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가정의달, ‘가족’에 대해 질문하라
5월은 다정한 달이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날(21일) 등 가족 구성원이 서로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날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가정의달’로도 불린다. 가정(家庭)은 무엇을 뜻할까? 사전적 정의는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다. 국가가 공인한 ‘가족 기념일’로 한 달이 부산할 만큼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 공동체다.(어린이날은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어린이를 존중하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날이지만, 현실에서 어린이날이 가족 중심의 기념일이 되고 있다.)
조금 특이한 부모 자식 관계도 있다. 김희경의 <에이징 솔로>에는 친구와 5년간 함께 살아온 비혼 여성이 병원의 보호자 동의 요구처럼 끊임없이 법적 가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노후를 대비하고자 친구를 입양한 사례가 나온다. 친구 부모 동의 서명이 담긴 입양신고서 한 장으로 충분했다. 그는 묻는다. “입양은 이렇게 쉬운데 다양한 가족을 품을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은 왜 그렇게 어렵기만 한가?”
이렇게 보면 가족 울타리 밖의 이들이 선명히 드러난다. 혈연·혼인 중심의 가족제도가 배척한 이들이다. 비혼 인구부터, 결혼을 택하지 않은 동거 커플, 성소수자 등 ‘정상가족’을 벗어난 이들이다. 이들에게 거리에 가득한 카네이션과 선물 꾸러미들은 제도가 경계지은 ‘가정’의 울타리를 명확히 보여주는 징표다. 그렇다면 울타리 안에선 행복할까. 김희경은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가정폭력 문제를 지적하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울타리 안에서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처가 곪아간다면, 밖에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자들이 고통받는다. 그렇다면 되물을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가정’인가?
가정의 의미가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주거제도는 혼인·혈연 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신혼부부 전세금 대출, 임대주택 입주 조건 등은 모두 ‘가족’에게 혜택을 부여한다. 성소수자의 나이 듦에 관한 조사에서 ‘노후 준비에 가장 중요한 정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82.3%가 주거문제를 꼽았다. 같은 질문에 대한 대국민조사에서는 ‘돌봄을 포함한 건강’이 1위(69.7%), 소득이 2위(63.1%)를 차지했다. 안정된 삶의 기본 조건인 주거가 성소수자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 점은 자원이 어떻게 차등적으로 배분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서 “결혼이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민권을 획득하는 경로,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방법 등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2014년 초안이 마련되고도 보수단체의 반대로 발의조차 되지 못했던 법안이다. 생활동반자법은 국회 문턱을 간신히 밟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혼인율과 출생률이 이를 방증한다. 엑소더스(대탈출)이다. ‘정상가족’은 이미 사람들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가정의달’에 해야 할 것은 가족이라는 협소한 울타리 안에서의 행복을 기원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대한 성찰과 질문이다. “가족구성권운동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타파는 물론이고,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 주거, 노동, 의료, 연금 전반에 걸친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시민권운동”이라고 김순남은 말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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