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참모들에 “선물 얘기 말라”... 기시다, 외무성 만류에도 “가슴 아프다”

김동하 기자 2023. 5. 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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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정상회담 키워드는 ‘신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8일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1박 2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서울에서 취재진과 만나 “어제 윤 대통령 관저에 초대받아 개인적인 이야기를 포함해 (윤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를 깊게 할 수 있었다고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안보, 산업, 과학기술, 문화, 미래 세대 교류 등과 관련해 철저한 후속 조치에 임해달라”고 참모들에게 당부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의 3월 방일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방한해 과거사와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고 각종 현안에 양국이 협력하기로 하면서 12년 만에 재개된 셔틀 외교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오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막하는 7국(G7) 정상 회의에서도 만나 함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한다.

기시다 총리는 출국에 앞서 이날 오전 한일의원연맹 의원들과 면담하고, 경제인들과도 간담회를 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일한의원연맹은 양국 관계를 지지하는 중요한 뼈대”라며 “양국의 인적 교류가 한층 활발해지면 상호 이해가 깊어지고 양국 관계의 폭과 두께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경제인들에게는 “한일 경제계가 공급망 강화, 첨단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등에서 발전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며 “한일 간 협력에 있어 기업이 먼저 나서서 협력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가 7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유감’을 표명한 것은 전적으로 본인 결정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에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오시길 바란다”는 뜻을 사전에 전달했지만,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의 그러한 배려에 ‘할 말은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기시다 총리가 스스로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과거사 관련 발언을 했다”며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유코 여사가 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가진 만찬에서 환담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방한한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을 접견하고 “내가 일본에 가고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오는 것 자체가 큰 외교적 성취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니까 어떤 문제든 편한 마음으로 부담감 없이 해나가면 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일부 참모진은 기시다 총리 방한 시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기대한다는 뜻을 전했지만, 윤 대통령이 오히려 기시다 총리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이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양국 참모진의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특히 정상회담 전날에도 참모들에게 “선물이라든지, 과거사 사과라든지 그런 이야기가 대통령실에서 나오지 않게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한 참모는 “3월 강제징용 해법 발표도 일본의 요구와 상관없는 윤 대통령의 결단에 따른 것이었듯, 일본도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스스로 결정해서 하라는 뜻이었다”고 했다. 당초 일본 외무성도 기시다 총리가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는 반대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에 이어 기자회견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한일 양측의 사전 의제 조율 과정에선 나머지 주제들은 심도 있는 협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 처리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 시찰단을 현장에 파견하는 문제는 한국 측의 요구가 관철됐다. 또 G7 정상 회의 때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두 정상이 함께 참배하는 의제는 일본 측이 먼저 요구한 사안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일이 일대일로 의제를 관철했고,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 유감을 표명하면서 이전보다 진전된 결과물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인 유코 여사가 8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전시 관람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과 간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이날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기시다 총리와 만나 50여 분간 면담했다. 정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만에 한일 관계 훈풍이 불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일본도 성의 있는 노력을 하려는 느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반면 윤 의원은 “과거 문제에 대한 양국 정상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면담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시다 총리의 ‘가슴 아프다’는 표현과 관련해 부족한 점이 많다”고 했다.

한편, 전날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한남동 관저로 초청한 만찬은 예정된 70분을 훌쩍 넘겨 2시간 넘게 진행됐다. 기시다 총리는 횡성 한우로 만든 숯불 불고기를 2접시 먹었고, 코스로 나온 한식 요리를 모두 비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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