임하면서 점수 올리는 일로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그래도 게임 실력이 좋았던 도란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다. 남고를 다녔던 도란은 게임 실력 덕분에 주위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그 사이에서 프로게이머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들은 것. 도란은 처음부터 프로게이머를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주위에서 게임을 잘 한다라는 이야기나 프로게이머 도전은 언제 해 볼 거냐는 이야기에 욕심과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도란의 소속팀인 젠지의 경기가 있는 날 롤파크 내 스탭 구역으로 통하는 문 앞에는 항상 부모님들이 오셔서 선수들을 잠시나마 보려고 한다. 도란의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젠지 경기가 있는 날에는 부모님이 와 있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렇게 봤을 때 도란이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는 의사를 비추면 찬성하셨을 거로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일단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의견이었다.
처음에는 도란도 자신이 프로게이머로 도전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려 했고, 아마추어 시절에는 스스로도 챔피언 폭이나 랭크 점수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란이 고등학교 3학년 때 KeG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도란의 부모님도 아들의 가능성을 믿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지금 경기 밖에서 도란을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엉뚱하고 재미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도란의 첫 아마추어 대회 우승도 자신의 선수로서의 가능성, 그리고 지금 이미지에 관한 가능성을 보였다. 당시 도란은 '엘림' 최엘림-'플렉스' 배호영-'구마유시' 이민형-'팝' 하민욱과 함께 경기도 지역으로 참가하려 했다. 여기까지 보면 뭐가 엉뚱하고 재미있느냐고 하겠지만, 이 팀은 결국 서울 지역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올랐고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경기에서 서울로 바꾸자고 주장한 사람은 당연히 도란이었고,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도란다운 모습을 보이며 이 팀은 우승을 차지했고, 도란의 부모님 역시 프로게이머 준비를 반대하지 않고 한 번 해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란 역시 처음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부모님에게 많이 반발했고, 부모님 역시 그만큼 속상해 했지만 지금의 자신이 프로게이머로 성적을 내게 되고 부모님 역시 누구보다 응원하시는 걸 보면 프로 생활과 아들로서 부모님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쌓인다고 마음을 밝혔다.
'돌잔치때도란잡음'이라는 아마추어 시절 소환사 명에서 따온 도란이라는 닉네임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도란은 프로시절 초창기 좋지 않은 외부 평가는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 혼자 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만 지냈다고 회고했다. 지금이야 게임 외적인 부분도 살피고 있지만 처음 데뷔했을 당시에는 그냥 게임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게 잘 될 걸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많이 몰아붙였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컸다는 이야기. 지금이야 스스로를 어떻게 다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게 됐지만 작년 젠지에 오기 전까지는 극도로 자신을 몰아붙일 정도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했다.
21년 도란은 성적은 아쉽지만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고 말했다. "kt에서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새로운 코칭스태프를 만나서 게임을 다시 보는 방법을 익혔어요. 이전까지 저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연습만 하는 단순한 선수였지만 그 시기를 거치면서 문제를 다양하게 보고 해결하는 선수가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시에는 정말 모든 게 잘 안되니까 프로게이머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전화하고 울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 저한테는 성장의 경험이 됐죠."
도란의 젠지 합류는 도란에게 다시 한 번 성장의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고난을 겪었던 도란이 모든 면에서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맞은 것. 22년 젠지는 '룰러' 박재혁을 중심으로 시즌 전 팀을 크게 개편했고 도란과 함께 정글은 '피넛' 한왕호를 미드는 '쵸비' 정지훈을, 서포터에는 '리헨즈' 손시우를 영입했다. 젠지 로스터를 본 도란은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팀원들도 든든하게 잘 도와주면서 좀 더 안정된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2년 스프링이 시작되기 전 도란은 연습 과정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실제 대회에서도 어느 팀이든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도란은 이 자신감이 자만심이 되면서 스프링을 그르쳤다고 아쉬워했다. "스스로 제가 잘 하는 선수라고 생각하고 조금의 실수는 제가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독이 되고 결국 제 발목을 잡았어요. 우승할 수 있었던 시기에 제 자만으로 준우승에 머물렀고, 저한테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 됐죠. 성적보다도 제 경기력이 여전히 일정하지 못했는데,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제 경기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점을 반성하거든요."
덕분에 도란은 서머 스플릿 우승을 차지했고, 당시에는 정말 뿌듯했지만 바로 목전에 다가온 월드 챔피언십 때문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인정받으려면 역시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도란이었지만, 4강에서 여정을 멈춰야 했다. 이번에는 팀 전체적인 경기력 문제였다. "서머 우승 당시만큼 선수들의 손발이 맞았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다들 그렇다는 건 알았는데 끝까지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결국 결승도 못 가고 우승도 못 했죠. 그래도 그런 경험을 얻고 다음 국제대회에서는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계속 성장과 실패를 반복하던 도란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LCK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쉽지 않은 기록을 세웠지만 도란은 여전히 이번 스프링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여전히 제가 못하는 경기들의 경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일시적으로 경기력이 떨어졌을 때 그걸 빠르게 극복해야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대신 이번 스프링 경기를 하면서 제가 자신한테 만족하는 경기력을 보인 경기들이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기준이 되었죠. 우승은 했지만, 제가 제 플레이에 만족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그 우승도 기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도란에게 새로운 도전인 MSI를 앞두고 이번에도 좋은 성적으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성적으로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리고 선수로서 최종적인 목표를 물었을 때 도란은 이렇게 답했다. "계속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그런 목표를 하나하나 이뤄나가다 나중에 돌아볼 시기가 있었을 때 스스로 만족스런 모습을 보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만큼 아쉬운 순간은 만들고 싶지 않고요."
박상진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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