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29] DNA 발견의 신화
‘51번 사진’은 영국의 결정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그녀의 제자 고슬링이 1952년에 얻어낸 DNA 결정의 X선 회절 사진이다. DNA가 이중 나선임을 발견해서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은 ‘이중 나선(1968)’에서 이 사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신참 연구원 왓슨은 1953년 초 킹스 칼리지에서 신경질적인 프랭클린을 만나고 그날 그녀의 상관인 윌킨스가 보여준 ‘51번 사진’을 보게 된다. 왓슨은 당시 그 사진을 보자마자 DNA가 나선 구조임을 간파했다고 저서에서 술회한다. 책 독자들은 프랭클린처럼 숙련된 결정학자가 판독하지 못한 사진을 왓슨 같은 초심자가 판독해 내고 그 결과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얘기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꼼꼼히 재검토한 학자들은 왓슨이 프랭클린을 괴팍한 여성으로 편파적으로 묘사했고, 심지어 그녀의 허락 없이 몰래 ‘훔쳐본’ 사진을 이용해서 중요한 발견을 이뤘다고 그를 비판했다.
왓슨과 마찬가지로 왓슨 비판자들도 51번 사진의 마법 같은 힘을 중시했다. 하지만 최근 DNA 발견 70주년을 맞아 네이처에 실린 콥(M. Cobb)과 컴퍼트(N. Comfort)의 연구는 51번 사진과 관련된 신화를 바로잡고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프랭클린은 꼼꼼한 실험가답게 자신의 실험 데이터를 여러 각도에서 해석했고, 그 과정에서 DNA가 나선 구조라고 생각했다가 이런 생각을 폐기했으며, 자신이 발견한 대칭 구조의 과학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왓슨이 51번 사진을 보고 DNA가 나선 구조임을 간파했다는 얘기도 물론 과장된 것이지만, 이 사진 자체가 DNA 발견에 결정적인 자료였다는 것도 과장이라는 것이 이들의 해석이다.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아하!” 하는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콥과 컴퍼트는 이론 연구를 하던 캐번디시 그룹과 실험을 하던 킹스 칼리지 연구팀이 매니저들 차원에서 ‘비공식적 소통’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 정보가 왓슨 같은 연구원에게는 제공되었음에도 여성이자 유대인인 프랭클린은 이 정보 공유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과학자들은 비슷한 어려움을 느낀다. 과학의 실질적 양성평등을 꾀하는 정책학자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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