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중·러의 핵전쟁 막말들

여론독자부 2023. 5.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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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언론인 · 전 서울경제 부회장)
[서울경제]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방미 성과의 핵심은 NCG(Nuclear Consultative Group) 창설을 주축으로 한 워싱턴 선언이다. NCG는 미국이 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군사작전 때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기 위한 기구다. 한국 대통령실이 NCG에 대해 “사실상 미국과의 핵무기 공유”라고 하자 미국은 ‘천만의 말씀’이라고 부인했다. 핵무기의 사용에 관한 결정은 미국의 고유한 권한이지 다른 나라와는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NCG가 미국으로서는 북핵 위협의 대응책으로 한국 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자체 핵무장론과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요구에 대한 무마책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측의 그 정도 해석까지 부인하는 것에 야박함을 넘어 북핵 억제에 실효가 있는 기구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핵공격을 당하거나 공격위기에 직면한다면 한미는 응당 NCG를 즉각 가동해 핵보복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한미연합사가 육해공 작전 전반에 협의를 개시하겠으나, 핵전력 전개를 전담하는 상설 협의기구인 NCG를 둠으로써 작전의 실효성을 높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은 한반도 핵 유사시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전략핵에 의한 대량 보복을 미측에 요구하겠지만, 미국은 북한만이 아니라 인접한 중국·러시아와 국제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할 것이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미국의 핵우산에 대해 한국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불안감은 상존한다.

미국의 핵무기 전략의 기본 원칙은 보복 및 방어용 무기라는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한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에서 중공이 개입했을 때와, 1962년 쿠바 사태 때 핵사용 직전까지 갔으나 끝내 결행하진 않았다. 그 후로도 미국은 베트남·중동 등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핵무기를 쓰지 않았다. 대신 다른 핵보유국들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만들어 주도해 왔다. 미·소간 냉전시기에는 핵무기 감축협상에 힘을 썼다. 미국이 NCG를 통해 한국에 핵우산을 보장하는 동시에 핵개발의 여지를 두지 못하도록 NPT 족쇄를 채운 것도 그런 원칙의 재확인이다.

한국의 핵개발은 일본·대만 등으로의 핵도미노 현상이 우려되는 데다, 기존 핵보유국들의 영향력 약화로 NPT체제의 와해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 5대 핵보유국의 시각이다. 그들이 북핵문제로 대립하면서도 한국의 핵개발 반대에는 의기투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 미국·영국·프랑스가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방관 또는 방조해왔다. 미·중, 미·러 갈등이 고조되면서 유엔의 대북 제재에 중국과 러시아는 번번이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중국·러시아·북한이 핵전쟁 막말을 일삼고 있고, 특히 중국과 북한은 한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전쟁을 도발하며 서방이 개입하면 “인류가 겪지 못한 참화를 경험할 것”이라고 핵전쟁을 협박한 이후, 전세가 불리할 때마다 같은 협박을 되풀이해왔다. 핵전쟁 막말의 원조는 북한이다. 1994년 김일성 시절부터 시작된 ‘서울 불바다’ 협박은 핵무기 제조에 성공했다는 김정일·김정은 시대를 거치면서 노골화됐다. 김정은은 체제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에선 핵을 ‘선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을 선포했다. 그들의 존립이 위태로운 것은 상시적이라 맘만 먹으면 아무 때라도 선제공격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말투를 닮은 게 중국이다. “대만해협 사이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에 반대한다”는 지난달 윤 대통령 발언에 “불장난하지마라. 불에 타죽는다”고 했다. 명색이 주요 2개국(G2) 국가임에도 말투는 최빈국의 경제력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치는 북한만도 못하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핵전쟁을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서도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을 제공하지 않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을 쓴다면 미국도 핵으로 대응한다고 말하는 게 고작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핵도발을 하면 정권의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한 것이 그중 센 말이다. 이런 미국의 대응이 나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핵무기를 사용한 세계 유일의 ‘원죄’ 국가의 신중함과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품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가 NCG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에 신뢰를 갖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때론 부드러운 말은 상대에게 약자의 화법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미국은 ‘겁 많은 개가 짖지만, 물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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