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약자들의 경험담 “마약 중독은 병인데, 처벌한다고 낫나요”
“회복에 관한 여러분의 경험을 토대로 내담자와 이야기하면 효과가 훨씬 강력할 수 있어요.”
지난달 24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중독재활센터에선 마약 중독에서 어느 정도 회복한 이들을 대상으로 회복상담사가 되는 데 필요한 상담윤리 교육이 진행됐다.이곳은 마약류 예방·재활 주무 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운영하는 센터로, 마약류 중독자나 그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과 재활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이날 수강생들은 여느 강의실과 같은 열띤 분위기에서 상담윤리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수업에 참여한 이예진(42·가명)씨는 센터를 찾은 뒤 비로소 처벌받을 용기를 내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2019년 지인이 몰래 필로폰을 탄 술을 마시면서 필로폰을 접했다. 그 뒤 8개월간 같은 지인에게 필로폰을 받아 7차례 투약했다. 고민하던 그는 2020년 2월 중독재활센터에 찾았다. 센터 권유로 투약 사실을 자수한 뒤 법원에서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중독이 나만 겪은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고, 먼저 회복한 사람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었다”며 “이젠 ‘저도 언니처럼 회복하고 싶어요’란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 처벌만으론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범죄에 대해 “‘악’ 소리 나게, 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검찰은 청소년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범죄자에게 최고 사형을 구형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는 연이어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당사자들과 전문가는 되레 치료와 재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0년간 마약에 빠졌다가 지금은 중독자를 돕는 회복상담사의 길을 걷는 한창길(52)씨는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처음엔 좋아서 했지만 나중엔 약이 들어가지 않으면 몸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약류로 인한 식욕 감소로 173㎝ 키에 몸무게도 48㎏까지 빠졌다. 징역 1년10개월을 선고받았지만, 교도소에서조차 ‘내 힘으로는 끊지 못하고,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만 했다. 인생의 전환점은 교도소로 찾아온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의 수업이었다.
한씨는 “‘25년 투약했는데 20년째 단약하고 있다’는 박 센터장 말을 듣고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출소 뒤 곧장 중독재활센터로 찾아가 ‘살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2019년 출소 뒤 중독재활센터의 프로그램과 여러 자조모임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중독 상태임을 인정하게 됐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자조모임은 마약류 중독에서 회복하기를 원하는 중독자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이다.
그는 현재도 자조모임에 참여하며 한 달에 한 번 병원 치료를 받고, 동시에 회복상담사로서 다른 중독자 회복을 돕는다. “처벌 그 자체로는 제게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마약 중독은 질병인데, 병에 걸린 사람을 처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나요?”
김대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약 중독이 뇌의 변화를 일으키는 일종의 뇌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약에 내성이 생기면 같은 쾌락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양을 사용해야 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지는 등 금단 증상이 동반된다. 또 주사기 등 (마약 관련) 자극을 보면 하고 싶은 갈망이 생기는 것이 질환의 증거”라며 “당뇨를 놔둔다고 치료가 되는 게 아니듯 손상된 뇌를 치료하고 재활·관리하지 않으면 (중독자를) 감옥에 몇 년간 격리해도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치료와 재활을 돕는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10여년간 마약을 투약하다 최근 3년째 치료·재활 중인 박지훈(33·가명)씨도 “3년 전 처음 병원 예약을 기다릴 때도 한 달이 걸렸는데, 최근에는 중독자가 늘어 몇 달씩 걸린다고 한다. 중독자들이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고 강력 처벌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식약처 산하 중독재활센터는 전국에 두 곳, 민간 중독재활시설도 전국에 네 곳뿐이다. 지난해 기준 정부가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으로 지정한 병원 21곳(현재 24곳) 가운데 사실상 제대로 운영된 곳은 두 곳뿐이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에서 치료받은 환자는 421명인데, 인천 참사랑병원(276명)과 경남 국립부곡병원(134명)이 전체 환자의 97.3%를 맡았다. 마약 중독으로 인한 공격성 등 때문에 다른 환자에 견줘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기가 훨씬 더 힘든데 경제적인 유인 등은 거의 없어, 대부분 병원이 마약 중독자 받기를 꺼리는 탓이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현재 마약 치료·재활 시설이 거의 없고, 있는 시설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쟁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마약과의 전쟁’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박영덕 중독재활센터장은 “예방과 치료, 재활을 위한 예산과 인프라를 늘리고, 치료·재활 의지가 있는 사람은 쉽게 시도할 수 있도록 마약 중독을 범죄로만 보는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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