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法 이용해 法 피하고 농락하려는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
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제주 ‘ㅎㄱㅎ’ 사건 피고인들이 지난달 24일 법원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고 한다. 각각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법과 제주지법에 같은 날 같은 신청을 한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하는 제도다.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효력만 있지만 재판부가 그와 다른 판결을 선고하려면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하기 때문에 재판부로선 배심원 평결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 사건 변호인들은 “낡은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피고인들을 처벌할 가치가 있는지 국민의 상식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상 법률 전문가가 아닌 국민을 상대로 ‘여론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반대 입장을 냈다. 간첩 수사 정보가 공개되면 향후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두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게 될 수십명이 수사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이다. 이런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면 수사기관의 수사 방식을 공범이나 북측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이전에 간첩 사건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재판 지연 우려도 있다. 제주 ‘ㅎㄱㅎ’ 사건의 증거 기록만 1만여 쪽에 달한다. 일반 국민을 상대로 방대한 양의 사건 기록을 설명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두 사건은 올해 안에 1심 선고도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두 사건 피고인들은 앞서 검찰에 송치된 후 검찰의 출석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일부는 단식 투쟁까지 벌였다. 간첩 사건 피의자가 진술 거부를 한 적은 많지만 출석 자체를 거부한 건 드문 일이다. 두 사건의 변호인으로 참여하는 민변 소속 변호사는 2011년 간첩단 사건 변호 중 핵심 증인에게 묵비권 행사를 종용했던 사람이다.
두 사건 피고인들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반정부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무리 간첩이라도 법적 권리는 갖고 있다. 그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간첩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법을 이용해 우리 사회를 지키려는 노력 자체를 농락하고 무력화하는 것까지 용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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