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마일 강속구, 연봉 투쟁 그리고 코카인...라이언과 시대 양분한 파이어볼러였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또 한 명의 메이저리그 전설이 세상을 떠났다.
1970년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전성기를 이끈 바이다 블루가 8일(한국시각) 향년 73세로 타계했다고 AP 등 외신들이 전했다.
오클랜드 구단은 성명을 통해 "세 차례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고, 한 번의 MVP, 6번의 올스타, 한 번의 사이영상, 그리고 우리 구단 명예의 전당 등 바이다 블루만큼 화려한 경력의 선수도 드물다. 바이다는 프랜차이즈 레전드이자 친구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 가장 심오한 애도의 뜻을 보낸다"고 밝혔다.
오클랜드 구단이 추모사에서 언급한 것과 다른 의미로 블루 만큼 파란만장한 커리어를 쌓은 선수도 사실 없다.
LA 맨스필드에서 1949년 7월 태어난 블루는 데소토 고교 3학년이던 1967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1968년 이후 오클랜드)의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고교 시절 그는 야구와 풋볼을 병행했다. 쿼터백으로 활약한 그는 NFL(북미풋볼리그)을 대표하는 명문 구단들이 계약서를 보내올 정도로 풋볼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야구를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고교 2학년이던 1966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다. 6형제의 맏이였던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당시 풋볼보다 돈벌이가 좋았던 야구를 선택했다.
2년 간의 마이너리그를 거쳐 1969년 만 19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블루는 1970년까지 두 시즌 동안 18경기에 등판해 가능성을 타진받았는데, 1970년 9월 빅리그로 재승격한 직후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09를 마크하며 다음 시즌 활약을 예고했다. 특히 9월 22일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 9이닝 1볼넷 9탈삼진으로 노히터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 55일로 1920년 라이브볼 시대 개막 이후 최연소 노히터 기록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1971년 24승8패, 평균자책점 1.82, 301탈삼진을 기록하며 당시 역대 5번째로 MVP 및 사이영상을 석권했다.
블루의 가장 유명한 사건은 오클랜드 구단주와의 계약 분쟁이다. 화려했던 1971년 시즌을 마치고 블루는 당시 찰리 핀리 구단주와 분쟁에 휘말렸다. 1971년 1만4000달러였던 연봉을 9만2500만달러로 올려달라고 한 것이다. 지금처럼 체계적인 연봉 산정 시스템이 없던 시절 오클랜드 구단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다. 그의 투쟁 방식은 파업 정도가 아니었다. 야구를 포기하고 철강회사에 취직했을 정도다.
하지만 야구를 떠난 건 잠시였다. 당시 커미셔너 보위 쿤의 중재로 6만3000달러에 합의를 본 블루는 1972년 5월 복귀했다. 그가 에이스로 떠오른 오클랜드는 그해부터 1974년까지 3년 연속 월드시리즈를 제패한다.
블루는 1978년 3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다. 당시 오클랜드는 블루는 보내는 대신 선수 7명과 현금 30만달러를 챙겼다. 샌프란시스코에서 3차례 더 올스타에 뽑힌 그는 1978년 올스타전 내셔널리그 선발투수로 등판하며 양 리그에서 모두 올스타전에 선발등판한 최초의 선수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블루는 앞서 오클랜드 시절인 1971년, 1972년 올스타전서 아메리칸리그 선발투수로 나섰다.
블루는 1983년 코카인을 구입하려다 적발돼 잠시 옥살이를 했는데, 이 때문에 MLB의 징계를 받아 1984년 시즌을 통째로 날리기도 했다. 1985년 복권돼 돌아왔지만,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1987 FA로 오클랜드로 다시 돌아온 그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블루는 메이저리그 17년 통산 209승161패, 평균자책점 3.27, 2175탈삼진, 143번의 완투, 37번의 완봉을 기록했다. 그는 BBWAA(전미야구기자협회)가 뽑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끝내 헌액되지 못했다.
블루는 현역 시절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떨쳤다. 직구 구속이 평균 94마일, 최고 100마일을 찍은 것으로 전해진다. 변화구로는 커브와 체인지업이 뛰어났다. 통산 최다안타의 주인공 피트 로즈는 "내가 상대한 투수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고 했고, 세이버매트릭스 창시자인 빌 제임스는 "그 시대에 놀란 라이언 다음으로 빠른 공을 던진 투수가 블루였다"고 평가했다. 1970년대 파이어볼러는 우완 라이언, 좌완 블루였다.
마크 콧세이 오클랜드 감독은 이날 "고인은 항상 활기차고 유쾌한 분이셨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무척 사랑하셨다. 그가 우리 구단에 끼친 영향력이 지금도 느껴진다. 너무 슬픈 날이다. 유족에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추모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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