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찰스3세 대관식을 런웨이로… 귀빈들의 ‘패션쇼’

김동현 기자 2023. 5. 9.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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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드레스’ 입은 커밀라, 우크라 국기 색 맞춘 질 바이든
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대관식에 참석 중인 질 바이든(오른쪽에서 둘째) 미국 대통령 영부인과 손녀 피니건 바이든(맨 왼쪽)./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에서 새 국왕의 시대를 축하하는 현란한 패션쇼가 펼쳐졌다.”(가디언)

글로벌 이벤트였던 영국 왕실 대관식엔 2㎏ 넘는 무거운 왕관, 대관식의 주인공 국왕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탄 마차 등 적잖은 볼거리가 쏟아졌다. 대관식과 축하 공연까지 마무리된 7일(현지 시각) 주요 언론들은 대관식에 참석한 귀빈들과 영국 왕실 관계자들의 패션을 분석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밋밋한 듯 세련된 패션으로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과 손녀, 여성으론 이례적으로 보검(寶劍) 전달자와 기마대 지도자 역할을 맡았던 여당 원내대표 페니 모돈트와 찰스 3세의 동생 앤 공주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복장도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됐다.

이번 대관식에 엄격한 드레스코드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영국 왕실은 참석자들에게 최근의 침체된 경제 상황, 축소된 대관식 규모 등을 고려해 ‘지나치게 화려한 패션은 삼가 달라’고 요청했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개성 넘치는 패션보다는 격식을 갖추되 축제 기분은 살릴 수 있는 복장이 많았다.

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대관식에 참석 중인 질 바이든(오른쪽에서 둘째) 미국 대통령 영부인과 손녀 피니건 바이든(맨 왼쪽)./로이터 연합뉴스

평소에도 튀지 않는 패션을 선호하는 바이든 여사는 이날도 푸른빛 단색 투피스를 입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랠프 로런의 옷이다. 영국의 주요 행사에 여성이 모자를 쓰는 관행은 미국인답게 실용적으로 바꾸어, 푸른 헤어 리본으로 소화했다.

단조로운 듯했던 바이든 여사의 패션은 손녀인 피니건 바이든이 오자 강력한 성명(聲明)으로 변했다. 미국 브랜드 마카리안의 노란 드레스를 입은 손녀와 함께 서자 두 사람의 모습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였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어떤 발언도 하지 않으면서도, 미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우아하게 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이든 가족이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 옆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또한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젤렌스카 여사는 전쟁 중인 자국의 상황을 고려한 듯 단조로운 연두색 원피스와 코트를 입었다.

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대관식에 참석한 페니 모돈트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EPA 연합뉴스

70년 만에 열리는 이번 대관식은 20세기의 대관식과는 다른 ‘새로운 영국’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 대관식 주요 역할 중 일부를 처음으로 여성이 맡은 것이 대표적인데,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이 여성으로선 대관식 역사상 최초로 무게 3.6㎏ 보검을 국왕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페니 모돈트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다. 그는 같은 역할을 맡았던 과거의 인물들이 입었던 검정과 금색으로 된 가운을 거부하고, 금색 고사리가 수놓인 청록색 원피스와 망토를 입었다. 영국 디자이너 사피야가 이번 대관식을 위해 맞춤 제작한 것이다.

그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시대가 바뀌었는데) 대대로 내려오는 옷을 입는 것이 옳지 않다고 느꼈다”며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을 존중하는 옷을 준비하고자 했다”고 했다. 청록빛은 자신의 지역구인 항구도시 포츠머스에서 본 바다, 수놓은 고사리는 모돈트가 의장을 맡고 있는 왕실 고문 기구 추밀원(樞密院)의 상징이라고 영국 매체들은 전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 앤 공주가 6일(현지 시각) 대관식을 마친 뒤 말을 타고 왕실 근위대 및 기마병들을 지도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찰스 3세의 여동생 앤 공주(73)는 이날 군복 차림으로 말을 타고 당당히 대관식장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승마 선수 출신인 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그는 이날 왕실 근위대 및 기마병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아 꼿꼿한 자세로 행렬을 이끌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부인 커밀라 왕비가 6일(현지 시각)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메리 왕비의 왕관’을 쓰고 앉아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주인공인 국왕 가족의 패션도 관심사였다. 한때의 ‘불륜녀’에서 이날 왕비로 정식 등극한 커밀라 왕비는 찰스 3세의 첫 부인인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옷을 디자인해 유명해진 영국 디자이너 브루스 올드필드의 드레스를 입었다. 이를 두고 커밀라 왕비가 ‘다이애나 트라우마’를 떨치고, 새 시대 왕비로 거듭나겠단 의지를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언론도 있다. 장미(잉글랜드)와 엉겅퀴(스코틀랜드), 수선화(웨일스), 토끼풀(북아일랜드) 등 식물이 수놓여 있었는데, 이는 영국 4개 지역의 상징이자 찰스 3세와 커밀라가 좋아하는 전원과 정원을 나타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윌리엄(위 오른쪽) 왕세자와 캐서린(위 가운데) 왕세자빈, 이들의 자녀인 샬럿(아래 왼쪽) 공주와 루이(아래 가운데) 왕자, 에든버러 공작부인 소피(위 왼쪽)가 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버킹엄궁 발코니에 서 있는 모습./EPA 연합뉴스

찰스 3세 국왕의 장남이자, 왕위 계승 순위 서열 1위 윌리엄 왕세자는 ‘웨일스 근위대(Welsh Guards)’ 제복을 입었다. 그의 부인인 캐서린 왕세자빈은 영국 브랜드인 알렉산더 매퀸의 흰 드레스 위로 영국 귀족을 상징하는 ‘로열 블루’와 빨강이 어우러진 예복을 걸쳤다. 그가 착용한 진주·다이아몬드 귀고리는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생전 사용했던 것이다.

윌리엄 왕세자의 세 자녀 조지(10)·살럿(8)·루이(5) 남매의 패션도 주목받았다. 조지 왕손은 빨간 재킷 왕실 예복을, 샬럿 왕손은 어머니와 같은 알렉산더 매퀸의 흰색 드레스를 입었다. 무심한 듯 쌜쭉한 표정으로 ‘글로벌 귀여움’을 받은 막내 루이 완손은 맞춤 제작한 파란색 재킷과 바지 차림이었다. 세 남매가 각각 빨간색·흰색·파란색 복장으로 유니언잭(영국 국기)을 연상시킨 것이다.

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에 참석한 해리 왕자./로이터 연합뉴스

윌리엄 왕세자의 친동생으로 2020년 3월 왕실과 결별한 해리 왕자는 조용히 있다가 대관식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떴다. 그는 어머니(다이애나)가 즐겨 입었던 프랑스 명품 디오르(Dior)의 스리피스 정장을 입었다. 10년 동안 군에서 복무한 그는 군복을 입고 싶어 했으나 ‘왕실과 결별한 이가 공식 행사에 영국 군복을 입어선 안 된다’는 왕실 의례 탓에 일반적인 정장을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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