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룰레히 "학창시절 친구들 연주 안들어…그 시간 후회"[일문일답]
기사내용 요약
'요룰레히'는 실제 이름 변형한 것
"독주회 객석 거의 다 채워…시청자多"
"'기타소년'과 합방 이후 게스트 초대↑"
"클래식 음악계 좁아…행동 조심해야"
"'음악 전공비용' 영상, 욕 많이 먹었다"
"손목 연골 없어…첼로 연주 때문"
"과거 대회서 실수로 활 날아가…아찔"
【서울=뉴시스】강운지 리포터 = "살면서 처음으로 귀와 마음을 열고 연주를 들어보니, 다들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늘 감탄해요"
첼리스트 겸 음악 스트리머인 '요룰레히(본명 전희조)'는 "사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의 연주를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 입시가 항상 우선이었고, 내 경쟁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며 방송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다른 음악인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음대나 예중, 예고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향상 음악회'라는 걸 한다. 그때도 '이거 언제 끝나지' 하며 친구들의 연주를 흘려들었다. 그 시간들이 너무 후회된다"고도 했다. 뉴시스는 지난달 25일 요룰레히를 만나 음악 크리에이터 활동 및 음악가의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인터뷰에 앞서 지난달 23일, 요룰레히의 첼로 독주회 '안녕하세요룰레히'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이에 대해 그는 "사실 관객이 많이 안 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객석 약 520석이 거의 다 찼다. 대부분이 방송 시청자분들이었다"며 뿌듯한 심정을 전했다.
요룰레히는 방송에서 다양한 악기 연주자 및 가수를 게스트로 초대해 소개한다. 그는 이러한 콘텐츠를 하게 된 계기로 유튜버 '기타소년'과의 합동 방송 경험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그 친구가 말을 잘하기도 하고, 기타가 접근성 높은 악기이다 보니 시청자 반응이 너무 좋았다. 그때 방송의 방향을 '게스트 소개'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면서 "'기타소년'은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출연자"라고 밝혔다.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등 유명 음악인을 섭외하는 비결에 대해서는 "클래식 음악계는 한두 다리만 건너면 웬만하면 다 안다. 고상지 연주자님도 먼저 출연하신 지휘자 선생님을 통해 섭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고, 이어 "판이 굉장히 좁아서 행동을 조심해야 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개인 방송을 하면서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는 요룰레히는 "첼로 활을 너무 많이 써서 손목 연골이 다 닳았다"고 했다. 그는 "또 방송을 하고 나서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생겼다. 방송 부작용이 더 힘들다"면서 "기자님도 디스크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또 '치명적인 실수를 해본 경험'으로 과거 음악 대회 도중에 첼로 활이 날아간 일화를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날아간 활을 주워서 다시 연주하려는데, 첼로의 튜닝이 다 풀려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래서 튜닝부터 다시 했다. 정말 앞이 안 보였다"고 회상했다.
아래는 요룰레히와의 일문일답.
"내 실명이 '희조'인데, 유학할 때 '히조'가 아닌 '히요'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알파벳 J를 Y로 발음한 거다. 그래서 처음에는 '히요'라는 이름을 쓰려고 했는데 이미 있더라. 거꾸로 '요히'를 했는데 그것도 있더라. 그래서 '요룰레히'라고 별 뜻 없이 지었다. 그때는 방송을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트위치 게임 방송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반응은 좋았나.
"아니다. 아무도 안 봤다. 그때는 학생 레슨을 하거나 오케스트라 객원으로 나가는 등 생업이 있었고, 게임과 게임 방송은 정말 취미 생활이었다. 음악 방송으로 돌리고 난 후에는 2~3명이던 실시간 시청자 수가 20명, 30명으로 올랐다. 그러다 100명이 넘었을 때는 '나를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싶더라. 지금은 1000명 정도 된다."
-트위치 특성상 시청자들과 거리낌 없는 대화가 이뤄지는데, 성향과는 잘 맞나.
"낯을 많이 가려서 처음에는 반말도 잘 못했다. 아무리 (사람이)화면 뒤에 있어도,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격없이 얘기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하면서 점차 성격이 변하더라."
-최근 첼로 독주회 '안녕하세요룰레히'를 마무리했다. 어땠나.
"너무 잘 끝났다. 사실 사람이 많이 안 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객석 약 520석이 거의 다 차서 감개무량했다. 관객이 시청자나 구독자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소 첼로 연습은 얼마나 하는지도 궁금했다.
"연주회가 있을 때는 하루에 3시간, 없을 때는 1시간 정도 한다. 일단 매일 하긴 해야 한다. 방송에서 시청자분들이 곡을 계속 신청하기 때문에, 손이 굳지 않게 항상 풀어놔야 한다."
-혹시 제일 많이 오는 신청곡 장르가 있나.
"그런 건 딱히 없다. 정말 사람들의 취향이 천차만별이라 메탈도 오고, 록도 오고, 가끔 클래식도 온다. 사실 클래식은 부담스러워서 내가 잘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있다."
-혹시 방송 활동에 대해 주변 반응은 어떤가.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약간 싫어하셨다. '어디다 대고 중얼중얼 얘기하니' 하시더라. 그리고 내가 방송을 서른에 시작했다 보니 '나이도 있는데 왜 그러니'부터 해서 '그냥 일반적인 길로 가면 안 되겠니. 남들처럼 오케스트라 취직해서 결혼하면 안 되겠니' 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내 팬 분들 몇백명이 공연 객석을 채워주시니 부모님도 인정해 주셨다. 역시 뭔가 이뤄야 알아주는 것 같다."
-혹시 동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클래식 음악계는 보수적'이라는 통념이 있는데.
"내가 직접적으로 들은 건 아니지만, 초반에는 수군거리는 반응이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 방송의 인식이 좀 안 좋게 박혀 있더라. 다소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많으니까, 내가 그런 걸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구독자가 조금씩 늘고 연주회가 조금씩 흥하니까 다들 '잘 바꿨다'고 말했다."
-방송 진행이 굉장히 능숙하다. 유행하는 밈도 잘 활용하는데, 평소 다양한 콘텐츠를 챙겨보는 편인가.
"원래는 전혀 몰랐는데, 방송을 하면서 인스타그램 등에서 밈을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 트위치 방송인들이 어떤 식으로 방송하는지도 계속 공부했다. 또 인터넷 방송을 하려면 약간 정신이 반쯤 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나를 내려놓고 있다."
-그럼 평소 성격과는 약간 달라질 것 같다.
"완전히 달라진다. 평소에는 집순이에다 말도 거의 안 한다."
-MBTI가 어떻게 되나.
"ISTP다. 원래는 ISFP였는데, 독주회가 힘들었는지 바뀌었다."
-방송에서 게스트를 초대해 조명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콘텐츠의 방향을 이렇게 설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내 영상 중에 유튜버 '기타소년'과 함께한 영상이 있다. 그 친구가 방송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일단 말을 잘하고, 기타가 접근성이 좋은 악기이다 보니 반응이 더 좋았다. 그때 '이쪽 길(게스트 소개)로 가야겠다' 싶었다. 그전까지는 유튜브가 단순히 방송 기록용에 그쳤다면, 그 친구를 계기로 아예 바뀌었다."
-고상지 반도네온 연주자 등 매우 명성 있는 음악인들이 게스트로 나온다. 섭외력의 비결은 뭔가.
"국내 클래식 음악계는 진짜 한 다리만 건너면 웬만하면 다 안다. 판이 굉장히 좁아서, 진짜 행동을 조심해야 하기도 하다. 고상지 연주자님도 먼저 출연하신 지휘자 선생님을 통해 섭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연자를 섭외할 때는 MBTI가 E로 변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조용히 집순이로 있다가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카톡이나 전화 연락을 하게 된다."
-전문 음악인인데, 게스트의 연주를 들을 때 진심으로 감탄하게 되나.
"매번 감탄한다. 정말이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의 연주를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 입시가 항상 우선이었고 내 경쟁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기획자로서 처음으로 귀와 마음을 열고 들어보니 다들 너무 잘하시더라.
음대나 예중, 예고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향상 음악회'라는 걸 한다. 그때도 그냥 '이거 언제 끝나지' 하고, 첼로 하는 친구가 나오면 그때 잠깐 듣고 다른 악기들은 그냥 흘려보냈다. 그 시간들이 너무 후회된다. 지금은 어떤 연주자가 오든 정말 다 귀 기울여 듣고 있다.
그리고 또 웃겼던 게, 내가 인터뷰에서 항상 물어보는 게 '음악을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했냐'다. 그런데 정작 내 친한 친구들이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좀 더 주위에 관심을 가질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첼로 하지 말라'며 악기 전공 비용에 대해 현실적으로 조언한 영상도 봤다.
"진심이다. 취미로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영상이 사실 욕을 굉장히 많이 먹었다."
-전공자들이 비판한 건가.
"아니다. 오히려 전공자들은 그걸 보고 진짜 응원을 많이 해줬다. '진짜 말 잘했다. 이걸 사람들이 좀 알아야 돼'라거나 '음악계가 너무 환상에 쌓여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말 소수의 클래식을 옹호하는 일부 사람들에게서 '네가 뭔데 그렇게 얘기를 하냐' '어린 꿈나무들을 짓밟는 행동이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그 영상이 그렇게 알고리즘을 탈 줄 몰랐고, 그때만 하더라도 구독자가 2만~3만명 정도였다 보니 그냥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한 거였다. 근데 다소 자극적이었나 보다."
-비용이 기본적으로 수천만원에 달하다 보니, 놀란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근데 그 금액이 정말 최소치고, 그거의 한 1.5배 정도 생각해야 한다. 악기와 활 가격부터 매우 적게 잡은 거였다. 사람들이 충격받을까 봐."
-혹시 음악 전공자들이 공유하는 특징이 있을까.
"집순이, 집돌이가 많다.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일단 집에서 혼자 긴 시간 연습하다 보니 밖에 잘 안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과마다 차이가 있을까. '성악과 사람들이 사교성이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맞다. 성악과가 과 활동이 많고, 굉장히 잘 뭉친다. 근데 바이올린이나 첼로 전공자들은 경쟁에 지쳐 있는지, 그런 걸 잘 안 한다. 그리고 성악은 목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연습을 오래 할 수 없는데, 현악기는 정말 10시간도 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예체능계는 선후배 서열이 엄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음악과에도 ‘군기’가 있나.
"서울대에는 내가 다닐 때는 없었다. 오히려 군기를 잡았으면 역효과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워낙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다. 예중, 예고에서도 전혀 없었다."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는데, 국내 음대와 미국 음대 교수들의 차이가 있나.
"국내 교수님들은 좋으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는데, 미국 교수님들은 일단 이름을 부를 수 있으니 그거부터 다르다. 언어는 다르지만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느낌이고, 또 굉장히 친구처럼 대해주신다."
-학생들의 성향도 다를 것 같다.
"많이 다르다. 해외 아이들은 정말 창의적이다. 반면 한국은 '정해진 것만 해' 이런 게 크다. 사실 뭔가 좀 더 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왜 저렇게 나대지' 하는 시선을 보내는 측면이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정말 배운 것만 복사·붙여넣기 한다.
실제로 특정 선생님의 제자들은 다 똑같은 스타일을 가진다. 어느 정도냐면, 만약에 어떤 곡이 있으면 그 악보에 선생님이 자기가 원하는 손가락 번호나 피아노, 포르테 등 셈여림을 써 놓는다. 그 악보를 어떤 언니가 갖고 있으면, 나는 그걸 빌려서 교과서처럼 베낀다. 그럼 또 그걸 내 친구나 후배가 베껴간다. 그리고 레슨할 때도 선생님들이 똑같이 가르치다 보니 특징이 반영된다."
-그럼 해외 교수들은 '네 느낌대로 하라'고 가르치나.
"맞다. 그냥 가이드만 딱 던져주는 느낌으로 '해 와'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 너무 당황했다. 무슨 손가락 번호도 없고, ‘이 곡이 뭔지도 모르는데 뭘 하라는 거지’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고 거기서 하는 대로 해 봤더니 '요새 애들은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본다'고 하더라. 바로 아는 거다. 그렇게 부딪치면서 배웠다."
-음악은 독주뿐만 아니라 합주도 많이 하지 않나. 어떤 악기와의 조합을 가장 좋아하나.
"피아노다. 피아노와 함께하면 대부분 첼로가 독주기 때문이다. 현악기들도 물론 좋지만, 그들과 합주하면 내가 반주가 돼야 한다. 반주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나도 주인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이외에 현악 사중주나 첼로로만 서너 대 연주하는 것도 좋아한다."
-같은 악기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면, 음악적 성향 차이로 갈등이 생기지는 않나.
"서로 '쟤는 저런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하고 이해해 준다. 각자 의견을 내면서 충격을 완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리허설을 하는 거다. 소리뿐만 아니라 음악적 성향을 서로 맞춰가기 위해서."
-이미 프로인데, 공연을 하면 실력이 더 늘거나 하나.
"기술적인 실력은 대학생 이후부터 더 이상 안 늘더라. 그보다는 귀를 더 열고 더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음악은 이런 느낌으로 해야 돼' 같은 거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들이 그걸 알려줬다면, 성인이 되면 노련함이 생기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해서 연주를 한다."
-지금까지 해본 곡 중 가장 어려웠던 건 뭔가.
"너무 많은데, 바흐가 제일 어려웠다. 반주 없이 첼로 혼자 해야 하는 작품이다. 악보에 아무것도 안 쓰여 있고 그냥 내 아이디어로 채워나가야 한다. 바흐는 연주자마다 해석하는 게 달라서 '누구의 연주가 정답'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런 게 너무 어렵다. 내 생각과 인생을 전부 담아서 해야 하니까."
-악기를 계속 연주하다 보면 신체적으로 무리가 오기도 할 것 같은데.
"내가 여기(손목) 연골이 없다. 맨날 활을 쓰다 보니 다 닳아버렸다. 손목이나 손등, 팔 쪽이 삐끗삐끗한다. 그 외에는 다 괜찮은데, 또 방송을 하고 나서는 계속 화면을 봐야 하다 보니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 오히려 방송 부작용이 더 힘들다. 목 디스크 진짜 조심해라."
-혹시 연주 중 '치명적인 실수'를 한 적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있다. 연주하다가 활이 날아간 적이 있다. 그걸 주워서 다시 연주하려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났다. 활이 날아가면서 줄을 건드려서, 튜닝이 다 풀렸던 거다. 그래서 중간에 멈춰서 튜닝을 다시 했다. 정말 앞이 안 보이더라. 심지어 대회 때였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자격 박탈인가.
"그건 아니다. 다행히 외국이었다. 외국은 한국보다 살짝 유한 느낌이 있어서 그 실수가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한국이었다면 또 달랐을 것 같다."
-방송을 하면서 번아웃을 느끼는 경우도 많나.
"많은데 없는 척하고 산다. 그냥 계속 부딪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악플도 굳이 하나하나 다 읽었다. 그런데 지금은 낌새가 있으면 그냥 바로 차단해서, 어떤 댓글이 있는지 잘 모른다."
-비꼬는 투의 댓글에 '감사합니다'라고 답 댓글을 단 걸 봤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통달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나를 모르면서, 나와 내 인생에 대해 저렇게 함부로 말하지' 하면서 상처 받았다. 그런데 이제 너무 많이 받다 보니까 그냥 '그렇구나' 한다."
-추후 해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
"우리나라 예중, 예고에 잘하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한국이 이 정도다'라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콘텐츠를 하고 싶은데 그게 진짜 어렵다. 일단 미성년자이기도 하고, 부모님 허락도 받아야 되고, 또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온라인 방송 출연을 꺼리는 학생이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팬과 시청자에게 한마디 한다면.
"나는 항상 청중이 필요한 사람이다. 원래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평범한 내게 너무 큰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 여러분이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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