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붙은 주중 한국대사관과 중국 관영지…중국 당국 “중국 민심”
주중 한국대사관과 중국 관영매체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관련 보도를 둘러싸고 며칠째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가 윤 대통령의 방미 전 발언, 미 의회 연설 등에 대해서 비난을 하자 주중 한국대사관이 4일 항의 서한을 보냈고 5일 이를 한국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항의 서한을 보낸 것도, 이를 공개한 것도 모두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중국 한국대사관의 항의 서한에 대해 두 신문이 공동 사설을 통해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나서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중국 외교부까지 말을 보탰습니다.
■중국 매체가 먼저 시작?
먼저 주중국 한국대사관 측은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의 어떤 보도에 항의했을까요?
두 매체는 먼저 지난달 23일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이 났다(这件事上,韩国外交的“国格”碎了一地)'라는 제목의 공동 사설을 통해 방미 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타이완 관련 발언을 한 것을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분단 국가인 한국이 누구보다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심정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며 "한국 외교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은 워싱턴에서 잃어버린 '국격'과 외교적 자존심을 중국에 강세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회할 생각인가? (韩国在华盛顿那里丢掉的“国格” 和外交自尊,想通过对中国示强找补回来吗?)
-지난달 23일 자 환구시보 사설 중에서
이어 환구시보는 지난달 28일 사설에서 "역대 한국 정부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대한 민족적 독립 의식이 가장 결여됐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 방미는 그 평가를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글로벌타임스도 잇따라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지난달 30일에는 북·중·러의 보복이 한국과 윤 대통령에 '악몽'이 될 수 있다고 썼습니다. 또 지난 4일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 문제를 지적한 윤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 발언에 대해서는 업그레이드한 한미 동맹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을 찾으려는 것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주중국 한국대사관 항의 서한에 또 반박 사설
주중국 한국대사관은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가 부적절한 표현을 쓰고 근거 없는 비난을 했다며 두 매체에 지난 4일 공식 항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대사관은 항의 서한에서 환구시보 등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해 우리 정상은 물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을 매우 치우친 시각에서 객관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폄훼"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만약 한국 언론이 중국 지도자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비난하는 보도를 연일 게재할 경우 중국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신중히 숙고해야 할 것" -주중국 한국대사관 항의 서한 중
하지만 주중국 한국 대사관의 항의에 두 매체는 반박 사설로 답했습니다. 한 마디로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두 신문은 오늘 공동 사설을 내고 대사관의 항의 서한에 대해 "이런 격렬한 정서와 선을 넘는 언사는 외교기관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며 "다른 나라 매체의 독립적 보도에 대해 난폭하다고 할 만한 방식으로 간섭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항의 서한에서 제기한 관점과 지적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이례적으로 '항의'를 한국 언론에 공개해 한국에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만큼 우리도 공개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한 간에는 일부 사안에서 이견을 피하기 어려운데, 문제는 그것을 떠들썩하게 키울 것이 아니라 이견을 어떻게 해소하거나 관리·통제하느냐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한국 외교가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그 결과는 중·한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미국, 일본 앞에서 국격을 잃는 체면 손상 문제뿐이 아닐 수 있다"면서 동북아 정세가 한층 더 균형을 잃고, 심지어 붕괴할 수도 있으며, 그것은 한국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에 대해 주중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우리 정상과 외교 정책에 대한 무리한 비난에 대해 재발 방지를 촉구했는데, (환구시보 등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과 함께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외교부 "관련 언론, 중국 내 민의 반영"
환구시보와 이 신문의 영문판에 해당하는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사입니다.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매체로, 중국의 강경 대외정책을 수시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개적으로 중국 당국이 언급하기 쉽지 않은 '속내'를 기사와 사설을 통해 운을 떼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중국 외교부 측은 이번 공방에 대해 이렇게 말을 보탰습니다.
"우리는 관련 보도와 이에 대한 글로벌 타임스의 대응에도 주목했습니다. 최근 한·중 간 부정적 여론이 애초 불거져서는 안 되는 것인데, 진원지가 어디인지 아마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관련 언론의 관점이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중국 내 민의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근원을 잘 관리하는 것이 부정적 여론을 차단하는 데 있어 관건인 만큼, 한국은 건설적인 노력을 기울여 주길 희망합니다." -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 중에서
"한·중 간 부정적 여론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 시작이 한국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두 매체의 관점이 중국 정부 입장은 아니지만 "현재 중국 내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건설적인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매체의 한국 외교 비난에서 시작된 이번 공방은 한·중 양국의 최근 악화된 관계를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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