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78] 성모의 탄생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3. 5. 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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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성모의 탄생, 1486~90년, 프레스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토르나부오니 예배당 벽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1449~1494)가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에 앞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고의 화가로 꼽혔을 것이다. 30대에 이미 피렌체에서 가장 큰 회화 공방의 거장이었던 그의 수하에서 십 대의 미켈란젤로 또한 도제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그 시원이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15세기부터 개축과 장식을 거듭했다. 유력 가문과 최고 예술가들이 이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 그중 핵심이라 할 주 예배당은 원래 다른 가문 소유였다가 이들이 파산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은행가 토르나부오니 손에 들어왔고, 토르나부오니는 당연한 듯 기를란다요의 공방을 선택했다. 기를란다요는 각각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생애를 담은 양쪽 벽화는 물론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모두 맡았다. 여러 장면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던 만큼 기획은 기를란다요가 하더라도 실제 그림은 그에게 훈련받은 도제들이 맡았다. 그러나 성모 탄생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다른 인물상에 비해 탁월하게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면서도 정교한 세부 묘사가 돋보여 기를란다요가 직접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성모 마리아는 부유하나 노년이 되도록 자식이 없던 요아힘과 안나 사이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출산 직후 산모는 늙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나 굳이 몸을 일으켜 아기를 내려다본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산파들은 아기를 소중히 받들어 안아 어르고, 물을 따르는 여인의 옷자락은 봄바람에 휘날리듯 경쾌하다. 그 가운데 천진하게 손을 빠는 작고 귀여운 아기가 성모다. 극도의 희생을 감내한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도 한때는 온 세상이 애지중지 보살피던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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