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우의 정치人] 또다시 여의도지청을 꿈꾸는가

윤호우 기자 2023. 5.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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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9일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60여명이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았다. ‘BBK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여당 의원들이 대거 대검에 항의 방문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17대 대선(12월19일)을 앞두고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는 야당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밀리고 있었다. 통합신당은 이 후보가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수사 결과만 발표되면 상황을 역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항의 방문은 몇몇 의원만 대검 차장을 만나는 걸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현장 취재를 갔다가 BBK 대책단에서 모종의 역할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는 검찰이 이 후보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잡았고, 곧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장담했다.

윤호우 논설위원

이 의원 말만 그대로 믿고 기사를 썼더라면 오보를 할 뻔했다. 며칠 뒤 검찰은 이명박 후보가 BBK에 관여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검찰이 이 후보 손을 들어준 것과 다름없었다. 17대 대선의 승패는 이날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로 사실상 결정됐다. 그로부터 이 사건의 유무죄 판단은 13년이 지난 뒤에야 뒤집혔다. 2020년 10월 대법원은 전직 대통령 이씨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혐의를 유죄로 최종 판결했다. ‘다스’(BBK 투자사)의 실소유자가 이씨라고 인정한 것이다.

15년 전 한나라당은 ‘여의도지검’

그때 검찰이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BBK 사건은 검찰이 대선 향배를 틀어쥐었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수사 결과를 과신했던 여당의 그 의원은 검찰 발표 후 “당내 검사 출신 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이라고 한탄했다. 당시 통합신당 내 법조인은 대부분 변호사 출신이었다.

한나라당은 상황이 달랐다. BBK 대응을 위한 클린정치위원회에는 홍준표 위원장(현 대구시장)과 검사 출신 의원·변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당 대표(강재섭)와 원내대표(안상수)도 검사 출신이었고, 대선 승리 후에도 검사 출신 대표(박희태)·원내대표(홍준표) 체제는 이어졌다. 지도부도 그렇거니와 검사 출신 의원들이 많아 ‘중앙지검 여의도지청’ ‘여의도지검’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 후 1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판사 출신 대표(김기현)와 경찰 출신 원내대표·사무총장(윤재옥·이철규), 검사 출신 수석최고위원·수석대변인(김재원·유상범)으로 지도부를 꾸렸다. 검사 출신 대통령까지 포함하면 여권은 온통 수사·사법 기관 출신이 이끌고 있다.

총선을 1년 앞두고 텃밭인 영남에서 검사 출신들이 대거 공천될 것이라는 말이 최근 돌자, 국민의힘이 화들짝 놀랐다. 거론되는 이름은 대통령과 가까운 소위 ‘윤석열 사단’ 인사들이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시장조차 “지금도 검사 정권이라고 공격받고 있는데 내년 총선에 검사들이 대거 나오면 전국적으로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대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제가 용인도 안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윤 세력에 휩싸여 당 대표에 오른 김 대표가 과연 ‘용인’을 하지 않을 용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간호사 출신 의원이 2명이라는 사실이 새삼 알려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의사 출신 당선인은 2명뿐이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이슈로 부각됐는데, 정작 농민 출신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국회에서 소수자나 서민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원은 줄어들었다.

검사 출신 의원 지금도 넘치는데…

반면 21대 총선에서 검사 출신은 15명(더불어민주당 6명, 국민의힘 계열 9명)이 당선됐다. 법조인으로 넓히면, 무려 46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다른 직군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편이다. 가열되는 여야 정쟁과 정치의 사법화가 이런 현상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국회가 특정 집단의 목소리만 높인 꼴이 됐다. 지금의 검사 출신 비율로도 여의도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검사 출신 정계진출설은 또 꼬리를 문다. 행정부를 넘어 입법부까지 ‘검찰공화국’을 실현하려는 것 아닌지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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