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 시 읽는 마음] 간병

2023. 5. 9. 00:5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새하얗고 너른 침상 위로 너무 일찍 떨어진 감꽃에 어린 벌이 찾아와 있다.

하지만 꽃은 다 시들지 않았고 벌은 좀처럼 날아가지 않는다.

아직 꽃은 다 시들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일찍 떨어진 감꽃"은 머지않아 그 생을 다하고 눈을 감을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채길우
새하얗고 너른 침상 위로
너무 일찍 떨어진 감꽃에
어린 벌이 찾아와 있다.
 
싱그러운 초록과 비린 향기가
미처 식지 못한 꽃잎들을
벌이 허리 굽혀 어르고 매만진다.
 
창백한 꽃의 얼굴에 더 가까이 벌은
설익은 꿀이 말라붙은 입술을 핥고
푸석해진 화분을 살결에 펴 발라 준다.
 
꽃은 작고 벌은 서툴다. 하지만
꽃은 다 시들지 않았고
벌은 좀처럼 날아가지 않는다.
 
아직 꽃은 다 시들지 않았다. 아직은…. 다행이라는 생각. 그러나 “너무 일찍 떨어진 감꽃”은 머지않아 그 생을 다하고 눈을 감을 것이다. 내내 그의 병상을 지켜온 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동안 슬퍼하다 다시금 어딘가로 날아갈 것인가. 살아갈 것인가. 살아가지 않을 것인가. 죽은 이의 곁에 머물며 함께 조금씩 죽어갈 것인가. 어째야 좋을지 이 어린 벌도 알지 못할 듯하다. 알 수 없는 채로 오래 아파할 듯하다. 아, 우리, 이토록 작고 서툰 존재들. 지금은 다만 꽃 가까이 다가가 “설익은 꿀이 말라붙은 입술을 핥고 푸석해진 화분을 살결에 펴 발라” 줄 뿐. 죽어가는 이를 살피는 데 열중할 뿐. 슬픔도 기쁨도, 그 어떤 삶의 열망도 섣불리 끼어들지 않도록.

박소란 시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