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골든타임]역전세는 어쩌죠?
빌라도 아파트도 '역전세 공포' 확산
"다주택자 출처 증빙 등 예방책 마련"
전세사기 못지 않게 '역전세 공포'도 커지고 있다. 전셋값 및 전세수요 하락 등으로 집주인의 자금 여력이 부족해지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서다.
이같은 현상이 갈수록 심화할 예정인 만큼 전세사기뿐만 아니라 역전세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인 만큼 지나친 개입은 삼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올 하반기, 전세사기에 역전세 '공포'
전세사기특별법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가운데, 전세사기 대책에 포함되지 못한 '역전세난'에 대한 공포까지 커지고 있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2021년과 2023년(4월26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 거래를 분석한 결과, 동일 단지·면적의 전세 계약(3만2022건) 중 2년 전보다 전세 최고가격이 낮아진 하락 거래는 전체의 62%(1만9928건)에 달했다.
그동안 빌라 시장을 중심으로 전세 불안이 나타났으나 이제 아파트 시장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역전세는 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떨어져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상황을 말하는데, 이는 보통 부동산 하락기에 나타난다.
거래가 활성화되고 전셋값이 오를 때는 새 임차인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기존 임차인의 돈을 돌려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집주인의 현금 여력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전셋값은 부동산 상승기였던 2019~2021년 덩달아 올랐다. 저금리와 전세자금대출 비규제 등을 비롯해 시세차익을 바라보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횡행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2019~2021년엔 매년 전년 동기 대비 10%대로 전셋값이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월간시계자료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중위전세가격(12월 기준)은 2019년 2억1485만원에서 2020년 2억3731만원으로 10.5% 올랐고, 2021년엔 2억63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8% 올랐다.
그러다 2022년부터 시장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매수 심리가 꺾이자 전셋값도 함께 출렁이면서 지난해 전국 아파 중위전세가격은 2억35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6% 내렸다.
전세 시세가 크게 내리자 무자본 갭투자 등을 통한 전세사기가 드러나기 시작한 데 이어 역전세난까지 현실화되기 시작한 가운데, 올 하반기까지는 이같은 불안이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원희룡 장관은 지난달 19일 기자간담회에서 "4년 전이나 2년 전 가격이 가장 급등하고 무자본 갭투자가 성행하던 시기에 이뤄진 전세계약이 후폭풍으로 시차를 두고 지금 터지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전세사기가 지금부터 올해 하반기 정도에 피크를 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내년도 문제…"보증금, 돌려막기 투자 막아야"
역전세난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전세사기 대책이 전셋값을 더 끌어내리면서 역전세난을 가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 장관은 전세사기 사태가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봤지만, 역전세의 경우 내년 상반기까지 나타날 것이란 게 시장의 관측이다. 전셋값이 2022년 상반기에 '고점'을 찍었던 만큼 통상 2년 뒤인 임대차계약기간이 만료한 2024년 상반기에 역전세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세사기 대책에 따라 전세 계약 문턱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이달 1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강화, 임대인들 사이에선 새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보증보험은 임대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모할 때 보증기관인 HUG가 대신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지급해주는 제도다. 그동안은 공시가격의 150%까지 가입이 가능해 '빌라왕' 등이 높은 전셋값으로 임차인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허점이 있었다.
이에 보증보험을 공시가격의 126%까지만 가입할 수 있게끔 문턱을 높였다. 올해 공시가격도 전년보다 18.6% 떨어져 실질적 보증 한도 하락은 더 크다.
이렇게 되면 전세사기 대책이 자칫 '전세보증금을 내리는 대책'으로 작용, 역전세를 더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 측은 "전세사기 대책들이 오히려 정상적인 임대주택들의 보증금 미반환마저 부추겨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역전세 위험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시가격의 하락마저 더해져 보증가입 요건 강화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오히려 증가하고 보증가입 조건을 갖추지 못한 주택이 폭증해 주거안정의 사각지대가 더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역전세 역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사인간의 거래이기 때문에 정책적인 개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예방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전셋값 약세가 지속된다면 역전세는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지역에 따라선 한시적이지 않고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는 "역전세는 사적 시장이기 때문에 전세사기와 같은 구제책 등이 나오는 건 과도하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갭투자를 근절할 수 있는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주택자는 주택을 추가 매입할 때 자금 출처 증빙을 더 까다롭게 해서 전세보증금으로 돌려막기 투자하는 사태를 막고, 전세보증금을 금융회사에 맡겨두고 이자를 받는 에스크로 형식 등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리즈 끝>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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