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지키려면 총을 가져라”…美 총기 규제 ‘훼방꾼’ NRA [미드나잇 이슈]

김희원 2023. 5.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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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 장려’ 협회서 美 최대 정치 로비 단체로
공화당에 대규모 후원…민주당 규제 입법 ‘발목’
“총기 더 많이 소지해야 안전…헌법 보장 권리”
참사 후 총기 구입 늘어나…국민 여론도 ‘팽팽’
지난 2012년 12월 미국 코네티컷주 샌디 훅의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어린이 20명을 포함 총 28명이 사망했다. 슬픔과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미총기협회(NRA)는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는 것을 지적하며 “학교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 수백만명의 교사를 무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AP연합뉴스
2017년 10월에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이 공연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무차별 난사한 총에 58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다쳤다. 사건 발생 사흘 만에 언론 인터뷰에 나선 NRA 대표는 “총기 소지는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이며 국민이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무기를 소지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이 총기를 소지해야 국가가 더 안전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NRA는 어떤 집단인가?

◆‘총기 옹호 등급’ 매겨…정치 영향력 ‘막강’

지난달 14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NRA는 1871년 ‘과학적인 소총 사격 장려·촉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오락단체로 시작했다. 이후 1934년 국가총기법(NFA), 총기규제법(GCA) 등 총기 관련 입법 정보를 회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정치 로비에 발을 들였다.

NRA는 1975년 부설 입법행동연구소를 신설해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1977년 정치행동위원회(PAC)를 설립해 의원들에게 정치 자금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NRA는 미국 정치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권단체로 성장했다.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한 자금력에서 나온다. NRA의 2020년 예산은 2억5000만달러(약 3172억원)로 미국 내 모든 총기 규제 지지 단체의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NRA 로고.
공식적으로 NRA가 매년 정치 로비에 들이는 자금은 300만달러(약 38억원) 수준이다. BBC는 “이 로비 규모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기부금 수치일 뿐 상당한 액수가 PAC와 그 외 추적이 어려운 독자적인 기부금 등에 쓰인다”고 전했다.

NRA는 공개적으로 미 의회 의원의 총기 권리에 대한 우호도를 A∼F로 등급을 매겨 평가한다. 이 등급은 여론조사 결과는 물론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후원금과 총기 우호도 평가를 무기로 의원들을 사실상 쥐락펴락 하는 것이다. NRA의 후원을 받으며 이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정치인들은 대다수 보수 성향 공화당이다.

◆“총기 소지는 개인권”…공화당 강력 지지

NRA는 모든 형태의 총기 규제에 반대한다. 그 근거는 미국 수정헌법 2조다.

수정헌법 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내용으로 NRA는 이를 따라 ‘개인은 정부도 침해할 수 없는 총기 소유·휴대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NRA와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도 같은 이유로 조 바이든 정부의 총기 규제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총기 옹호 정치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NRA 회원이기도 한 그는 지난달 인디애나주에서 열린 NRA 연례총회에 참석해 자신이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총기 찬성자이자 최고의 수정헌법 2조 찬성자”라며 미국민의 총기 소지 권리를 위해 “두려움 없는 전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또 잇따르는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총기 문제가 아닌 정신과적 문제”라면서 자신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면 ”바이든이 벌이는 합법적 총기 소지자들과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EPA·AFP연합뉴스
이날 행사에서는 트럼프를 비롯해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총기 규제 강화 움직임에 반대하며 관련 입법 시도가 있을 때마다 발목을 잡아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잇따른 총기 난사에도 규제를 강화하지 못하는 책임을 NRA와 공화당에 돌리며 지난 3월 행정명령을 내렸다. 

행정명령에는 △공격용 무기 및 대용량 탄창 판매 금지 △모든 총기 판매시 신원조회 요구 △총기 안전 보관 요구 △포괄적인 더 안전한 미국 계획 및 지역사회 폭력 개입 및 예방 전략 확대 등 내용이 담겼다.

바이든 정부는 이보다 강력한 총기 규제 법안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중간선거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는 바람에 다음 선거까지 최소 2년은 관련 입법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자신 보호하려 ‘총기 소지’…미국인의 DNA

다만 미국의 잇단 총기 참사 근원을 NRA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총기 소지를 둘러싼 정치권의 의견 충돌과 마찬가지로 미 국민 여론도 총기 규제 강화와 반대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총기를 소지하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는 미 대륙을 발견하고 개척하면서 원주민이나 야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미국인의 DNA에 총기에 대한 애착이 포함됐다는 분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 미국인의 무기 사랑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 무기조사 기관인 스몰암스서베이(Small Arms Survey)에 따르면 2018년 미국에서는 3억9000만정이 유통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당해 미국 인구(3억2680만명)보다도 많은 숫자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인구 100명당 총기 소지 비율은 120.5%로 전 세계 2위인 예맨(52.8%)보다 두배 이상 많다.
사진=AFP연합뉴스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21년 미국 성인 인구의 30%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갤럽 설문에서 총기 소지자의 63%는 그 이유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미국에선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총기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NRA는 2012년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 후 회원수가 500만명까지 늘어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2021년 갤럽 조사에서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은 52%로 나타났는데, 이는 60%가 넘었던 2016년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다. BBC는 “2020년부터 총기 범죄가 늘어남에 따라 ‘총을 소유해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한 영향”으로 풀이했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총기 참사에 정부가 규제 행정명령까지 내린 현재 여론은 어떨까. 

보수 성향 폭스뉴스에서 최근 싨시한 여론조사(4월 21∼24일, 1004명 대상)에서조차 유권자 10명 중 9명이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데 찬성하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보다 무장을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총기 폭력을 줄이기 위해 어떤 정책을 선호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전체의 61%가 ‘공격 무기를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45%가 ‘더 많은 시민들이 총을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는 ‘금지’(84%)가 훨씬 많았고, 공화당 지지자는 ‘총기 소지 찬성’(61%)이 더 많았다.
또 전체 응답자의 87%는 모든 총기 구매자에 대한 범죄경력 조회에 찬성했으며, 81%는 기존 총기 관련 법을 개선하고 총기 구매의 법적 연령을 21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더 엄격한 총기 규제가 나라를 더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느끼는 숫자는 43%로 2016년(52%)보다 9%포인트 줄었다.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서도 총기 관련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7일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1월1일부터 이날까지 미국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은 199건으로 집계됐다.

전날 오후에는 텍사스주 북쪽 앨런시의 한 아울렛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한인가족 3명 포함 8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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