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해저에 망간 5억6천만톤이…지금 태평양은 ‘광물전쟁’
태평양 나우루, 세계 첫 ‘상업 채굴’ 계획
관련 규정 마련 시한, 오는 7월로 다가와
찬반양론 갈리며 합의 도출 계속 늦어져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깊은 바닷속의 광물을 상업적 목적을 위해 채굴하도록 허용해도 될까?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가 2021년 국제해저기구(ISA)에 상업용 ‘심해 채굴’ 계획을 제시하면서 촉발한 관련 규정 제정 시한이 7월로 다가오며 이 사안이 큰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심해 채굴을 허용하면 해양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게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면에, 심해 채굴 옹호자들은 깊은 바다 밑의 망간·니켈·코발트 같은 광물을 이용해 전기차용 배터리 등 청정 기술 개발을 촉진하면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심해 채굴 허용 결정권을 쥔 국제해저기구는 관련 규정을 마련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해저기구는 지난 3월 말 자메이카에서 회의를 열어 규정 마련을 위한 논의를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해저기구는 온라인 논의를 계속하면서 7월 말 다시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규정 허점 때문에 상업적 채굴 가능해질 판
국제해저기구가 조만간 심해 채굴 규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자칫 국제적인 합의 없이 상업적 심해 채굴이 시작될 수 있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나우루가 2021년 6월 심해 채굴 계획을 제시하면서 이른바 ‘2년 규정’을 촉발했기 때문이다.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 규정에 따르면 심해 탐사권을 확보한 회원국이 심해 채굴 의사를 밝히면 해저기구는 2년 안에 허용 검토에 들어가야 한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기구가 7월까지 규정을 마련하지 못하면 기존의 심해 탐사 관련 규정에 근거해 상업용 심해 채굴 허용 여부를 검토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론적으로는 국제해저기구의 법·기술위원회의 추천과 36개 이사국 가운데 3분의 1의 동의만 얻으면 심해 채굴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국제해저기구는 그동안 나우루·영국·중국·한국 등 14개 나라에 모두 31건의 심해 탐사권을 줬지만, 상업적 이용을 위한 심해 채굴은 허용한 바 없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규정 마련 시한이 가까워지면서 이해가 엇갈리는 각국 정부와 환경단체 등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상업용 채굴 논란을 촉발한 나우루는 심해 채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신속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만, 환경단체 등의 반발을 의식해 상업용 채굴을 위해 자국과 손을 잡은 기업인 캐나다의 ‘메탈스 컴퍼니’(TMC)가 곧바로 심해 채굴 신청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나라의 유엔 대사 마르고 데이예는 지난 3월 말 해저기구 회의에 즈음해 “우리의 관심사는 법률적 확실성 보장과 책임 있는 개발”이라고 말했다.
주요국 가운데 심해 탐사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은 심해 개발과 심해 환경 보호의 균형을 이루는 접근법을 지지한다고만 밝히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상업용 채굴 신청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하는 등 말을 아끼고 있다. 반면에 프랑스·독일·뉴질랜드·코스타리카·바누아투 등 14개국은 모든 채굴 활동의 일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해저기구 설립의 근거가 되는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아 국제해저기구의 정식 회원국이 아니다.
이에 반해 전세계 100여개 환경단체들로 구성된 ‘심해 보전 연합’은 각국 정부와 국제해저기구에 심해 채굴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은 지난달 태평양 동부 지역에서 영국의 심해 연구선 활동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였다.
바다 밑 희귀 광물에 눈독 심해
채굴은 전세계의 전기차 개발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는 구리·망간·니켈 등을 대량으로 새로 확보할 주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태평양과 인도양 등의 해저 4~6㎞에는 망간을 비롯한 각종 희귀 금속이 뭉쳐진 망간 단괴가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해역은 태평양의 하와이섬 남동쪽 바다에 형성되어 있는 ‘클라리온-클리퍼턴 균열대’다. 면적이 450만㎢에 이르는 이 지역에는 망간 단괴 5억6천만t 정도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돼, 전세계에서 가장 상업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 지역에서는 한국·중국·영국·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그동안 국제해저기구로부터 심해 탐사권을 확보해 조사 활동을 벌여왔다.
하와이섬 서쪽의 태평양과 인도양 남쪽 등에는 해저 800~2500m에 코발트가 풍부한 단층이 발달해 있다. 태평양 연안에 좀 더 가까운 해역에 흩어져 있는 ‘열수분출공’도 심해 광물 채취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열수분출공은 바다 밑 마그마 때문에 200~400℃까지 뜨거워진 물이 솟아나는 곳으로, 주변엔 금속이온이 물과 닿아 침전하면서 생긴 ‘해저열수광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곳에는 구리·아연 등이 많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깊이는 대체로 1~4㎞ 수준이다.
이런 깊은 바다는 수압이 높아 채굴을 위해서는 로봇과 같은 무인 장비를 투입해야 한다. 로봇을 통해 채취한 토양을 펌프와 파이프를 이용해 해상에 떠 있는 선박으로 끌어올리고 선별 작업을 거쳐 불필요한 물질은 다시 바다로 배출하는 방식으로 채굴하게 된다. 나우루 정부의 후원을 받는 메탈스 컴퍼니는 로봇을 활용한 심해 채굴 시험으로 지난해에만 4500t의 망간 단괴를 채굴한 바 있다. 이 회사는 상업용 심해 채굴 허가권을 확보할 경우 한해에 130만t을 채굴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미국 해저 탐사 기업 ‘임파서블 메탈스’는 지난해 12월 해저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광물을 선별하는 ‘자율 해저 차량’(AUV)의 작동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3일에는 2026년까지 심해에서 작동하는 6대의 차량으로 선단을 구성할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심해 채굴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 상업성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키플링어>는 메탈스 컴퍼니가 계획하고 있는 상업 채굴 사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려면 106억달러(약 14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사업성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쉽사리 엄두를 내기 어려운 액수라고 지적했다. 2021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를 통해 미국 나스닥에 등록한 이 회사의 주가가 지난달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린 것도 상업성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심해 생태계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우려
메탈스 컴퍼니는 심해 채굴은 바다 밑에 흩어져 있는 광석을 수집하는 형태에 가깝다며 기존의 육지 광물 채취에 비해 환경 파괴가 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는 바다 환경을 파괴하는 위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제 환경 관련 자선단체인 ‘포나 앤드 플로라’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희귀 광물의 심해 채굴이 이뤄지면 지구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단체는 2020년부터 심해 채굴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이 단체의 해양 담당 책임자 소피 벤보는 “해양은 지구의 기본 기능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며 해양의 예민한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은 해양 생물 다양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탄소 배출 억제 측면에서도 심해 보호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의 캐서린 웰러 지구 정책 책임자는 “깊은 바다는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거대한 저장고이며, 광물 채취로 혼란이 초래될 경우, 전세계가 현재 겪고 있는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해 보전 연합’ 소속 변호사 덩컨 커리는 “적어도 몇년 동안 메탈스 컴퍼니를 빼고는 누구도 심해 채굴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이 회사 하나 때문에 엄청난 긴장과 외교적 걱정거리들이 만들어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 나우루와 손잡은 한 기업이 촉발한 논란이 전세계를 큰 위기와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그린피스의 남극보호 캠페인 담당자 루이자 캐슨은 국제해저기구가 “해양 파괴의 시절이 끝났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낼 기회를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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