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쉰들러 리스트… 中영사, 유대인 4000명 상하이로 대피시켜
중국인과 유대인… 애증의 역사
중국은 미국과 패권전쟁 중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분야 중 하나가 유대 금융 세력의 중국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공격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금융시장 개방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중국은 금융시장 개방을 위해 2020년 적격 외국인 기관투자자에게 파생상품 거래를 허용했다. 지난해 9월에는 원자재, 곡물, 지수옵션 등 41개 파생상품을 추가로 개방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은 외국인 기관투자자에게 주요 주식지수 관련 파생상품은 개방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유대 금융 세력이 1990년 초 파생상품으로 일본 주식시장을 순식간에 망가뜨리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뉴욕 기관투자자들은 닛케이지수에 터무니없는 버블이 끼었다고 보았다. 그들은 일본에서는 닛케이지수 상승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을 주로 판 반면 뉴욕과 런던에서는 하락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을 많이 팔아 일거에 일본 주식시장을 폭락시켰다. 물론 자산시장의 버블이 폭락의 주원인이지만 폭락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유대 금융 세력이었다. 이후 닛케이지수는 20년간 하염없이 추락했다. 1989년 말 3만8915에서 2009년 3월 7054까지 주저앉았다.
미국의 대외정책, 중국과의 패권전쟁을 주도하는 국무장관과 국가정보국장, 재무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모두 유대인이다. 중국이 미국 유대인의 동향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중국 상하이에 몰려온 유대인들
중국인과 유대인 간에는 애증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다. 1차 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 상하이 개항 때 인도에 살면서 중국과 거래하던 유대인 700여 명이 상하이로 건너왔다. 이들이 영국, 인도, 중국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을 주도해 상하이의 국제화에 많이 기여했다. 반면에 인도산 아편을 수입해 중국을 해롭게도 했다. 당시 유대 기업을 이끈 대표적인 가문이 사순(Sassoon)가와 커두리(Kadoorie)가였다. 이후 1895년부터 10년간 러시아 유대인들이 대박해(포그롬)와 공산혁명을 피해 만주를 거쳐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1930년대 말 상하이 유대인 수는 4000명을 넘어섰고 유대 회당이 7곳이나 되었다.
중국에는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1842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까지 107년간이 외세에 시달린 ‘치욕의 시기’였다. 이 기간에 일본도 대륙 침략에 가세했다. 만주를 놓고 일본과 러시아가 충돌했다. 이는 1905년 러일전쟁으로 비화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은 유대인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거의 패전 상황에서 군비 마련이 시급할 때, 뉴욕의 유대인 금융가 야곱 시프가 거액의 전쟁채권 판매를 선뜻 주도해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일왕이 야곱 시프를 초청해 최고 훈장을 수여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1930년대에 ‘유대 국가’를 만주에 건설하자는 국제적 제의를 했다. 일본은 유대 자본을 활용해 만주를 개발하고 이들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사실 그즈음 만주에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만주 이주는 크게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900년대 초 러시아는 뤼순항을 점령하고 만주 개발을 위해 러시아인들의 만주 이주를 독려했다. 그러자 반유대주의에 시달리던 러시아 유대인들이 종교의 자유와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 만주로 이주해왔다. 이후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을 피해 온 유대인들이 합세했다. 그 뒤 철도 건설 붐과 은행 개설로 유대인 숫자는 더 불어났다.
그 무렵 하얼빈이 대표적인 유대인 도시였다. 상업 지역의 80%가 유대인 소유였다고 한다. 하얼빈은 20세기 초 동북아의 대표적인 국제도시였다. 19국의 영사관이 하얼빈에 들어와 있을 정도로 인종 용광로였다. 당시 하얼빈의 외국인 인구는 도시 인구의 절반이 넘는 19만 명이었다. 이 중 2만 명이 유대인이었다.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 가문이 하얼빈 출신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 더 많은 유대인이 몰려온 건 히틀러 등장 이후이다. 1930년대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극심한 사회 혼란을 불러왔다. 이 틈을 타 1933년 나치 정권이 탄생했다. 히틀러는 아리안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열등한 인종을 청소해야 한다는 망상을 갖고 있었다. 1935년 도입된 뉘른베르크 법을 바탕으로 유대인 차별이 가해졌다. 1938년에는 반유대 폭력이 시작되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유대인을 가두는 게토가 다시 만들어지고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홀로코스트 직전의 음습한 기운이 유럽 대륙에 가득했다.
유대인의 탈출을 도운 동양 영사들
독일과 오스트리아, 폴란드 유대인들은 탄압이 거세지자 탈출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갈 곳 잃은 유대인들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자 난민 문제가 발생했다. 1938년 7월 프랑스 에비앙에 32국 대표들이 모여 유대인 난민 문제 처리를 협의했다. 유대인들의 딱한 사정에 동정을 표하긴 했지만, 2차 대전 직전 각국의 민감한 국제관계와 국익 앞에 어느 나라도 선뜻 유대인 난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회의는 소득 없이 끝났다. 히틀러는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유대인 탄압이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며 고무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유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오히려 동양 외교관들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주재 중화민국(현재 대만) 영사관의 허펑산 영사는 도움을 청한 유대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가장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상하이로 2~3개월 만에 거의 4000명을 도피시켰다. 나치 정권은 영사관에 탄압을 가했다. 이에 허펑산은 근처 임대 아파트에서 비자 발행을 계속했다. 1940년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 영사관 ‘스기하라 지우네’ 영사도 이웃 폴란드에서 피신해온 유대인들에게 일본 통과 비자를 발급해주어 수천 명의 유대인을 살렸다.
이렇게 해서 2차 대전을 전후해 유럽에서 피란 온 2만여 명 등 2만5000명의 유대인들이 상하이 일대에 거주했다. 어느 나라도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 난민들을 중국은 받아들인 것이다. 19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그제야 이들을 받아들여 중국 내 유대인들은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으로 떠났다. 지금 상하이에 사는 유대인들은 2000명 남짓이라 한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1969년 일본 영사에게 훈장을 수여해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상하이시에 감사를 표하고 2000년에 ‘야드바샴(이스라엘을 도운 의인의 전당)’에 허펑산을 동양인 최초로 등록시켰다. 대만 정부도 2015년 이미 고인이 된 허펑산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그를 기리는 뮤지컬 ‘생명의 도장’이 2019년 대만 전 지역에서 공연되었다. ‘생명의 도장’은 같은 해 11월 한국에서도 공연된 바 있다.
[성경에서 ‘시님’ 땅은?]
세계 각지의 유대인이 귀향할 것이라고 예언… ‘시님’은 차이나 추정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이사야 49장11~12절)
이사야서 언급은 유대인들이 세계만방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것을 예언하는 메시지이다. 여기서 ‘시님’ 땅이 중국을 일컫는다고 이야기하는 성경학자들이 있다.
시님을 중국으로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스 시대에는 중국을 ‘세리카’라 불렀다. 비단을 일컫는 ‘세르’에서 유래했다. 로마 시대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오는 비단은 ‘세리카’에서 왔으며, 해상을 통해 수입하는 비단은 ‘시나’에서 왔다고 했다. 훗날 역사학자들은 ‘시나’는 진(秦)나라를 일컫는 ‘China’에서 온 말로, 두 나라는 모두 중국이라고 보았다. 히브리어·영어 사전도 China를 ‘sin’이라 하며 Chinese를 ‘sini’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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