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헤어진 아들 그리워하며 심은 나무
세상살이 부질없이 변해도 가족을 향한 애틋함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오래된 가족 이야기일수록 애틋함이 더 깊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게다가 효(孝)를 사회 이데올로기로 여기며 살던 옛 시대로부터 전하는 이야기는 더욱 그럴 수밖에.
경남 거창 남상면 무촌리 감악산 연수사(演水寺)에는 어머니와 아들의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서 있는 은행나무가 있다. 600년 넘게 살아온 ‘거창 연수사 은행나무’(사진)는 높이 38m, 가슴높이 줄기둘레 7m, 사방으로 펼친 나뭇가지 펼침폭은 20m를 넘는다. 나무 높이가 38m라면 우리나라에 살아 있는 모든 은행나무를 통틀어 높이에 있어서 가장 큰 몇 그루의 나무에 꼽힌다.
긴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겪었지만, 나무에는 별다른 상처도 없다. 줄기 바깥쪽에 바짝 붙은 채 모여난 가늣한 몇 개의 맹아지(萌芽枝)는 굵은 줄기의 나무를 더 웅대하게 돋워준다. 중심 줄기에는 세월의 풍진을 증거하기라도 하려는 듯 짙푸른 이끼가 무성하게 돋아오르며 장관을 이뤘다.
이 큰 나무에 가족을 돌아보게 하는 전설이 전한다. 고려 말엽에 왕족의 가문과 혼인을 치르고 들어온 한 여인의 이야기다. 여인이 아들을 낳았을 무렵, 고려가 무너졌다. 왕족이 겪어야 할 참화를 피해 여인은 열 살짜리 아들과 함께 연수사에 숨어들었다. 얼마 뒤 아이의 재능을 알아본 한 스님이 데리고 가 훌륭히 키우겠다고 했다. 아들은 작별을 슬퍼하는 어머니를 위해 전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아들 대신 보살펴달라며 여인을 위로했다. 여인은 은행나무를 심으며, 언제든 돌아오면 이 나무를 어미로 여기라며 헤어짐의 안타까움을 삼켰다.
세월이 흐르며 아들의 전나무는 강풍에 쓰러져 죽었고, 어미의 은행나무만 살아남았다. 지금의 ‘거창 연수사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는 잘 자랐지만, 아들의 안부를 그리워하는 어미의 모정을 드러내듯 무시로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무의 울음은 이웃 마을까지 퍼졌고, 울음의 속내를 아는 마을 사람들도 나무와 함께 슬퍼했다고 한다. 가족의 달이면 다시 찾아보게 되는 한 그루의 큰 나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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