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영의 그림산책] 강희안(姜希顔)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경기일보 2023. 5. 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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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큰 획 그은 선구적 작품
강희안(姜希顔)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고사관수도’는 조선 초 시, 서, 화에 모두 뛰어나 세종 때 안견, 최경과 더불어 삼절로 불린 서화가이자 명문 사대부인 강희안의 대표작이다. 강희안은 세종이 이모부일 정도의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나 다양한 관직을 성공적으로 역임해 관료로도 활약했다. 전서, 예서, 팔분체에서 뛰어난 경지를 보여주어 글씨로 왕희지와 조맹부에 비견됐으며, 그런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세종이 옥새를 만들 때 전자 쓰는 일을 맡겼다.

강희안은 산수, 인물화 등에 뛰어나 곽희에 견주어졌으며 왕성한 활동으로 당시 화단에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성품이 소박하고 겸손하였으며 그림과 글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 전해지는 그의 작품은 매우 적다.

‘고사관수도’를 보면 화면의 중심에 있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선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는 덩굴이 드리워진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앉아 양손을 교차해 소매에 넣어 바위에 올린 뒤 그 위에 얼굴을 기대어 잔잔하게 흐르는 수면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다. 화면의 좌상단의 덩굴 옆에는 강희안의 호인 ‘인재’라고 새긴 백문방인이 찍혀 있다.

암벽과 바위에 보이는 짙은 묵, 진하고 힘 있게 표현된 옷 주름과 윤곽선과 다르게 흰옷과 잔잔한 수면, 충분한 여백을 통해 흑백 대비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한 산수의 조그마한 한 부분을 배경으로 인물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한 점이나 좌상단에 여백을 많이 준 변각 구도를 사용한 점에서 조선 중기에 유행한 소경산수인물화풍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개성 있고 선구적인 화풍으로 인해 ‘고사관수도’는 그의 진작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지만, 그가 중국으로 직접 가서 선진문물을 보고 배웠다는 점과 명문 집안에서 다양한 소장품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선진적 화풍을 이해할 수 있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은 조선 초 화원 화가들이 화단의 중심이던 상황에서 개성 있고 선도적인 화풍으로 당시 화단을 풍성하게 했고 이후 화단에도 큰 영향을 끼쳐 미술사에서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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