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칼럼] ‘윤석열의 비극?’
‘10년 같은 1년.’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드는 생각이다. 정말 지난 1년은 길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은 2년 전 정치에 입문하며 “보수와 중도, (문재인 정부에서) 이탈한 진보세력까지 아우르는” 정치와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보장되고 승자 독식이 아닌 민주주의”를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한 ‘국민통합’과 ‘진보적 민주주의’는 지난 1년 동안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극우주의, 그것도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연마된, 뿌리와 관록을 가진 ‘세련된 극우’가 아니라 정치초년생의 ‘선무당’ 같은 조야한 ‘극우적 독선’만이 난무했다.
이태원 참사로부터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난무하고 있는 노동운동 등에 대한 공격, 국민의힘을 ‘상명하복의 유사 검찰조직’으로 만들고 있는 정당 민주주의 후퇴 등 그 예는 끝이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 주말 어린이날을 맞아 “세계 최고의 양육환경을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159명의 젊은이들이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다 정부의 대응 실패로 목숨을 잃었지만 제대로 된 문책조차 하지 않으면서, 무슨 세계 최고의 양육환경인지, 웃기는 일이다. 노동자들의 권리 역시 ‘검폭’(검찰+조폭)을 동원한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건폭’(건설+조폭)공격 등으로 후퇴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직장인들이 윤 정부의 노동정책에 낙제점인 43점을 줬겠는가?
정말 걱정은 국제정치다. 정권이 바뀌고 문제를 바로잡으면 되는 국내 정책과 달리, 외교와 국제정치는 여러 나라들이 관련돼 있는 만큼 정권이 바뀐다고 문제를 바로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미래’를 내세운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외교와 복잡한 동북아의 정세를 고려한 ‘균형외교’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미·일과의 동맹 강화로 중국과 러시아와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그 결과, 한반도는 ‘신냉전의 화약고’로 변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윤 대통령이 무리하게 미·일 동맹으로 돌진하는 것은 북핵 때문이라는 점이다. 북핵은 심각한 문제이고, 북한이 민중들을 굶겨 죽이면서 핵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핵은 북한의 강함이 아닌 약함의 증표이며 생존을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다. 북핵의 오랜 역사와 동북아의 복잡한 세력관계를 고려할 때 이런 해법으로 미·일 동맹에 모든 것을 걸 것은 아니다. 지난 1년간의 역사적 퇴행과 외교 불장난을 볼 때, 역사는 이 시대를 ‘윤석열의 비극’이라고 평가할 개연성이 크다. 물론 연인원 1600만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근혜와 극우정권을 탄핵시킨 촛불항쟁을 5년 만에 말아먹고 일개 검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점에서 ‘윤석열의 비극’은 근본적으로는 ‘문재인의 비극’ ‘민주당의 비극’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사고를 치면서 민주당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국민의힘보다 앞서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한·미 정상회담의 영향으로 다소 오르긴 했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압도하고 있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역전되기는 했지만, 민주당의 지지율은 지난 두 달간 국민의힘을 앞섰다. 주목할 것은, 돈봉투 사건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 견제론이 지지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진짜 비극은 그가 실정으로 민주당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아니 민주당을 퇴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낮아지고 정권교체를 해봐야 촛불 말아먹은 문재인 정부처럼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지방선거 참패에도 제대로 된 자기반성, 혁신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부패 기소 당직자 직무정지 등 정당개혁들을 후퇴시키고 있다. 윤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국민통합 등 개혁을 제대로 수행해 국민의 박수를 받고 있다면, 민주당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집단최면에서 벗어나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연일 사고를 치자 민주당은 그 덕으로 지지율이 높아져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들도 뒷걸음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권을 발전적 경쟁, 혁신경쟁이 아니라 퇴행경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남은 4년을 ‘윤석열의 비극’이 아니라 ‘윤석열의 축복’으로 변화시킬 묘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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