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만나면 “킴, 킴, 킴, 킴”... 거대한 축제장 된 나폴리
나폴리는 온통 하늘색으로 물들었다. 33년 만에 프로축구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게 그토록 감격스러운 일일까. 도시 전체가 거대한 축제 현장 같았다. 7일(현지 시각) 나폴리국제공항에 내리니 이미 터미널 안에서도 SSC나폴리 축구팀 특유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시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나폴리 시내에는 골목마다 나폴리 축구팀이 이탈리아 1부 리그(세리에 A)를 세 번째 우승했다는 걸 의미하는 ‘3′을 적은 현수막과 함께 팀 상징색인 하늘색과 하얀색 천이 건물을 뒤덮었다.
이날 지난 4일 원정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돌아온 나폴리 선수들은 홈구장에서 경기와 함께 축하 행사를 치렀다. 경기는 오후 6시부터인데 이미 낮부터 시 전역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다. 중심가 톨레도에서 플레비시토 광장으로 이어지는 2㎞ 남짓 거리에는 인파가 가득 찼다. 부부젤라(나팔 모양 응원 도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가판대마다 우승 기념품이 넘쳤고, 대규모 시위라도 벌어진 듯 걸음을 옮기기 힘들었다. 누군가 “우리가 이탈리아 챔피언”으로 시작하는 응원가를 부르면 여기저기서 함께 따라 불렀다. 길가에 자리한 식당이건 카페건 시민들은 나폴리 축구 영광의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목청을 높였다.
나폴리 서쪽에 있는 마라도나 경기장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자 한 무리 승객들이 갑자기 “킴, 킴, 킴, 킴”을 연호했다. 이들은 아시아인만 보면 반사적으로 ‘킴’(김민재)을 외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에게 김민재에 대해 묻자 엄지를 치켜들며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한국인”이라며 “우리는 그를 ‘짐승’ ‘군인’이라 부른다”고 극찬했다. 그 뒤로도 지하철은 물론, 경기장 주변에서 만나는 나폴리 시민들은 기자에게 계속 “킴, 이 자리가 더 시원하다” ”킴, 더 필요한 것 없냐”고 말을 걸었다. 전날 친구랑 여행차 이곳에 왔다는 김현중(35)씨는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눈만 마주치면 ‘킴’을 외치더라. 식당에 들어가면 꼬맹이들도 다 (한국에서 왔냐고) 알은척한다”며 “(김민재 선수 덕에) 이런 축제 현장을 다른 나라 사람이 마치 한 가족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거리 곳곳에는 나폴리 선수들 사진이 펄럭였다. 김민재 선수 사진도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폴리 팬들은 홈경기가 있는 날 한글로 ‘철기둥’(김민재 별명)이라 적은 응원 깃발을 들고 나온다 한다.
5만5000여 관중이 꽉 들어찬 채 벌어진 이날 경기에서 나폴리는 피오렌티나를 1대0으로 이겼다. 멋진 자축연을 선사한 셈이다. 경기가 끝나고 펼쳐진 우승 축하 행사는 장관이었다. 영화 ‘록키 3′ 주제가인 ‘호랑이의 눈(Eye of the Tiger)’과 함께 나폴리 선수들이 입장했고 김민재는 관중에게 “캄피오네 캄피오네(챔피언)”를 외쳤다. 폭죽이 터지고 록 밴드 퀸의 노래 ‘우리가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이 울려 퍼졌다.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은 “나폴리는 기적의 도시”라면서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고 부르짖었다. 김민재는 우승 기념 축하 파티에서 주장과 함께 샴페인을 따 터뜨렸다.
경기장 밖에도 수천명 팬이 모여 축제를 만끽했다. 이들은 유니폼은 기본이고 하늘색 가발, 얼굴 페인팅, 흰색·하늘색 모자와 목도리 등 다양한 소품으로 꾸민 채 목이 쉬도록 응원가를 반복하며 춤을 췄다. 우승의 여운을 온 몸에 새기려는 듯 했다. 구장 인근 아파트에서도 주민들이 대거 난간으로 나와 이들과 합세해 노래를 불렀다. 자녀 2명과 아내, 온 가족이 왔다는 가에타노(41)씨는 경기장 밖에서 연신 사진을 찍으며 “단지 축구 우승 이상 가치가 있다”며 “표는 못 구했지만 아이들과 이 역사적인 순간을 남기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마라도나가 나폴리를 우승으로 이끈 1990년 이후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 우승은 주로 부유한 북부 지역인 밀라노(AC밀란, 인테르 밀란)나 토리노(유벤투스) 팀들이 독식했다. 이번 나폴리 우승은 남부인들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주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는 평가다.
오후 8시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도 떠났지만 사람들은 떠날 줄 몰랐다. 경기장 안에 있던 팬들과 경기장 밖에 있는 팬들이 만나 다시 한번 새로운 축제의 장을 열고 있었다. 자정이 다가왔는데도 거리는 나폴리 깃발을 들고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량들로 북적였다. 여동생·엄마와 함께 3시부터 경기장 앞을 지켰다는 마리지아(27)씨는 “뭔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냥 이 분위기를 즐기려고 계속 있는 것”이라며 “모든 게 아름답지 않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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