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도 SUV 타요? 중산층 상징이 바뀌었다
지금 소비자가 현대차 제네시스 SUV(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 ‘GV80’을 주문하면 계약 후 7~8개월을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2020년 초 나온 모델이지만 지난해 11월 출시된 신형 그랜저와 대기 기간이 엇비슷하다. 각종 기능이 풍성하게 들어간 고급차이기도 하지만 최근 SUV 인기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작년엔 국내에선 처음으로 SUV가 연간 판매 1위 자동차가 되는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해 기아의 SUV 쏘렌토가 연간 판매량 기준으로 2017년부터 5년 연속 판매 1위였던 현대차 그랜저를 앞질렀다. 경차·세단을 꺾고 SUV가 판매 선두를 차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SUV 전성시대’다. 아반떼·쏘나타·그랜저 등 세단은 수십년간 국내 자동차 시장을 대표하는 차종이자, 중산층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소비자 머릿속 자동차는 늘 엔진실과 객실, 트렁크 세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세단이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SUV 신차 판매가 가파르게 늘면서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지나친 SUV 쏠림 현상에 소비자 선택 폭이 줄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리 달리는 4대 중 1대가 SUV
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월 기준으로 국내 등록된 전체 승용차 2111만4951대 중 SUV 비율은 27%까지 커졌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승용차 4대 중 1대가 SUV란 뜻이다. 5년 새 SUV는 170만대가량 늘었다. 이 기간 전체 승용차 증가율은 16%인데 SUV는 42%에 달한다. 4월 기준 전국 17시도에서 SUV 비율은 모두 25%를 넘었다. 지역별로 야외 활동을 즐기기 좋거나 험한 지형이 많은 제주도나 강원도에서는 이 비율이 30%까지 높아졌다.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와 BMW의 5시리즈 등 고급 세단이 즐비한 수입차 시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연간 판매된 신차 중 SUV 비율이 2018년 31%에서 작년 44%까지 커졌다.
과거 세단은 차체가 낮아 안정적이라 떨림이 적고 승차감이 좋고, SUV는 승차감은 나쁘지만 험한 길을 달리고 실내 공간과 트렁크가 넓어 활용도가 높은 차로 인식됐다. 하지만 기술과 디자인이 발전하면서 SUV는 기존의 장점을 살리면서 쾌적한 승차감을 갖추게 됐고, 동시에 야외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SUV 인기가 치솟았다.
◇SUV 아니면 현대차·기아 제품만 남나
SUV 인기는 자동차 시장 구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나 수입차 브랜드들이 새 SUV를 잇달아 내놓는 반면, 세단이나 경차, 해치백 형태의 소형차는 줄줄이 단종하거나 개발을 중단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SUV 말고는 구매할 차종이 줄어들면서 SUV 쏠림을 더 가속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시장에 판매되는 차종은 확연하게 줄고 있다. 자동차산업협회가 매달 집계하는 자동차산업동향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2월 당시 국내 판매 중이었던 차종은 63종이었는데, 이 중 SUV는 18종이었다. 하지만 올 1분기 판매 중인 차종은 49종이고 이 중 절반이 넘는 28종이 SUV였다. 한때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던 세단 ‘SM5’나 ‘임팔라’, 해치백 ‘i30’ 등이 SUV 인기 속에 줄줄이 단종된 탓이다.
이런 변화가 SUV 열풍의 그늘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판매 중인 49종 중 SUV가 아닌 차는 21종인데, 이 가운데 15종이 현대차와 기아 제품이라 SUV를 사고 싶지 않은 소비자 선택권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판매량 기준으로 이 부문 현대차·기아 점유율은 97.5%에 달한다. 르노·한국GM·KG모빌리티(옛 쌍용차) 차량인 세단 ‘SM6’나 경차 ‘스파크’, 픽업트럭 렉스턴 스포츠 등 6종은 판매량이 1분기 3602대에 그친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한국GM이나 르노 등이 수년간 판매 부진을 겪다 보니 잘 팔리고 소형차나 중형 세단보다 수익성이 좋은 SUV 위주로만 개발·판매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중소형 세단 시장의 경쟁이 점차 없어지고 있어 2000만~3000만원대 국산 세단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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