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한다' 곡소리 4년 만의 반전…日소재 돌아와도 "걱정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셔틀 외교로 양국 관계가 회복하면서 4년 동안 막혔던 일본 반도체 소재 수입 길이 뚫리고 있다. 소재를 국산화한 중소기업들은 판로를 잃을까 두려워할 만도 한데 현장 목소리를 들으면 아랑곳 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동안 노력에 일본 소재와 국산 소재 품질 차이가 사실상 없어졌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특허도 꾸준히 쏟아내고, 이제 생산 설비를 늘려 반도체 소재를 수출도 하고 있다.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 램테크놀러지 관계자는 8일 머니투데이에 "이제 일본 소재가 국산 소재보다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라며 "일본 소재를 사용하는 의미가 크게 없어 타격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른 반도체 소재 기업 관계자는 "소재를 국내 기업뿐 아니라 수출도 하고 있다"며 "일본 소재가 들어와도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7일) 기시다 총리와 회담하고 "한국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우수한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공조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했다.
삼성,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완성품 기업이 일본 소재를 수입해 쓸 수 있도록 공급망을 만들어가겠다는 발언이다. 4년 전까지 한국은 일본의 수출 절차 우대국,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국가에 속해 복잡한 허가 절차 없이 반도체 소재들을 수입할 수 있었다. 그러다 2019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3대 소재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를 수입할 때마다 허가를 받게 했다. 사실상 수출 규제였다.
윤 대통령의 방일,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으로 양국은 첨단산업 협력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재지정하는 정령(한국의 대통령령) 개정 절차에 착수했다.
한국 중소기업과 일본 기업 간 소재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4년 전까지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일본 소재에 크게 의존했다. 일본 소재는 세계적으로도 품질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한국 중소기업들은 '큰 걱정 없다'는 반응이다. 국산 소재의 품질이 일본 소재를 따라잡았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산화한 기업으로는 램테크놀러지와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가 꼽힌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웨이퍼(기판) 위에 회로만 남기고 식각액 등 불순물을 제거하는 소재다. 반도체 회로는 10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수준으로 매우 작다. 이에 고순도 불화수소 품질은 불순물이 얼마나 덜 섞였는지 '순도'로 평가한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검사할 때 보는 불순물 원소는 모두 35종인데, 이중 비소와 붕소, 티타늄, 칼슘, 철 5개 원소를 특징적으로 본다. 국내 기업들 소재는 5개 원소, 나머지 원소 모두 불순도가 일본 소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램테크놀러지 관계자는 "(국내 기업과 일본 기업 소재 수준이) 대동소이하다"며 "일부 원소는 국내 기업 소재 불순도가 더 낮다"고 했다.
포토레지스트 국산화 기업으로는 동진쎄미켐이 꼽힌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회로를 그릴 때 웨이퍼에 바르는 감광액이다. 동진쎄미켐은 국내 최초, 세계에서는 네번째로 반도체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2024년 완공을 목표로 공장 증설도 하고 있다.
불화 폴리이미드 국산화 기업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꼽힌다. 불화 폴리이미드는 폴더블폰 디스플레이 화면을 보호하는 소재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해당 소재 국산화에 성공해 중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일본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할 때 '나라가 망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만큼 소재 의존도도 높았지만 일본의 소재 수준이 우수했다.
중소기업들은 해당 소재들 국산화가 가능했던 이유로 '정부 지원'을 꼽는다. 정부는 2020년 4월 소재, 부품, 장비산업 특별조치법을 전면 개정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를 포함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술 100개를 선정해 R&D를 지원했다. 패스트트랙으로 규제 심사도 빠르게 했고 기술을 구현할 수 있도록 실증 설비, 테스트베드도 지원했다.
그 결과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중 반도체 분야 수입액의 일본 비중은 2018년 34.4%에서 지난해 24.9%로 9.5%p로 줄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고 사업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수입을 다변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소재 기업과 경쟁을 이겨내면 중소기업 성장세는 더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램테크놀러지는 고순도 불화수소 매출이 2020년 181억원에서 지난해 278억원으로 늘었다. 솔브레인은 반도체 소재 매출이 2020년 2590억원에서 지난해 6815억원으로 늘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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