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태도 소작항쟁’… 돋보기로, 망원경으로 본듯 생생히 묘사

암태도=김민 기자 2023. 5. 9. 03: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23년 8월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암태도 농민들은 지주 문재철에게 7∼8할(70∼80%)에 달하는 소작료를 4할(40%)로 낮춰 달라고 요구했다.

창고를 둘러본 서 작가는 송기숙 작가의 장편소설 '암태도'에서 그린 암태도 소작항쟁을 떠올렸다.

서 작가는 암태도 소작항쟁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다.

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암태도 소작항쟁을 알리고, 일제의 압제와 수탈에 맞섰던 농민들이 당시 느꼈을 여러 감정을 다각도로 표현해 역사를 사람들의 이야기로 풍부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옛 암태농협창고서 항쟁 100주년 벽화 그리는 서용선 작가
1920년대 소작료 둘러싼 항일운동
단식투쟁 나선 농민들 표정부터 주도자의 비극적 최후까지 담아
“죽음 무릅쓴 심정 보여주고 싶었다”…완성된 작품은 8월경 공개 예정
암태도 농민 500여 명이 배를 타고 목포로 가고 있다. 암태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23년 8월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암태도 농민들은 지주 문재철에게 7∼8할(70∼80%)에 달하는 소작료를 4할(40%)로 낮춰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문재철이 소작료 강제 징수에 나섰고 일제 경찰은 농민들을 위협했다. 1924년 7월 7일 암태도 농민 500여 명이 배 10척을 타고 전남 목포로 향했다. 이후 농민 13명이 구속되자 이번엔 단식투쟁에 나섰다.

1920년대 항일운동으로 꼽히는 ‘암태도 소작항쟁’이다. 항쟁 100주년을 맞아 암태도의 옛 암태농협창고에서 벽화로 그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서용선 작가(72·사진)를 6일 현장에서 만났다. 이번 프로젝트는 신안군이 서 작가에게 옛 암태농협창고에서 작업을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창고를 둘러본 서 작가는 송기숙 작가의 장편소설 ‘암태도’에서 그린 암태도 소작항쟁을 떠올렸다. 관련 논문 및 자료를 찾고 현지 주민 인터뷰를 통해 작품 주제를 정했다.

● 가까이 정밀하게, 멀리서 조망하듯 묘사

단식 투쟁이 벌어졌던 목포 시내를 담았다. 암태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 작가는 암태도 소작항쟁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다. 약 330㎡ 규모의 옛 암태농협창고 벽면의 그림들은 모두 보는 시점이 달랐다. 가장 먼저 보이는 입구 오른쪽에는 3·1운동과 동학에 관한 인물과 장소가 상징적으로 묘사됐다. 그 다음엔 배를 타고 목포로 떠나는 농민들을 가까이서 본 모습으로, 또 목포 시내 풍경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형태로 표현됐다. 돋보기 혹은 망원경을 번갈아 사용하며 당시 현장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암태도 소작항쟁 100주년을 맞아 서용선 작가가 전남 신안 옛 암태농협창고에 암태도 소작항쟁을 작품으로 남기고 있다. 서 작가는 역사를 단순한 기록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6박 7일간의 단식 투쟁에 나선 농민들을 절박한 표정에 집중해 표현했다. 암태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단식투쟁에 나선 농민들의 모습. 다른 부분은 옛 창고의 콘크리트 벽면 위에 바로 그림을 그렸지만, 이 장면은 흰 배경 위에 얼굴을 그려 표정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서 작가는 “당시 여성 농민 고백화가 ‘우리만 돌아간 데도 소작권을 다 빼앗긴 몸으로 살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연설했던 기록이 있다”며 “죽음을 무릅쓰고 목포지청까지 나온 심정을 생생하게,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 다양한 이들 작업 참여

단식투쟁 작품 옆으로는 항쟁 주도자들의 재판 장면이 펼쳐진다. 이 그림은 서 작가가 드로잉 밑그림만 그리고 25개 조각으로 나눠 여러 사람이 색칠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목수현 근현대미술연구소장, 박치호 안혜경 작가, 주부 홍미경 서혜숙 씨 등 다양한 이들이 손을 보탰다. 사건의 의미가 여러 참여자들의 몫으로 확대된 것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서태석(1885∼1943)이다. 독립운동가인 서태석은 7년간 암태도 면장을 지내며 신망받던 인물로 소작인회를 조직했다. 그와 함께 동아일보 목포지국에서 일했던 독립운동가 박복영이 암태도 소작항쟁의 주도적 역할을 맡았고, 동아일보가 대대적으로 보도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소작료는 4할로 타결돼 농민들이 승리했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서태석은 수차례 수감 생활과 고문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다. 서 작가는 “동네 서당에서 큰 소리를 치는 등 증상이 심했다. 누이가 있던 압해도 밭두렁에서 숨졌는데, 일설에 의하면 벼를 움켜쥐고 있었다고 한다”고 했다. 이런 장면은 벽면에 크고 강렬하게 묘사됐다.

창고의 출구 옆에 그려진 마지막 장면에서 암태도 소작항쟁은 서태석이라는 한 인간이 겪었던 인생의 한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서 작가의 작업은 현재 60∼70% 진행된 상태다. 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암태도 소작항쟁을 알리고, 일제의 압제와 수탈에 맞섰던 농민들이 당시 느꼈을 여러 감정을 다각도로 표현해 역사를 사람들의 이야기로 풍부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완성된 작품은 항쟁 100주년을 맞는 8월쯤 공개될 예정이다.

암태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