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세월호 유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했던 행동들이 정치적으로 오해될 것이라 여기지 않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유족들과 연대하기 위해 이것(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이것을 달고 반나절쯤 뒤에 어떤 이가 다가와 ‘떼는 게 더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 비극적 사건에 중립적이어야만 한다고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성경 말씀(마태오 25,31-40)처럼 ‘누군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 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가 되었을 때 따뜻이 맞아들이는 일. 그리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을 때 기꺼이 찾아 주는 일’을 그저 행동으로 옮겼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 행동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선한 행동을 정치적 행동으로 바꿔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어쩌면 2천년 전부터 그리스도교는 이런 오해를 많이 받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십자가 형벌을 받은 예수도 그저 세리와 창녀, 가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의 편에 있었지만 로마의 권위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정치범이 됐다.
희한하게 그 오해는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나라가 뒤숭숭할 때마다 나타나는 정의구현사제단 때문에, 같은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신부님! 정치 좀 안 하시면 안 됩니까’는 소리를 듣곤 한다. 분명 듣기 거북한 이야기지만 어쩌면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에 사제들이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사제라면 당연히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 여겨진다.
지난 3월20일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다시 등장했다. 그들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현 시국에 대해 “불이야, 불이야”라고 다급히 외치는 호소이며, 신부가 돼 ‘오늘까지 겨레로부터 받은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이 될까’ 하는 마음뿐이며,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닌(헌법 제7조)’ 대통령에게서 섬김의 본분이 아닌 그저 거짓과 변명뿐임을 묵과할 수 없는 절박함이다.
본격적으로 사제단은 4월10일 서울 광장을 시작으로 월요 시국기도회를 이어간다. 이날 사제단은 ‘삭꾼은 안 된다’라는 성명서를 통해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온 국민 앞에 바쳤던 맹서를 모조리 배신했다.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던 젊은이들이 죽게 놔두었고(이태원 참사), 농민을 무시하고(양곡관리법 거부) 노동자들을 적대시함으로써(“화물연대 파업은 북핵보다 더 위험하다”)…약자들에게 한없이 비정한 “삭꾼”(요한 10,12)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제단의 행보는 광복절까지 계속될 것이며, 대통령은 사제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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