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국빈방미, ‘가치외교’에 부합했나

홍주형 2023. 5. 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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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미 백악관이 발표한 것이 3월7일이고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까지 약 50일이었다.

물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가치 외교를 내걸고 동맹국과 이른바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y)'들을 불러 모으는 것의 목적은 당연히 중국 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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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미 백악관이 발표한 것이 3월7일이고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까지 약 50일이었다. 그 사이 국가안보실장과 주미대사가 바뀌고, 국가기밀 도청 의혹까지 터졌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든 가장 큰 의문은 한국 외교의 방향성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일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정부의 ‘가치 외교’가 무엇인가를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른바 ‘가치 동맹’ 차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치 외교의 학술적 정의는 민주주의 등 특정 가치를 외교 정책에 반영해 국제사회에서 대변하고 실천하는 외교다. 실무 차원에서 한 외교관은 가치 외교를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rule of law) 등 보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유사한 입장을 가진 나라들끼리 협력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
무엇이 됐든, 살아남기 위해 가치보다는 ‘줄타기 외교’를 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던 세대에는 익숙지 않은 개념이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사는 나라에서 가치 외교가 가당키나 하냐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가치 외교는 이미 하나의 흐름이다. 주요 7개국(G7) 의장국이 두 번이나 한국을 초청하고, 민주주의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주요 역할을 맡는 것을 보면 더 이상 가치 외교가 우리와 멀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가치 외교를 내걸고 동맹국과 이른바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y)’들을 불러 모으는 것의 목적은 당연히 중국 견제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명분으로 자기 일처럼 나서는 것도 당연히 자국 안보를 위해서다.

하지만 가치 외교를 레토릭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큰 흐름은 그렇지만, 각국은 자신의 가치를 그 안에 채워 넣는다. 독일 환경장관이 지난 4월 주요 7개국(G7) 환경장관회의에서 전체 의견과 별개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한 것,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아세안중심성’(아세안 가치)에 따라 강대국 결정에 따라가기도, 거리를 두기도 하는 것은 모두 각자의 가치에 따른 결정이다.

가치가 단단할 때 연대의 명분이 생길 뿐 아니라 외교적 운신의 공간도 생긴다. 문재인정부에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에 침묵했던 정부를 비판한 것은 한국의 가치에 반하는 반민주적 행위에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분명한 법 질서 위반인 국가기밀 유출 의혹에 해야 할 말도 하지 않는 것, 대통령 외신 인터뷰의 역사 인식이 전쟁범죄인 과거사 문제에 뚜렷한 주관을 갖지 않는 것은 국제법을 존중하는 가치 외교에 맞을까.

회담의 성과와 별개로 한국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가치 외교의 의미는 제대로 정립했으면 한다. 가치 외교가 미국만 바라보는 동맹 최우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국제법에 기초한 한국 외교의 기반일 때 한·미 동맹이 더 건전하고 튼튼할 수 있다.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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